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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Mar 01. 2018

한낮의 청량한 나태

2017 몽골 여행(6/10) - 1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 마음속에 꼭 보고 싶은 풍경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그 풍경은 특정 도시나 장소일 수도 있고, 자연현상이거나 어떤 사람일 수도 있다. 웅장하거나 화려할 수도 있지만 남들이 보기엔 별 것 아닌 풍경일 수도 있다. 내게도 막연히 언젠가는 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마음속 풍경들이 있었다. 그런 풍경들은 대부분 나로 하여금 장소 자체보다는 그곳에서 이는 내면의 감정을 함께 상상하게 했다.


내겐 사막이 그런 장소였다. 사막이 어떤 나라에 있는지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그곳을 떠올릴 때면 늘 함께 연상되는 거대한 모래언덕과, 바람을 타고 물결처럼 일렁이는 작고 부드러운 모래 입자들의 움직임, 그리고 쏟아질 듯 머리 위를 지붕처럼 덮고 있는 별들의 이미지까지. 나는 당연스럽게 그 풍경을 딛고 서 있는 내 감정을 다양한 방법으로 상상했다. 경험하지 못한 장소를 떠올리며 펼치는 상상의 나래는 일견 순수한 면도 있었다.


몽골 대륙을 여행하기 시작한 지 5일째 되던 날, 드디어 하루의 최종 목적지가 고비 사막인 날이었다. 오직 사막만을 떠올리고 떠나온 몽골 여행의 하이라이트와도 같은 날이었다.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는 이미 600km 넘게 달려와 있었다.

핸드폰을 게르에 두고 온 한 일행 덕에 아침부터 소란을 부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유쾌하게 들떠있었다. 우리는 그 일행에게 적절한 장난과 위로를 건네며 나름의 방식으로 서로를 다독였다. 그건 일견 유쾌하기까지 했다. 몽골에서의 감정은 늘 서울에서보다 직설적인 부분이 있었다. 표피를 한 꺼풀 벗어던진 동물의 가벼움 같은 느낌이었달까. 몽골에서 느낀 감정의 예리함은 서울에서 생각되는 '날이 선'이라는 묘사와는 결을 달리 했다. 몽골에서 우리의 감정은 0.000001의 단위까지 정확하게 계산된 포탄의 궤적처럼 마음의 좌표에 적확하게 가 닿았다. 그게 상대방의 마음이든 내 마음이든.


그렇게 늦은 출발을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문득 차창 앞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길고 불규칙한 흰색의 띠였다. 그 하얀 띠는 하늘과 땅 사이를 가르는 경계선처럼 위치해있었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그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생경한 풍경이었다.


사막이었다.

멀리서 보는 사막은 곱고 새하얀, 그러나 울퉁불퉁하게 그어진 하나의 선처럼 보였다. 저렇게 길고 거대한 하얀색의 무언가가 전부 모래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사막을 오르기 전까지도 전혀 실감 나지 않았다. 그건 그저 하나의 컴퓨터 그래픽 같은 허구의 무언가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습게도, 나는 저 모래의 양이 전부 얼마나 될까, 교과서에서만 보던 사막화의 진행이라는 건 바로 저런 것이구나 하는 따위의 생각을 했다. 머지않아 우리는 거대한 사막의 언덕이 보이는 게르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가장 이동이 적은 날이었다.

게르에 도착해 점심을 해 먹고 난 뒤, 다 귀찮아져서 삐그덕거리는 침대에 쓰레기를 버리듯이 몸을 던졌다. 그러나 이내 무료해진 나는 저 멀리 보이는 흰 띠의 사막을 향했다. 동행들도 무료했는지 나를 따라나섰다. 그곳으로 가는 길엔 초록의 억센 풀들이 자라 있었다. 군데군데 야트막한 모래 언덕이 있었고, 모래 언덕에는 풀들이 안간힘을 다해 바스러지는 모래를 붙들고 서 있었다. 그 풀들은 녹음이라는 생명의 최전선에서 다가오는 죽음의 모래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전사처럼 보였다. 일종의 비장미까지 느껴지는 그 풀과 모래 사이의 경계를 나는 한없이 바라봤다. 생과 사가 만나는 그 경계를 보고 있으면 무슨 느낌이 들지 궁금했다. 그곳에 가 보고 싶었지만, 몽골에서 하찮은 내 거리 감각은 이미 망가져 있었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그 땅의 끝에 갈 자신이 없어져버린 나는 이내 다시 게르로 돌아갔다.

얇은 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 방음 따위는 전혀 되지 않는 게르 안에 있었음에도 바깥은 고요했다. 대지에는 바람소리만이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자그맣게 열린 게르의 문 바깥으로 지나가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한낮의 게르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에는 어쩐지 나태한 구석이 있었다. 이유 있는 나태, 정당한 게으름. 입에서는 바람에 실려 온 모래가 찝찔하게 서걱거렸지만, 몽골에서 부리던 한낮의 나태는 청량하고 감미로웠다. 일상의 축축하고 음습한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나태였다. 나는 그 청량한 감정을 마음껏 들이켰다.

잠시 뒤, 가이드는 우리가 묵고 있는 게르로 찾아왔다. 그녀는 우리에게 낙타를 타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낙타고 사막이고 다 때려치우고 그냥 누워서 지나가는 구름만 보고 싶었지만 내가 낸 돈과, 어쨌든 가이드의 말을 잘 따라줘야겠다는 일종의 의무감에 게르 밖으로 나왔다. 게르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어느새 우리를 태우고 게르 근처를 산책하듯이 돌아다닐 낙타들이 방금 전까지 내가 즐겼던 나태함의 형상처럼 앉아 있었다. '낙타 같은 나태함'이라는 새로운 비유를 찾아내어 그 표본을 눈 앞에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낙타의 등에는 비죽 튀어나온 혹이 두 개 있었다. 동북아시아에서만 서식한다는 쌍봉낙타였다. 두 개의 혹은 낙타의 등에서 초등학생 시절에나 그렸을 법한 산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낙타들은 앉고 설 때마다 무릎을 특이하게 굽혔다 폈다. 그들의 관절은 일종의 로봇 같이 보이기도 했다. 뒷다리 두 개를 먼저 펴고 난 뒤에 앞다리를 펴고 일어섰는데, 그때마다 내 몸은 급격한 경사의 변화를 겪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덕분에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겁에 질린 비명이 새어 나왔다.

낙타의 등에 타는 경험은 말을 타고 계곡을 질주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종류의 활동이었다. 낙타가 빨리 달릴 때는 꽤나 속도를 내는 동물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몽골에서 관광객들이 타는 낙타는 일종의 '색다른 경험'을 위해 속도를 느리게 하여 걷게 하는 듯 했다. 그들은 '낙타 같은 나태함'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느긋하고 천천히 움직였다. 자꾸만 우물거리는 입의 움직임도 느렸고, 감았다 뜨는 커다란 눈꺼풀의 움직임도 느렸다. 느리게 움직이는 낙타의 발걸음은 전부 구분동작이 되어 내 눈앞에 보였다. 에드워드 마이 브릿지의 <움직이는 말>이라는 작품을 낙타의 형상으로 보고 있는 듯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낙타는 왼쪽 다리 전체와, 오른쪽 다리 전체가 한 번에 움직인다는 사실이었다. 일반적인 4족 보행 동물이 보여주는 '왼쪽 앞다리, 오른쪽 뒷다리->오른쪽 앞다리, 왼쪽 뒷다리'의 움직임과는 다른 기묘한 움직임이었다. 그 움직임은 약간의 멀미를 동반하며 왔다.


내가 낙타의 등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곤 꼬부라진 쌍봉낙타의 혹 밖에 없었다.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느릿느릿 움직이는 낙타 위에서도 적잖이 긴장해야 했다. 낙타의 혹은 계속해서 흐물거리며 움직였고, 주위에 난 털은 손질 해주지 않아 털이 다 빠진 빗자루의 지푸라기 같았다. 손바닥에 와 닿는 동물의 낯선 촉각과 내 앞에 속수무책으로 밀어닥치는 지평선의 압도감, 그리고 낙타의 낯선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경미한 멀미는 그 무엇도 익숙해지지 않는 경험들이었다.

한 차례의 낯선 움직임을 끝내고 난 뒤, 우리는 게르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그때까지 나는 또 다른 낯선 움직임이 내 앞에 놓여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우리는 차에 올라 타 저 멀리 보이는 흰색의 거대한 띠로 향했다. 홍고링엘스, 사막의 거대한 모래 언덕으로 향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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