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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Jan 23. 2018

지독히 연극적인 영화

우디 앨런 <원더 휠>

*브런치에서 제공하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했습니다.

*스토리보다는 영화적인 장치들을 위주로 해석했습니다만,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스토리도 흥미롭고 괴상하게 아름다운 영화지만, 극적인 장치들이 무척이나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놀이공원에서 관람차는 높은 곳에 서서 그 모든 것들을 내려다 보며 느긋하게 돌아간다. 놀이공원에서 이만큼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놀이기구가 또 있을까. 요란스런 놀이기구들 사이에서 저 혼자 고고한 척 돌아가며, 세상의 소음에서 단절된 채 각각의 관람차 안이 결국 하나의 세계가 되는 완벽하게 고립된 공간을 가진 기구.


제목부터 관람차의 이름을 빌려왔지만, 영화는 단 한번도 관람차를 제대로 비추지 않는다. 마치 늘 배경 어딘가에서 목격되지만 사람들의 흥분 섞인 괴성과 보기만 해도 아찔해지는 롤러코스터들 사이에 묻혀 전혀 주의를 끌지 못하는 그 관람차처럼, 영화는 관람차를 닮아있다.


영화 <원더 휠(2017)>이다.

주인공 지니는 코니 아일랜드에서 웨이트리스를 하며 지내는 여성이다. 그녀의 집은 놀이공원 한복판 어느 오락사격장의 2층에 위치해 있다. 놀이공원이라는 여흥의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섬 같은 집. 연극무대 뒤편의 배우 대기실처럼, 그녀의 집은 놀이공원의 극적인 행복함과는 다른 현실의 공간이다. 이 같은 집은 한때 여배우였던 그녀의 처지를 보여주는 삶의 잔인한 비유다.


그녀의 남편 험티 역시 놀이공원 직원이다. 그는 회전목마를 운영하는 일을 맡고 있다. 지니와 험티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지만, 아들은 그의 핏줄을 이어받은 자식이 아닌 지니가 전 남편 사이에서 얻은 자식이다. 그러나 그 역시 지니가 아닌 다른 이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이 있다. 딸의 이름은 캐롤라이나. 갱과 결혼해 아버지와 의절한 채 지내던 그녀는 남편 조직의 비밀을 경찰에 이야기한 뒤 집을 도망쳐나와 험티와 지니가 있는 코니 아일랜드에 몸을 숨긴다.


그리고 해양안전요원 믹키. 지니, 캐롤라이나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 남자 역시 시끌벅적한 해안에서 홀로 높은 곳에 올라 유유히 사람들을 쳐다본다. 어디서부터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이 남자의 자기소개는 유명한 극작가를 꿈꾸는 캐릭터에 더 없이 적절해보인다.

영화는 과거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지니가 젊고 잘생긴 극작가 믹키를 만나 부질없는 꿈을 꾸며 미래를 그리다 겪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니가 과거를 회상할 때면 화면은 온통 따스한 주황빛으로 가득해진다. 지니에게 과거가 갖는 의미를 화면에서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에 지극히 현실적인, 그리고 암울하기만 한 미래를 떠올릴때면 늘 파랗고 창백한 조명이 비춘다. 스토리는 평범하고, 때론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하지만(부부에게 각자 다른 남자, 여자의 자식이 있는 탓에 이 가족의 관계도는 일반인의 그것에 비해 세 배는 더 복잡해진다)화면은 경이롭다.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조명도, 전직 여배우를 꿈꾸며 짐짓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듯한 태도의 지니도, 극작가를 꿈꾸며 현실과 거짓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믹키도까지도, 영화는 온통 연극적인 장치로 가득하다. 관객은 스크린에 펼쳐진 한 편의 연극무대를 보고 있는 착각에 휩싸인다.

왜 영화의 제목이 정작 영화 속에선 언급도 될까 말까 한 <원더 휠>일까.


놀이공원은 지극히 극적인 요소로 가득한 공간이다. 놀이공원이라는 공간은 허구로 가득한 그야말로 '꿈과 환상의 세계'다. 이 공간 속에 서 있는 관람차의 지위는 영화를 보고 있는 관람객의 지위를 닮았다. 가끔씩 보이지만 어떤 주의도 끌지 못하는 관람차처럼, 영화는 관객이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 쯤이면 믹키라는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한다.


가끔 너무나도 연극적이라서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이 캐릭터는 <애니 홀(1977)>, <매치 포인트(2005)> 등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브레히트의 충실한 대리인이다. 우디 앨런은 그 유명한 브레히트의 낯설게하기, 소외효과를 극적 장치로 종종 집어넣는데, 이는 지극히 연극적인 요소이며, 관객으로 하여금 극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여 끊임없이 비판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믹키라는 존재를 통해 이 영화에서 관객은 곧 관람차이자 원더 휠이 되는 것이다.


영화는 끊임없이 연극적인 요소를 통해 이 영화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연극을 꿈꾸는 영화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수 많은 연극적인 장치는 마지막 장면에서 햇살이 마치 무대 위의 핀라이트 처럼 지니에게 비출때 절정에 다다른다. 영화가 숨겨 두었거나 우리에게 보여준 수 많은 연극적장치는 결국 여배우였던 지난날을 잊지 못하고 늘 라디오 극을 들으며 배우를 꿈꾸는 지니라는 존재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영화가 모두 끝나 그녀에게 비추던 조명도 모두 꺼졌을 때, 그녀가 펼친 한바탕의 연극도 끝났다. 그건 그들이 다시 돌아가야 할 현실의 잔인한 비유였다.


여담1: 극적인 장치들이 무척이나 흥미로운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여주인공의 감정 만큼이나 울긋불긋해지는 영화 속 장면들의 아름다운 미쟝센은 러닝타임 한 시간이 넘어가면서 흥미가 떨어진다. 인간 내면의 고독, 질투, 미래에의 희망 등을 이야기 하지만 이야기는 쭉 뻗어나가지 못한다.


여담2: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는 역시나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그녀는 여전히 내게 <이터널 선샤인(2004)> 속 클레멘타인을 떠올리게 한다. 클레멘타인 역시 묘하게도 주황색과 푸른색의 머리가 그녀의 심리상태를 반영했다.


여담3: 스틸컷의 출처는 각 사진의 오른쪽 아래 하단에 적혀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jw_yoon_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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