어느 취미 부자의 고민

by 프프

글을 쓰라는 브런치의 재촉에 겨우 로그인했다. 매거진에는 연재 독촉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어쨌든 로그인을 했으니, 오늘은 요즘 내가 하는 고민을 풀어보려고 한다.




나는 취미 부자다. 취미 부자는 주말에도 바쁘다. 매달 여러 군데의 문화센터에 등록하고, 늘 흥미로운 무언가를 배우며 산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은 심장을 뛰게 한다. 어렸을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이 들수록 새로운 배움에 대한 갈증이 커지는 걸 보면, 어쩌면 이 ‘열정’도 결핍의 다른 얼굴일지 모르겠다. 최근에는 인도 요가, 캘리그래피, 글쓰기, 그림책, 점성학, 독서지도 자격증 등 다양한 것을 배우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오늘은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문화센터에서 그림책 작가 과정부터 출판 과정까지 두루 배우고, 지금은 매주 한 번씩 그림책 수업을 듣고 있다. 그림책을 공부하는 이유는 그림책을 출판하고 싶기 때문이다. 특히, 시니어를 위한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나는 인생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그림책 수업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그림책을 탐구하는데, 이는 확실히 창작에 도움이 된다. 강사님의 맛깔나는 스토리텔링을 듣다 보면 아이디어가 번쩍 떠오를 때도 있고, 함께 읽으면서 토론하면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또 누군가 그림 속 숨은 디테일을 발견할 때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과정에서 ‘집단 지성’의 힘을 다시금 실감한다.


그림책은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또 주제와 소재가 한정적이어서 그림이 특이하거나 인상적이지 않으면 기억에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점점 그림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 생각은 원화 전시회에 다녀오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요즘은 그림책을 전문으로 하는 도슨트도 많아지고, 그림책 원화 전시와 더불어, 그림책을 주제별로 묶어 전시하는 ‘그림책 큐레이션’이 인기를 끌고 있다. 원화를 하나씩 보다 보면, 한 장 한 장이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결국 한 권의 그림책을 만든다는 것은 최소 16개의 예술 작품을 탄생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나도 이왕이면 원화를 그려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게 되었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이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때는 그림이 내 적성이라고 착각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결국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물감을 짜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설레기보다는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림책을 만들겠다고 결심했으니까.


이렇게 해서 2주 전부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스토리보드를 그리고, 스케치를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우고 다시 그리는 무한 반복. 그림책의 특성상, 그림이 ‘주’가 되어야 하고, 더 독창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팝아트, 콜라주, 더블 익스포저, 스텐실, 믹스드 미디어 등 다양한 표현 기법을 시도해 보았다. 그렇게 2주가 흘렀다(정말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민이 깊어졌다. 하면서도 ‘이 작업을 꼭 원화로 해야 하나?’ 의심이 들었다. 신기술(?) 배우는 걸 좋아하는 성향 덕에 나는 AI 프롬프트를 남들보다 잘 다룬다. 크레파스, 색연필, 펜슬 드로잉 등 손 그림 일러스트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이미지를 뽑아내면 지인들은 “네가 그렸냐? 잘 그렸다.”고 감탄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주 잘 그린 그림이 부담스럽다면 일부러 조금 미숙하게 그릴 수도 있다. 그림을 그린 사람의 연령대도 조정이 가능하다. 어쨌든 CivitAI, Stable Diffusion 등 캐릭터의 프롬프트를 활용해 이를 AI에 적용하면 마치 인간이 그린 것 같은 자연스러운 손 그림을 뽑아낼 수 있고, 그렇게 뽑아낸 이미지는 ‘어도비’라는 훌륭한(?) 툴로 수정하고 편집하면 되니까 16컷에 총 2박 3일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게 싫다면 디지털 드로잉도 있다. AI 이미지를 라인 드로잉으로 추출할 수도 있다. 그렇게 프롬프트를 주면 되니까. 우리는 태블릿을 켜고 그대로 선을 따라 그리기만 하면 된다. 꼭 화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는데, 이 시점에서 원화를 고집해야 하나? 왜 갑자기 원화에 꽂혔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돈 주고 사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결국 손 그림을 사지, 컴퓨터가 그린 그림을 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나부터도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책이 더 좋으니 말이다. 이 고민은 점점 깊어져 갔다.


그러던 중, 충격적인 기사를 접했다. 이탈리아 볼로냐 라가치상(Bologna Ragazzi Award) 국내 수상작의 작년 상반기 판매량이 181권에 불과하다는 기사였다. 매년 천 권의 그림책이 200여 개 출판사에서 쏟아지고, 그림책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는 전체 출판 시장의 9위를 차지할 만큼 많다고 했다. 그런데도 판매량이 이렇게 저조하다면, 그 많은 그림책 출판사는 정말 다 괜찮은 걸까?

(기사 원문은 아래 링크에)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157250.html


이 기사를 읽고 나니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림책을 출판한다는 건 단순한 창작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성과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처음에 그림책을 만들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것이 하나의 ‘예술 작업’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출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완성’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아무리 좋은 그림책을 만들어도, 단 181권이 팔린다는 현실 앞에서 과연 책을 출판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들었다. 만약 책을 냈는데, 팔리지 않아서 우리 집 거실에 몇백 권씩 쌓여 있다면, 그걸 볼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았다.


출판은 비즈니스다. 책을 내는 순간, 그것은 하나의 상품이 된다. 독자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서점에서 팔리지 않는다면, 그냥 나 혼자만의 작업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림책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한국 시장이 답이 아닐 수도 있다. 전달 방법이 달라질 수도 있다.


결국, 책을 만든다는 건 단순한 창작이 아니라 많은 고민과 선택이 필요한 일이다. 출판 시장의 현실은 냉정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창작을 멈춰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닿을 방법을 깊이 고민할 것이다. 나는 계속 고민하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만, 더욱 깊이 고민하고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나아갈 것이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로그인한 김에 주절대보았다. 요즘 내가 하는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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