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디터D Mar 09. 2022

만약에

라라랜드를 보고 나서

모든 게 실현 불가능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만약에'라는 허황된 단어가 좋다.

'만약에'로 구성된 영화 라라랜드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그 짧은 상상 속 장면들을 보는 동안 '혹시'하는 마음에 잠시나마 무척 행복했기 때문에.



영화 개봉 당시 라라랜드를 보고 나서 완전히 풀리지 않은 듯한 찜찜한 기분을 안고서 집으로 향했다. 그러고서 영화 리뷰에 관한 이런저런 글을 찾다가 발견한 허지웅의 글.


영화 평론가인 그가 말하길 자칫 잘못하면 뻔한 레퍼토리의 뮤지컬 영화가 될 뻔했던 라라랜드를 살린 건 바로 이 '만약에' 장면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글에 따르면 '지나치고 쉽고 편한' 내러티브가 애초 감독이 철저하게 의도한 그림이라는 것. 그 의도가 눈에 읽힌 순간 영화에 대한 흥미가 급격히 떨어진다고. 하지만 그는 마지막 장면에서 라라랜드가 특별할 수 밖에 없는 점이 등장한다고 말한다.

"즐겁고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 그럴 리 없고 주인공의 가정은 완전무결한 환상의 결과물이다. 모든 선택의 순간 가장 최상의 결과만이 존재했다면, 이라는 가정 아래 만들어진 판타지다. 그럼에도 이 아무 의미 없는 상상은 관객을 무너뜨린다"라고 허지웅은 허핑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말한다.


2021 Jeju @Olympus Mu-1


그에 대한 아무런 감상을 빼고, '이런 사람이야 말로 글을 써야 한다'라고 자괴감까지 들 정도로 글 자체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영화에 대한 전문성이 있으면서도 딴딴한 자기 감상이 조화롭게 한 글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참고- 허핑턴포스트 속 허지웅의 라라랜드 엔딩에 관한 글. http://m.huffpost.com/kr/entry/13737950#cb




라라랜드가 개봉 후에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며 사랑받는 이유가 대체 뭘까라고 생각해보았을 때, 나는 주저 없이 이 마지막 상상속 장면 때문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절대 이뤄질 수 없는 가정이 눈앞에서 필름처럼 휘리릭 지나가는 장면은 우리 모두의 가슴을 울리니까 말이다.

아마 우리 모두 경험한 바가 있기 때문이리라.


2021 Jeju @Olympus Mu-1


우리는 모두 허황된 꿈을 꾼다.

그 꿈은 대개 이루어지지 않고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만약에'라는 단어가 참 좋다.

만약에 라는 단어가 주는 가능성을 좋아한다.

만약의 상상을 하는 동안에는 마음이 편안해지고, 이내 안정감이 든다.


대개 내가 '만약에'라는 상황을 가정을 할 때는 누군가와의 이별을 맛봤을 때다.

머릿속에 펼쳐지는 수많은 '만약에'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나를 괴롭히는 수많은 '만약에' 때문에 여행을 떠나며 현실과 도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만약에'라는 단어 때문에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기도 하니까 그리 부정적일 필요는 없다.

앞서 말했듯 만약에란 단어는 가능성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코로나 19에 걸려 자가격리 4일 차에 접어들었다.

몸이 아픈 것은 둘째치고 외출이 제한된다는 상황에 직접 직면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답답하기 그지없다.

출퇴근은 물론이고 집 바로 코 앞에 있는 마트에 가는 일, 약국과 병원에 가는 일조차 막히니 정말 답답하다.

하지만 반대로 만약에 내가 이런 상황을 겪지 못하고 일상을 지속해 나간다면 어땠을까?

나 살기에 바빠서 팬데믹 상황의 심각성과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전혀 알지 못하지 않았을까.

또 너무 많은 시간을 부여받은 탓인지 평소 아무렇지 않게,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문제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며 생각해보게 된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괜히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아마 몸과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어서리라.


2021 Jeju @Olympus Mu-1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만약에'란 가정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늘 현실의 감정에 충실하며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일 거다.


하지만 인간은 미련의 동물이고 바보 같게도 늘 상상의 회로를 돌리겠지.


어쩌겠어, 우린 인간인데.

Mia & Sebastian's Theme 피아노 곡을 들으며 이 글을 마감하려 한다.

우리 친언니가 이곡을 들으면 마지막 띙! 하고 허둥지둥 끝나는 부분이 가장 좋다고 한 게 이곡을 들을 때마다 생각난다. 나도 그 부분이 이곡의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마치 '만약에'라는 상상 속 행복했던 두 주인공의 결말에 산통이라도 깨듯 말이다.


이다음 곡은 Chet Baker의 'I Fall in Love Too easily' 다.

왜 이곡이냐고 묻는다면 그냥 다음 곡으로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띙!  (끝)





 









작가의 이전글 방콕에서 우연히 만난, 장 줄리앙Jean Jullie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