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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Feb 18. 2018

살아있는 모든 것엔 리듬이 있다

2017 몽골 여행(6/9)

몽골 여행의 네 번째 날. 이 낯선 땅은 생각보다 나에게, 우리에게 배타적이지 않았다. 나는 무엇을 생각한 걸까. 까마득한 오지 혹은 무시무시한 원주민들? 내 상상력은 편협한 서울 시민의 그것에 갇혀 있었다. 비록 몽골의 잘 닦인 관광지를 투어 했을 뿐이었던 내게 이런 섣부른 판단은 오만일 수도 있겠지만, 여행의 시간이 지날수록 드는 생각은 오직 "내 생각은 아직도 너무 편협하다"였다. 물론 상상력을 박살내기 충분한 시간들이 이 여행에는 더 남아있었지만.

몽골 여행의 기간을 통틀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루 종일 흐린 날이었다. 몽골의 쇳빛 하늘은 푸른 그것과는 색다른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조금씩 무거워졌고, 간헐적으로 빗줄기가 내렸다. 워낙 넓은 땅을 쉬지 않고 달리는 통에 나는 우리가 비구름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우직하게 목적지만을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할 일이라고는 책을 읽는 것뿐이었다. 인터넷도 터지지 않고 GPS 장비 따위는 가져오지 않은 우리가 목적지를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가이드에게 묻는 것뿐이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물론 "금방 도착한대"였다. 그녀 역시 운전기사에게 물어봤으므로 우리가 물어본다한들 별 뾰족한 수는 없었을 테다. 그러나 매번 금방 도착한다고 답변한 그녀의 말은 다른 의미로도 믿기 힘들었다. 몽골인의 시간 개념과 거리 개념은 당연하지만 우리와는 사뭇 다른 듯이 보였다. 그러니까, 가이드 혹은 운전기사에게 '금방'이라는 건 앞으로 100km도 더 남은 거리일 수도 있었다. 어릴 적 명절날이면 차 안에서 '엄마 얼마 남았어?'하고 물을 때마다 '응 금방 도착해'라는 답변을 듣던 기분을 다시금 느끼곤 했다.

목적지인 욜링암까지 가기 전에 우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내에 들렀고, 몽골 전통 식당에서 끼니를 때웠다. '호르슈'라는 몽골 음식을 처음 맛본 날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호떡 혹은 군만두 정도 되는 음식일까. 밀가루 반죽 사이에 양고기나 감자 등을 넣고 튀긴 음식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날 호르슈를 맛 본 뒤 매일 같이 호르슈를 연호했다. 호르슈는 몽골에서 그나마 우리의 입맛에 가장 익숙한 음식이었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보면 느끼하기 그지없는 음식이어서, 글을 쓰는 지금도 호르슈를 떠올리면 콜라나 케첩 생각이 간절히 난다. 몽골의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느낀 건 이 나라 사람들이 케첩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매번 몽골 음식을 먹으면서 왜 케첩을 좋아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케첩은 몽골 음식의 기름진 느끼함을 잡아줄 수 있는 최상의 소스였다. 케첩 특유의 맛을 선호하지 않아 감자튀김을 먹을 때에도 케첩을 찍어먹지 않던 나는 머지않아 몽골 음식과 케첩의 조합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간단히 장을 본 뒤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끊임없이 길을 떠나는 여행. 몽골에선 매일같이 점과 점 사이를 이동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우리는 독수리 계곡이라 불리는 욜링암에 도착했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승마체험이었다. 살아있는 생명체 위에 올라타서 이동수단으로 이용한다는 개념은 머리로만 알고 있었기에 무척이나 생소한 경험이었는데, 승마는 생각보다 너무도 간단했다. 올라타는 법을 배우고, 줄을 잡게 한 뒤 알아서 잘 가라는 식이었다. 앞에서 다른 몽골인이 내가 탄 말의 줄을 잡고 함께 가주기는 했지만 말을 컨트롤하는 건 전적으로 내 몫이었다. (알고 봤더니 한국, 제주도에서 승마를 할 땐 절대 이렇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물론 그만큼 스릴도 떨어지지만)

그건 의외로 두렵다기보단 낯설고 새롭다는 감정이었다.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내가 올라 탄 무언가가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감각은 그야말로 낯설기 그지없었다. 말의 움직임에 따라 내 몸도 함께 움직였고, 나는 앞뒤로 마치 리듬을 타듯이 위에서 끊임없이 흔들려야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살아있음의 강렬한 리듬은 몽골 여행의 가장 강력한 비유였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저마다의 리듬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몽골 여행도 그랬다. 서울에선 잊고 지냈던 생의 리듬. 몽골에선 생의 리듬이 매 시간 강하게 자각되며 우리를 깨웠다.

욜링암의 끝까지 말을 타고 달려 도착한 뒤, 우리는 사계절 내내 녹지 않는다는 욜링암의 얼음계곡을 둘러보았다. 워낙 승마의 경험이 강렬했던 탓에 푸른빛의 얼음계곡은 신기하기는 했으나 우리의 이목을 끌지는 못했다. 단지 얼음이 언 땅이 미끄러워 자꾸 넘어졌던 기억과, 계곡 사이를 흐르는 바람의 차가웠던 촉감만이 남아있다. 아, 그리고 호기롭게 얼음계곡 밑을 내려갔다가 자꾸 미끄러져 올라오지 못하는 한 몽골 어린아이를 구조해주던 기억까지. 세계 어딜 가나 어린 남자아이들의 치기 어린 무모함은 똑같구나-하는 생각을 속으로 했다.

얼음계곡을 구경한 뒤 다시 원래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가는 일은 왔던 길 보다 더 자유로웠다. 우리는 말을 타고 누구의 안내도 받지 않은 채 말 위에서 그저 달려야 했다. 말은 전보다 더 빠르게 달렸다. 몸은 앞뒤로 주체할 수 없이 흔들렸다. 꽉 붙잡고 말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자, 순간 말과 하나가 되는 기분이 들며 전에는 미처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흥분이 내 몸을 휩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뭐랄까, 그 순간만큼은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근사한 기마병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저 회색의 계곡을 돌아가면 그 너머에 중간계의 오크들이나 뿌연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새까만 적의 병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그 너머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우리를 태우고 저 먼 계곡 너머로 안내해줬던 몽골인들과, 얼굴에 장난기가 덕지덕지 붙은 아이들까지, 승마 체험이 끝난 뒤에도 우리는 한참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어는 단 한마디도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 발짓, 의미를 알 수 없는 의성어를 써가며 하는 의사소통에는 생각보다 거침이 없었다.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는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는 언어가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서로의 교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이해하려는 진실된 마음은 아닐까, 하고. 말 위에서 느꼈던 살아있는 존재의 리듬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언어는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고, 우리는 결국 그 생의 리듬을 감지하며 대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날은 특이하게도, 몽골 여행의 그 어느 날 보다도 하루 종일 동물과 함께했다. 한국에선 그 흔한 고양이가 오히려 몽골에선 귀했는데, 이날은 게르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자꾸 우리 게르 앞에서 알짱거리는 통에 그들은 우리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나도 몽골 여행을 한 뒤로 처음 본 고양이라 마냥 신기했다. 몽골에선 발에 차이는 동물이 말, 소, 야크, 양 떼였다(?). 고양이는 몽골 여행을 통틀어 딱 한번 마주친 산양과 빈도수가 같았으니, 그 정도로 희귀했던 셈 쳐야 할까. 뿐만 아니라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 고슴도치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너무 죽은 듯이 가만히 있어서 차마 가까이 가서 놀아주거나 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말의 등에서 살아있는 생명체의 심장박동을 느끼고, 체온을 나누며 리듬을 공유했던 그 날은 생의 기운으로 복작복작하지만 평화로운 밤이었다. 여전히 평화로웠던, 그리고 고요하지만 따스한 기운이 늘 주위를 감싸던 몽골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또 지나가고 있었다. 내내 흐리던 하늘은 어느덧 구름이 하나 둘 걷히고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벌써 해가 떨어졌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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