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with. 사골 감자탕
감자탕을 끓였다. 돼지 등뼈를 솥단지에 넣고 삶은 시래기를 한가득 올린다. 알알이 감자도 박고 군침이 도는 신김치도 묻는다. 쌀을 씻어 받아 놓은 뜨물을 뽀얗게 붓는다. 사골을 우려낸 국물을 진하게 얹는다. 두어 시간 뭉근하게 푹 끓인다.
하얀 김이 서린 솥 사이로 숭덩숭덩 들어간 대파를 건져 낸다. 숨이 죽은 양파와 깻잎을 집어낸다. 들깨가루를 술술 뿌린다. 대접에 건더기를 한 주먹씩 덜어내고 국자로 국물을 한 소큼 끼얹는다.
뼈에 붙은 살점들을 흐물흐물 발라낸다. 구수하고 깊은 국물을 후루룩 먹어 댄다. 김치 국물이 많이 들어가 고기는 신맛이 돈다. 막걸리 한 잔이 생각나는데. 레드 와인 한 잔이라도.
베리 향이 물씬 올라오는 와인을 반주한다. 시고 단 딸기는 코르크 아래 오래 묵었다. 시래기와 묵은 김치와 레드 와인은 왜 이렇게 조합이 좋을까. 발효의 맛이란 시간을 들여야 좋은 법. 정통 막걸리도 좋았을 것을. 지금은 막걸리가 없으니 와인과 함께 하는데.
한 상 가득 배를 채운다. 옹기종기 둘러앉아 한 국자 두 국자 더할수록 집안 곳곳 깊은 맛이 배어난다. 부추를 넣어 밥을 볶고,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고소한 내음을 더한다. 집안은 감자탕 향내의 여운이 가득하다. 시간이 흐르고...
왜일까? 노래가 흥얼거린다.
사람이 떠나간다고
그대여 울지 마세요
오고 감 때가 있으니
미련일랑 두지 마세요
친구가 멀어진다고
그대여 울지 마세요
영원한 것은 없으니
이별에도 웃어 주세요
좋았던 날 생각을 하고
고마운 맘 간직을 하며
아아아 살아가야지
바람처럼 물처럼
가는 인연 잡지를 말고
오는 인연 막지 마세요
때가 되면 찾아올 거야
새로운 시절인연
'시절인연'이 어디 사람뿐일까. 나와 인연을 맺고 지나간 온갖 것들이 시절인연인 것을... 그땐 그 사랑이 전부였는데, 그땐 그것만이 사랑인 줄 알았는데... 그 사랑이 가면 다음 사랑도 오는 것을, 다른 것도 사랑인 것을... 맺었다 끊겼다, 인연들은 필름이 되어 촤르륵 감긴다.
영원한 것은 없다잖아. '그때의 행복'이었음을... 움켜쥐고 아파할 것이 없잖아. 새로운 인연을 맞는 것은 오래된 인연을 보내는 것을 의미하지. 때가 되면 자연스레 왔다 가는 것이 인연인 것을... 연연하지 말자. 가는 것에 눈물 흘리지 말고, 오는 것에 활짝 미소 짓자.
가수 '이찬원'의 시절인연은 그의 별명 그대로 청국장 맛이 난다. 쌀뜨물로 바글바글 끓여 구수하다. 동글동글 콩 냄새가 멀찌감치 진동한다. 별다른 양념을 치지 않은 국물은 맑고 담백하다. 해맑은 표정으로 송해 선생님 옆에서 노래하던 순진한 소년이었다. 이찬원의 노래는 송송 썰은 뽀얀 두부가 막걸리를 불러온다.
국악 소녀 '진혜언'의 시절인연은 사골 국물로 푹 끓인 감자탕 같다. 진득하게 고아 뽀얀 진액이 우러나온다. 길고 질긴 시래기가 귓가에 남는다. 포슬한 감자 덩어리가 목에서 응크러진다. 오랜 시간 함께 한 판소리의 힘을 빼고 십대와 이십대를 넘어가는 순수함으로 부른다. 진혜언의 목소리에는 향긋한 와인이 제격이다.
'미스트롯3'에 참가한 진혜언 양은 판소리 장원이었습니다. 국악예술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이번에 트로트 대회에 본격적으로 임하기 위해서 자퇴를 했답니다. 판소리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결의에 찬 모습입니다. 학교를 떠나면서 정들었던 친구들과 이별을 아쉬워하며 선곡을 했다지요. 그녀의 '시절인연'은 판소리의 시절을 트로트로 새롭게 인연을 맺는다는 의미가 깊었습니다. "잘했어요." 마스터의 한 마디는 심사평을 일축했습니다. 그녀의 노래는 앞으로도 긴 시절 동안 인연이 되기를 바랍니다.
진혜언 양, 사골 감자탕을 먹을 때면 당신의 이 노래가 생각날 겁니다. 오래오래 우려 주세요. 당신의 노래를.
이찬원 님, 우리의 시절인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당신의 맑은 목소리와 밝은 마음을 간직하며 살겠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aZNW5f3I3E4
https://www.youtube.com/watch?v=TiuMCD0vJ5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