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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ming the World
by 정욱 Nov 08. 2017

머리를 비우는 연금술

내가 요리하는 이유

***배고픈 밤에 보면 저를 매우 원망하실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얼마 전, 내가 쓴 글에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댓글을 달았다. 있어보이는 척 하려고 애썼지만 내용도 없고 과장된 수사만 가득한 쓰레기 같은 문장의 집합체라는 것, 차라리 정보라도 제공하는 블로그성 글이 더 낫겠다는 것이 댓글의 요지였다. 나는 반박도 하지 못한 채 모니터를 멍하니 쳐다만 보았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건 꿈이었다. 어두운 방 한켠에서 조용히 음악을 재생하고 있는 핸드폰의 화면을 켜 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였다. 요즘 이렇게 부쩍 새벽에 깨는 일이 늘었다. 불을 켜고 영화를 한 편 보고 난 뒤 이른 하루를 시작했다.

생애 첫 책의 출간을 앞둔 부담감 탓인지, 요 근래 글을 쓰며 받은 스트레스 탓인지 꿈을 자주 꾼다. 내용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헤어진 연인들이 하루 걸러 차례로 등장하는가 하면 군대를 다시 가는 꿈(...)도 꾸고, 악플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차라리 귀신이 나오는 꿈이면 비현실적이라서 좀 더 나으려나 싶지만, 세상에서 귀신을 제일 싫어하는 나에겐 그것도 그리 좋은 꿈은 아닐 것 같다. 이상하게 꿈인데도 논리정연해서 더 생생하게만 느껴진다. 언젠가 닥칠 미래의 일일 것만 같아서.


예전에 천계영의 언플러그드 보이가 남긴 유명한 대사가 떠오른다.

'난 슬플땐 힙합을 춰'


뭐, 슬픈건 아니지만 이렇게 뒤숭숭한 꿈을 꾸고 난 뒤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다거나,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아 생각정리가 필요할 때면 나는 요리를 한다. 재료를 준비하고, 준비된 재료를 적절한 순서에 넣어 최상의 맛을 끌어올리는 일. 요리를 하는 순간에는 오직 이 순간에만 집중해야 한다. 게다가 주방은 불이 피어오르고 칼이 날아다니는 곳이다. 까딱 잘못했다간 몸에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전쟁터의 축소판이다. 어떤 잡념도 들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서 자연스레 머릿속의 복잡다단한 생각들이 정리되는 과정. 내게 요리는 마치 요가나 명상과도 같은 행위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요리를 하곤 하지만, 사실 요리는 여러모로 매력적이다. 붉은 색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보기만해도 맛없어보이는 고기가 갈색빛을 띄는 깊은 풍미의 스테이크가 되는가 하면, 멸치를 끓여낸 멸치육수는 전설의 엘릭서 마냥 된장찌개 맛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 뿐인가, 밀가루 반죽이 빵이 되고 쿠키가 되는 과정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요리는 일종의 연금술 과정과도 같다. 마녀가 커다란 솥 앞에서 정체모를 초록색 액을 펄펄 끓이듯이 그렇게 비밀의 레시피로 저녁식탁을 행복의 마법에 빠트리는 것, 그것이 요리가 지닌 마법이다.


내가 요리하는 이유는, 머리를 비우는 과정에서 식탁과 감정은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과 맥주 한캔, 달콤한 쿠키와 향긋한 홍차 한잔. 우리의 하루를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엘릭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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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사진. 때때로, 여행.
Team Kailua Photowriter, nest behind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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