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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Nov 06. 2018

그녀는 사막을 뒤로하면
호수가 나타난다고 했다

2017 몽골 여행 (6/12-13)

사막을 뒤로한 채 우리는 북쪽에 있다는 거대한 호수를 향해 움직였다.


우리의 지난 일주일이 온통 모래로 가득한 땅으로의 여정이었다면, 남은 일주일 동안은 온통 물이 가득한 곳으로 향하는 셈이었다. 몽골이라는 나라에는 어쩐지 중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호수가 마치 바다 같아서 수평선이 보일 정도라는 가이드의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봐야 '북극에는 북극곰이 살고, 백두산 꼭대기에는 천지가 있다더라' 정도의 실감 밖에는 나질 않았다. 경험해보지 못한 진실은 차라리 허상에 가깝게 느껴졌다.


자동차는 여덟 명의 사람을 싣고 쳉헤르 온천을 향해 부지런히 이동했다. 세계 각지의 여행자들이 방문한다는 쳉헤르 온천은 거대한 홉스골 호수에 도착하기 전에 들르는 장소들 중에서도 몇 안 되는 크고 또렷한 목적지 중의 하나였다. 우리의 여행에는 이제 기대할만한 목적지가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문득 여행이 중반부에 다다랐다는 것이 실감 났다. 동행들은 온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어했다. 나는 남들 앞에서 물에 들어가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대체로 시큰둥했으나, 온천이라는 장소가 주는 이미지-수증기가 의뭉스럽게 피어오르고 그 수증기를 따라 따뜻한 기운이 가득 퍼지는 모습-를 떠올리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지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몽골을 여행한 뒤로 기대하기 힘들었던 제대로 된 샤워를 할 수 있을 터였다. 그곳은 물이 넘쳐나는 곳일 테니까.

온천으로 가기 전에 엉긴 사원과 어르헝 폭포라 불리는 곳 근처에서 각각 하루를 머물렀지만 미안하게도 몽골 여행이란 굵직한 점을 향해 이동하는 선으로의 여행이었으므로, 어설픈 장소에는 눈길이 가지 않았다. 마치 매일같이 환승을 위해 스쳐가는 신도림 역 같은 곳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그런 느낌이었다. 결국 잠시 머물 장소에 준 시큰둥한 눈길은 설익은 인상을 남긴 채 엉뚱한 이미지로만 남았다. 이를테면 사원은 기억나지 않고 거대한 폐허 앞에서 태양이 너무 뜨거워 빨간 우산을 펴던 동행의 모습이라든가, 폭포는 안중에도 없고 그 앞의 커다랗고 평평한 바위에 누웠을 때 얼굴로 떨어지는 햇살이 따사로워 눈을 붙이던 일 따위가 그랬다. 그렇게 여행의 선 위에 남은 흐릿한 점은 점이라는 형체도 남기지 못한 채 그저 하나의 선으로만 기억되었다.

우리가 머물던 게르의 대부분은 일종의 무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유목민들의 무리는 아니고 여행자들을 위해 만들어 둔 빈 게르가 여러 동 모여있는 형태였는데, 여기엔 물론 관리를 위해 실제로 머물고 있는 몽골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꽤 자주 봤을 텐데도 불구하고 여행자였던 우리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특히나 꼬마들은 우리를 보며 내심 함께 놀아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아이들에게 몇 안 되는 몽골어와 어설픈 손짓을 써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어울려 뛰놀았다. 그러나 대개 대화는 매끄러이 이어지지 않아서 대화의 대부분은 웃음소리로 채워졌다. 한국에서 대화의 단절 사이에 끼어든 웃음이란 어색함을 의미했지만, 이곳에서 대화가 끊어진 자리에 스며들던 웃음에는 아쉬움이 더 짙게 베여있었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 원활한 소통이 어려운 것이 못내 아쉬웠으나, 우리는 눈빛으로도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하기도 했다.


이 곳에서의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의 어색함과 불편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나는 매 초 흘러가는 시간을 아쉬움으로 붙잡으려 했다. 빨간 우산이 바람에 뒤집히던 별 것 아닌 상황에도 자지러지게 웃고, 멸망한 땅 위에 오직 우리만 남아있는 것 같은 거대한 황야의 한가운데에서 파스타를 해 먹으며 감동하고, 이 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던 모든 풍경과 감정들을 내 안에 담아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질없는 소망을 바라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평탄하기 그지없던 내 감정의 그래프가 요동치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몽골의 공기에는 혹시 한국의 공기와는 다른 향정신성의약품이 섞여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너무 넓고 황량해서 차라리 백색에 가깝게 느껴지던 황야의 풍경에 조금씩 초록색이 끼어들고 있었다. 북쪽의 호수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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