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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Mar 08. 2018

사막의 밤

2017 몽골 여행(6/10) - 2

*사진이 꽤 많습니다.

특정한 형태를 띠고 있지 않으며, 중력에 의해 아래로 흐르고, 사람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든다. 살아있다고 하기에도, 죽어있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존재지만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사람의 몸을 휘감아온다. 언뜻 물에 대한 묘사같지만, 이는 손바닥에서 바스러지며 흘러내리는 모래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존재의 양 극단에 놓인 것 같은 둘은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

홍고린 엘스의 모래는 마치 물 같았다. 결을 이루며 바람의 흔적을 고스란히 새겨내던 거대한 모래의 언덕은 물처럼 흐느적거리며 한없이 아래로 흘렀다. 발걸음을 위로 옮기면 옮길수록 모래는 체중을 고스란히 실은 채 나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아래서 보기엔 자그마한 동네 뒷 산 정도로 보이던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며, 나는 공포를 느꼈다. 끝없이 발을 굴러도 제자리에 머물기를 반복하는 내 걸음과, 주위를 둘러봐도 온 통 흐르는 모래뿐인 시야. 눈 앞을 온통 가득 채운 모래는 자그마한 알갱이가 아니라 하나의 군집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생물처럼 느껴졌다. 더딘 걸음이나마 오르면 오를수록 경사는 더욱 가파르게 솟아올랐고, 이에 따라 내 몸이 아래로 흘러 내려가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모래는 내가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웅-웅-거리며 기묘한 소리를 냈다. 모래 속의 빈 공간이 채워지며 떨리는 공기가 내는 소리였다. 노래하는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홍고린 엘스는 노래라기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그건 마치 사막이 내게 보내는 경고 혹은 야유 같았다. 죽은 땅이라 불리는 사막에서, 나는 살아있기에 역설적으로 더 생생하게 고통스러웠다.

나는 먼저 꼭대기에 도착한 일행들을 한없이 쳐다보며 가쁜 숨을 자꾸만 몰아쉬었다. 겨우 네다섯 살 어린 동생들과 내 체력이 이 정도나 차이가 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하고 싶었으나 포기하기엔 이미 너무 많이 올라와있었다. 등산을 하든 길을 걷든 무형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든, 무언가를 향해 나아갈 때 나를 포기하지 못하게 만든 건 포기하기엔 이미 내가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절대로 내가 강한 정신의 소유자라거나 거창한 이유를 갖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뒤돌아서 가기에도 애매하고, 앞으로 가기에도 막막할 때 답은 지금까지 한 게 아까워서라도 '될 대로 되라지'하면서 그저 앞으로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통을 미리 알았더라면 시작도 안 했을 텐데'하는 후회는 늘 시작하고 난 뒤에야 뒤늦게 왔다.

나는 그렇게 언덕을 올랐다. 대단한 사명감도, 끈질긴 오기도 아니었다. 그저 뒤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기 때문이었다. 먼저 올라간 일행들의 기쁨에 찬 탄성을 들으며 나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지만,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는 없었다. 사막의 진짜 무서운 점은, 모래 안에서는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언덕을 오르는 일은 오롯이 혼자서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앞사람이 남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뭉그러진 발자국을 보며 절망스럽게 올라갔다. 그건 우리 삶의 작은 은유이기도 했다. 삶을 살아내는 일이든 사막을 오르는 일이든,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는 없다는 점에서 그랬다.

분명 이때까진 갈만 했던 것 같은데..

근처에 고도가 높은 곳이라고는 오직 홍고린 엘스라 불리는 언덕밖에 없던 그곳의 꼭대기에 오르자, 눈 앞을 뒤덮고 있던 거대한 모래의 장막은 사라지고 탁 트인 시야가 내 앞을 차지했다. 높은 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과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몽골의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은 높은 곳에서도 여전히 아득하리만치 끝없이 이어져있었다.


모니터 속 현실감없던 사막의 풍경은 실제로 존재하는 풍경이었다. 케이크에 발린 생크림처럼 매끈하고 예리하게 깎여있는 모래 능선과, 산처럼 보이는 모래 등성이들이 모여 아득하게 펼쳐진 모래 언덕. 바람에 흔들리는 모래의 결과, 물처럼 유연하게 흐르며 내 몸을 감싸는 고운 모래 알갱이 위로 지금껏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색으로 물들며 저물어가는 태양. 날마다 저물며 죽어가고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의 기묘한 빛은 그렇게 사막에 명암의 극명한 대비를 주며 비현실성을 더해주고 있었다.

해가 저무는 사막의 태양을 보며, 우리는 가이드가 깜짝 선물로 가져온 맥주를 들이켰다. 오랫동안 밖에 나와 있던 맥주는 미지근했지만 지금껏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맥주의 맛이었다. 세상의 어떤 맛은 때론 풍경에 의해 좌우되곤 했다. 여행의 매력은 별 볼 일 없는 음식, 일상에서도 흔히 맛볼 수 있던 음식의 맛을 새롭게 깨닫는데서 오기도 한다.


맥주를 마시다가, 손으로 한 움큼 모래를 집어보았다. 모래는 손바닥 안에서 물처럼 흘러내리며 바람에 실려갔다. 어릴 적 놀이터 모래사장에서 모래를 갖고 놀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시절 나는 살아있는 존재가 죽으면 모래로 변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게 놀이터의 모래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묘지였다. 생명이 죽어 변해버린 건조한 가루. 평소엔 흐트러지지만 물을 부으면 단단하게 굳어 성이 되기도, 집이 되기도 하던 모래. 그때 내가 갖고 놀던 모래는 모두 어디서 온 걸까. 그 시절의 나는 모래를 갖고 논 뒤에 손에 느껴지는 찝찝한 이물감이 죽은 존재들의 흔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장소는 달랐지만, 모래를 만지고 난 뒤에 손에 느껴지던 이물감은 어릴 적의 그것과 같았다.

사막의 풍경을 한없이 바라보며 감탄하던 우리는 주위가 어두워졌음을 느끼고, 챙겨 온 간이 썰매(?)를 이용해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조금 더 발에 와 닿는 모래의 감촉을 느끼고 싶어 맨발로 사막을 내려갔다. 올라올 때는 한없이 힘들었는데, 내려가는 일은 순식간이었다. 아쉽고 억울해서라도 천천히 내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모래는 여전히 웅-웅-소리를 내며 울어댔다. 달이 뜬 기묘한 사막을 배경으로 퍽 잘 어울리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내려가기 못내 아쉬웠던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그날 우리는 늦게까지 웃고 떠들었다. 사막의 노을 지는 풍경이 얼마나 멋졌는지, 올라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표현하진 않았지만 힘든 일을 함께 해냈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 사이에 일종의 동지애, 전우애가 생겨나고 있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이야기가 자그마한 게르 안에서 어지러이 얽히며 우리는 밤을 맞았다. 별을 보기 위해 게르 밖으로 나갔을 땐 별이 아니라 커다란 달이 떠 있었다. 섬뜩하리만치 희고 차가운 달빛은 가로등 하나 없는 우리 위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달빛이 너무 밝아 별들이 숨어버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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