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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Nov 08. 2018

카페 '어떤 오후'

커피를 즐기는 완벽한 시간

커피를 즐기는 완벽한 시간은 언제일까? 이른 아침 마시는 모닝커피는 유희의 영역이기보다는 차라리 생존의 영역에 더 가깝다. 밤을 새우면서 마시는 커피는 말할 것도 없다. 식후에 마시는 커피는 어쩐지 습관의 영역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아마 커피 자체가 온전히 목적이 되는 시간은 오후 세 시 즈음의 나른한 햇살이 내리쬐는 시간일 것이다. 정점에 올랐던 해가 힘을 다하고 서서히 지상을 향해 내려오는 시간.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도 아니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도 아닌 시간. 그래선지 방향을 잃어버리기 쉬운 시간. 이런 시간 만큼이나 온전히 커피를 즐기기 좋은 시간이 또 있을까. 예로부터 영국인들이 괜히 이 시간에 애프터 눈 티를 즐긴 것이 아니다.

평일 오후 세 시 즈음에 카페에 앉아 한적하게 커피를 즐길 수는 없겠지만 일상에서 벗어난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그런 유희를 즐길 자유가 주어진다. 한가로운 주말의 어느 날 녹색이 보이는 교외로 나가 커피 한잔을 즐기거나 하는 시간이 그렇다. 그럴 때면 여유라는 무형의 존재는 유형의 무언가가 되어 우리 눈앞에 드러난다.


애월읍에 있는 카페 어떤 오후는 이름에서부터 나른한 햇살이 내리는 오후에 커피를 마시는 자신을 떠올리게 한다. 심지어 어떤 오후의 예전 이름은 카페 오후 네 시였다. 그야말로 커피를 마시는 완벽한 시간을 형상화한 것 같은 카페다.

작은 마을 한 쪽에 자리 잡고 있는 카페 어떤 오후는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여유로움이 묻어나온다. 널찍한 입구, 가게 앞에 놓여 있는 야외석과 바람에 흔들리는 얇은 커튼,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카페 내부의 모습.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한가로운 오후 시간대에 시간을 죽이며 햇살을 받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내 모습을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되는 곳이다. 괜스레 고풍스러운 테이블에 평소엔 읽지 않았던 책 한 권을 꺼내어 놓고 싶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카페 어떤 오후의 내부 인테리어는 앤티크한 콘셉트로 구성되어 있다. 오래된 촛대에서 흘러내려 제멋대로 굳은 촛농과, 낡은 의자들. 통일되지 않아 따뜻함이 묻어나는 인테리어다. 모던과 깔끔함이라는 이름으로 살균된 일관된 인테리어가 주는 자본주의의 차가움이 줄 수 없는 아늑한 분위기. 통일되어있지 않다는 것과 난잡하다는 것은 결코 동의어가 될 수 없음을 카페 어떤 오후를 보면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요즘 빈티지, 앤티크에 열광하는 이유를 이런 카페들에 올 때마다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가게 안팎으로 보이는 초록의 녹음들은 자칫 삭막해질 수 있는 회색의 콘크리트 카페에 생명의 기운을 더해준다.

각종 SNS에서 이 카페의 유명세를 일으킨 음료는 다름 아닌 아인슈페너. 강렬한 아메리카노나 드립 커피가 아닌 부드러운 휘핑이 올려진 아인슈페너는 어쩐지 카페의 나른함을 닮아있다. 휘핑이 올라가는 음료의 경우에는 요즘 유행하는 더티 커피 스타일로 내놓는 게 특징이다. 잔에서 넘쳐 표면을 타고 흘러내릴 정도로 가득 담긴 커피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먹음직스럽다.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인정 넘치는 이웃에게 커피를 대접받는 기분”이랄까. 물론 마실 때 손에 묻어 끈적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아인슈페너가 아닌 콜드브루 캐러멜 라떼를 시켰다. 맛은 근래 들어 유행하는 맛인 솔티드 캐러멜과 흡사했다. 지나치게 달지 않게 맛의 균형을 잘 맞췄다는 생각이 드는 맛이다.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도 신맛과 쓴맛이 조화가 적절하다. 어떤 오후는 커피가 들어가는 모든 음료를 핸드드립으로 만들기 때문에 맛의 편차는 있을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단순히 비주얼만 그럴싸한 것이 아니라 맛도 좋다.


커피와 함께 시킨 스콘의 맛도 좋다. 자칫 잘못 만들면 우유 생각이 간절해질 만큼 퍽퍽할 수 있는 빵이 바로 스콘인데, 어떤 오후의 스콘은 특유의 식감이 살아 있으면서도 너무 퍽퍽하지 않아 커피 한잔과 먹기에 알맞다. 스콘과 함께 선택할 수 있는 스프레드의 종류가 인상적인데, 감귤 스프레드와 크림치즈는 스콘의 고소한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밋밋할 수 있는 스콘의 맛을 한껏 끌어올려준다. 다른 선택지인 말차 스프레드가 궁금해진다.

전체적으로 카페 어떤 오후에서 즐긴 오후의 티타임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대부분 카페는 카페의 이름을 닮아있다. 카페의 정체성을 전면에 드러내는 게 바로 카페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카페 어떤 오후는 정말 ‘어떤 오후’의 한 때를 떠올리게 하는 카페였다. 아늑한 이웃의 집에 초대받아 거실에서 수다를 떨며 차와 디저트를 대접받고 있는 듯한 곳. 작은 곳에 주인의 세심한 취향이 깃들어 있는 장소. 스며드는 햇살과 하늘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커피를 즐기는 완벽한 시간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후의 어느 한때에 카페 어떤 오후를 들러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이다. 물론 추천하는 시간대는 사람이 붐비지 않는 평일의 낮 세시 혹은 네시 사이다. 아마 커피를 마시는 완벽한 시간이라는 표현에 당신도 공감할 수 있을것이다.


https://www.instagram.com/jw_yoon_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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