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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Nov 01. 2017

사막에서 내가 조난되기를 바랐어

2017 몽골 여행(6/8)

타인의 기척에 잠을 깬 것이 얼마만일까. 낯선 타인들의 뒤척임이 모여 만들어낸 작은 소리에 잠에서 깼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묵었던 게르에는 샤워시설이 없었다. 몽골 여행 하루 만에 나는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로부터 멀어져 버렸다. 물을 쓸 수 없는 게르라는 공간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조용히 마른세수를 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깨지 않을 만큼 최소한의 움직임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일뿐이었다. 밖으로 난 게르의 작은 문을 통해 나온 몽골의 아침은 쌀쌀했다. 잠이 덜 깬 멍한 정신으로 지평선을 보고 있으니, 부스럭거리며 하나둘씩 잠에서 깬 동행들이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또다시 길을 떠났다. 몽골에서 마음이 편했던 건, 하루의 일과가 오로지 길을 떠나는 일 뿐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이제와 해본다.

사막. 모래로 이루어진 넓은 땅이라는 뜻의 사막지역을 여행하고 있으면 모래 사(沙)보다는 차라리 죽을 사(死)가 더 어울리는 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넓은 땅에서 여행자가 찾을 수 있는 색이라곤 흙빛에 가까운 거무튀튀한 풀의 색이나, 흰색 혹은 검은색의 양 떼들 뿐이다. 입안에서는 늘 서걱거리며 모래가 씹히고 사람 아니, 생명의 흔적이라곤 짧게 자란 관목들에서만 관찰되는 곳. 나는 자연스레 소설 어린 왕자의 주인공을 떠올렸다. 그가 불시착한 사막에서 어린 왕자라는 존재를 만난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과 함께. 조난된 사막 한가운데서 만난 유일한 존재가 자신에게 양을 그려달라고 떼를 쓴다면 무슨 느낌일까. 그때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양 떼를 보며 그런 쓸모없는 생각들을 했다. 몽골의 사막에서 나는 늘 어린 왕자를 떠올렸고, 생존의 관점에서 보자면 전혀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생각들만 했던 것 같다.


지겨우리만치 평지만 계속될 무렵, 우리는 저 멀리 오아시스 하나를 발견했다. 운전기사님은 우리가 연신 감탄사를 내뱉자, 센스 있게 오아시스 근처에서 차를 세워주셨다. 우리에게 몽골은 어디든지 미지의 영역이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정지하면 그곳의 풍경은 늘 우리에게 새로움을 안겨줬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에서 다뤄지던 오아시스의 모습과는 달랐지만(오아시스 옆에는 왠지 야자수가 버티고 있어야 할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아시스, 물이라는 존재는 이 사막에서 생명을 끌어모으는 힘이 있었다. 오아시스 주변에는 한가로이 물을 마시고 있는 말의 무리가 보였다. 영화 속 에메랄드 빛의 오아시스 물을 기대하며 가까이 다가갔지만, 오아시스의 물은 사람이 먹기엔 다소(상당히) 더러웠다. 그러나 물이 귀한 고비의 땅에서 저 물은 다른 동물들에겐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어미의 젖을 열심히 먹는 망아지를 보며 오아시스, 사막, 죽음과 생에 대해 생각했다. 사막에선 늘 자연스레 죽음과 생을 떠올리게 됐다. 그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생과 사의 아이러니를 닮아 있었다. 인간은 늘 죽음 앞에서 생을 상기하는 역설적인 존재들이다.

오아시스를 보고 난 뒤 다시 길을 달리는데, 갑자기 얼마 못가 기사 아저씨께서 차를 다시 세웠다. 평소보다 꽤나 빨리 찾아온 휴식시간에 의아했던 우리는 밖에 나와서야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 아저씨의 시선은 힘없이 내려앉은 타이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자동차 뒤에서 묵묵히 연장들을 꺼내 펑크 난 타이어를 교체한 뒤 다시 길을 내달렸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다시 끝없이 펼쳐진 갈색의 모래길을 달리고 있는데, 앞에 앉은 가이드와 기사 아저씨의 대화가 심상치 않았다. 몽골어라고는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나였지만 직감적으로 또다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차는 다시 한번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멈춰 섰다.

바람이 다 빠져버려 힘없이 주저앉은 바퀴는 흡사 죽은 동물의 가죽처럼 보였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타이어는 제 앙상한 림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기사님은 난감하다는 듯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가이드에게 들어보니 여분의 타이어마저도 이미 다 소진해버린 상태라서 이대로는 더 갈 수 없을 것이라 말했다. 순간 '사막에서 이대로 고립되는 건가?'싶었지만 웃기게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이 곳에서 그대로 하루나 이틀 정도 조난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몽골에서 그럴싸한 경험담 하나 만들어 가겠구나 하는 철딱서니 없는 기대까지. 한국에 돌아가면(돌아갈 수나 있을까? 아 짜릿해!) 술안주로 제격이겠다는 생각까지.


기사님은 재빨리 근처의 마을에서 도와줄 사람을 데려 오겠노라며 무작정 길게 뻗은 길로 걸어갔다. 몽골의 길은 사람들이 오래 다니며 자연스레 만들어진, 그야말로 흔적 정도로 남아있는 길이 대부분이었다. 우리에겐 잘 보이지 않았으나 그는 저 멀리에 마을이 있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야 희미하게 저 멀리에 신기루처럼 아른거리는 마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몽골인들의 시력이 좋다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가 떠난 방향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우리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저마다의 놀이에 몰두했다. 누군가는 수다를 떨었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으며 장난을 쳤고, 누군가는 책을 읽었다. 그러다 문득문득 우리는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핸드폰도 인터넷도 터지지 않는, 이 곳이 어디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곳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할 일의 범주는 빈곤했다. 몽골에선 우리가 얼마나 문명화된 사회에 익숙해 있었는지를 매시각 깨달을 수 있었다.


다행히도(?) 반신반의하며 오늘은 여기서 자야 하는 것 아닐까? 하고 불안해했던 생각은 기우였고 그는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기사님은 우리가 있는 곳까지 몽골인 한 명을 대동해왔고 우리는 타이어를 갈고 다시 길을 떠날 수 있었다. 문득 한국의 어느 오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누군가를 데려오는 일이 쉽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뒤의 여행에서도 느꼈지만 몽골인들은 서로를 살뜰히 살펴보고 처음 보는 여행자에게도 베풂을 나누는 사람들이었다.

몽골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목적지로 가는 길에도 끊임없이 우리의 눈을 자극하는 새로운 풍경들이 펼쳐진다는 점이었다. 커다란 송전탑 앞에 무리 지어 있는 낙타처럼 생뚱맞은 장소에 맞지 않는 소품처럼 놓인 풍경들은 늘 그렇게 우리의 상상력에 딴지를 걸며 다가왔다. 문명의 최전선처럼 놓인 송전탑과 한국에서 온 우리가 절대로 볼일 없던 낙타의 무리는 한국과 몽골만큼의 거리를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연병장에 도열한 병사처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도열한 송전탑과 그 앞에 자유로이 무리 지어 있는 낙타를 자꾸만 번갈아서 쳐다보았다. 그 옆에서 한 무리의 유목민들은 너무나도 일상적이라는 듯이 낙타의 털을 깎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다 문득 창밖을 보니 흙의 색깔이 눈에 띄게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시아의 그랜드캐년이라고도 불리는 차강 소브라가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이드에는 석회암질로 이루어져 흙의 색깔이 흰색을 띠고 있다고 했지만, 내 눈에 그곳은 난생처음 보는 붉은 기운으로 가득한 계곡이었다. 러시아의 키릴 문자와 흡사한 몽골어로 이루어진 표지판을 보며 어렴풋하게나마 우리는 오늘의 목적지였던 차강 소브라가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차강 소브라가에 도착하자 가이드는 우리를 깎아지를듯한 절벽 밑으로 안내했다. 경사가 40도는 넘을 것 같은 저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에 나는 적잖이 아연실색했지만 짐짓 태연한 척 가장 마지막에 계곡을 내려갔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모래가 가득했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모래가 가득했다. 고비사막을 경험하기 전에 처음으로 겪어보는 모래의 땅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고비의 모래를 상상했다. 물론 그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던지를 다시금 깨달았지만.


모래는 내가 발을 내딛을 때마다 중력에 의해 한없이 밑으로 흘러내렸다. 흡사 물분자의 알갱이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듯 한 풍경이었다. 태양은 우리를 태워버릴 듯이 뜨거웠지만 그늘에 들어서는 순간에는 믿을 수 없이 서늘했다. 그 순간 나는 문과임에도 불구하고 우습게도 번뜩하는 얕은 과학적 지식으로 습도가 전달하는 햇빛의 온도를 생각했다.

돌들은 희고 붉고 분홍빛이었다. 층층이 단면을 이루며 돌들은 송이버섯처럼 우뚝 솟아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지리 시간에 어렴풋하게나마 배웠던 지식들을 총동원해 그것들을 쳐다보았다. 굳건해 보이는 돌들은 가까이서 만져보면 생각보다 쉽게 바스러져 내렸다. 나는 석회암으로 이루어졌다는 이곳의 지형을 다시금 떠올려볼 수 있었다. 어느 것 하나 거칠 것이 없던 몽골의 파란 하늘과 붉은 돌들은 퍽 인상적인 대조를 이루며 내 눈앞을 버티고 서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레 영화나 TV 속에서 보던 화성 비슷한 저 먼 행성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어릴 적 뉴스로만 보던 패스파인더의 소저너나, 인간들이 비교적 최근에 화성 탐사를 위해 보냈던 큐리오시티 따위의 화성 탐사선과 로봇들을 생각했다. 마치 그곳에서 인간 화성 탐사로봇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혹은 마션의 맷 데이먼을 떠올리기도 했다. 화성에 가본 적이 없는, 앞으로도 가볼 일이 크게 없을 것 같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화성은 바로 이 곳이었다. 나는 사람 그림자라고는 보이지 않는 저 먼 곳의 붉은 계곡들을 바라보며, 화성이라는 곳은 얼마나 황량하고 외로운 행성 일지를 상상했다.

내게는 작은 화성과도 다름없었던 차강 소브라가를 탐험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물론 실제 화성이었다면 우주복으로 인해 더 힘들었겠지만). 세계는 오직 모래와 바스러지는 선홍빛 돌뿐이었고, 우리는 오직 두 발로 그곳을 오르고 내려야 했다. 앞사람에게 의지한 채로, 저 먼 곳의 가이드가 향하는 방향대로 우리는 조심스레 두 발을 바라보며 걸어야만 했다. 그것은 앞으로의 몽골 여행을 암시하는 작은 복선이기도 했다. 몽골 여행은 우리의 생각을 정리해주는 여행이라기 보다는, 생각을 조금 더(혹은 굉장히) 단순하게 만들어주는 여행이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오로지 앞서 가는 사람의 발걸음이자 방향이었다. 다른 생각을 하기엔 그곳은 너무도 큰 소우주였다.

지구라는 작은 행성 안에서 이렇듯 전혀 새로운 세계를 만날 때면 지금껏 내가 생각해왔던 세계란 얼마나 작고 부질없는가를 종종 느낀다. 아마도 여행은 그 겸손함을 계속해서 일깨워주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른 여행이 그 과정을 조금 더 길게 늘여놓는 여행이었다면, 몽골 여행은 집약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나라는 존재의 작디 작음을 깨닫게 해주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차강 소브라가를 마지막으로 이날의 일정을 끝마쳤다. 그리고 바로 다음 게르로 향했다. 몽골 여행에서는 게르와 게르 사이를 달리는 데에는 차로도 반나절이 걸렸다. 보통 이렇게 목적지가 뚜렷한 여행에서는 점으로 이루어진 여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몽골 여행은 그 점과 점 사이가 너무나도 길어서, 길고 지루하게 늘어진 선의 연속이 이루어진 여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몽골 여행에서의 기억은 장대한 풍경이 아니라 결국 그 여정에서의 작은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지곤 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게르 특유의 냄새를 맡으며 우리는 짐을 풀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어차피 다음날 떠나야 했기에 짐을 푼다는 행위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필요한 옷을 챙기고, 캐리어를 덮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여행자의 삶이란, 유목민의 삶이란 결국 그런 것이었다. 다음날 떠나야 하기에 짐을 풀거나 싸는 일에 그리 많은 힘을 주지 않는 것.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보통 2일씩은 묵었기에, 이처럼 숙소에서 짐을 단출하게 풀었던 적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가만히 누워서 살짝 열린 게르의 문 틈 사이로 밖을 보니 까마득한 지평선으로 해가 지는 모습이 보였다. 일곱 시쯤 됐으려나 하고 시계를 보니, 시간은 여덟 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지평선에 걸릴것이 없던 몽골에선 놀랍게도, 해가 지며 달이 뜨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해가 지고, 해가 지는 곳의 반대편에는 달이 뜨는 풍경을 동시에 보고 있으니 무척이나 생경했다. 온통 색다른 것 투성이었던 몽골에서도, 이 같은 풍경은 오직 이날만 볼 수 있었다. 해가 지면 달이 뜬다는 당연한 이치를 신기하게 느끼며, 그렇게 몽골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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