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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Oct 14. 2015

여행자의 값 싼 동정

4년 만에 다시 홀로 떠난 내일로 여행 (2014년)

2일


다음날 아침, 핸드폰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약간의 숙취가 느껴졌다. 같은 방을 쓰던 친구는 벌써 나갈 채비를 끝내 놓은 모양이었다. 헤어지면서 서로에게 여행 잘 하라는 인사를 건넸다. 그 친구를 보낸 뒤 나도 슬슬 나갈 준비를 했다. 숙소의 발코니에서 내다보는 아침의 여수 바다는 전날 밤에 바라보았던 바다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전날 고요함과 비밀스러움을 지니고 있었던 바다는 활기차고 밝은 모습의 바다로 변해있었다. 

파랗고 높은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여수 바다를 뒤로 하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서둘러서 부산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제 밤에 보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아침 여수를 보면서 기차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순천에서 부산으로 가는 기차로 환승하기 위해 순천으로 가는 기차에 탔다. 전날의 음주 탓에 속이 불편했던 나는 식당에서 라면을 시켜 먹었다. 그렇게 해장을 한 뒤 기차 시간이 남아 순천역 플랫폼에 앉았다. 플랫폼의 매력은 전국 각지로 떠나는 기차 편 들의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화면들에 있다. 그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곤 한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역에서 틀어놓은 음악인 줄 알았던 그 소리는 어떤 여행자가 옆에 커다란 여행 배낭을 내려놓고 순천역에서 준비해놓은 피아노로 연주하고 있는 음악이었다. 

여행지에서는 일상을 살아갈 때보다 유난히 마음을 사로잡는 풍경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그건 우리의 마음이 그만큼 어떤 것을 보든지 마음이 사로잡힐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행자는 모든 것에 너그럽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기왕이면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기억만 담아가고 싶은 마음 때문에 여행지에서 마주치는 아주 사소한 것에도 쉽게 마음이 사로잡히는 것이다. 여행자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 풍경이 그랬고, 어젯밤의 여수 밤바다가 그랬다.

한참을 그 여행자가 치는 피아노를 바라보며 듣고 있으니 어느덧 기차가 도착했다. 여행지에서의 무료함을 달래 준 그 여행자에게 마음속으로 감사하며 기차에 올랐다. 여기서부터는 네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부전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숙취에 시달렸던 나는 불편한 속을 달래기 위해 그대로 잠이 들었다.

두 시간쯤 자고 일어나니 더 이상 잠도 오지 않아 핸드폰을 꺼내 부산에서 어디를 둘러볼지 검색해보았다. 부산을 가는 가장 주 목적은 그곳에서 우연하게 모이게 된 10년 지기 친구들과의 만남이었기 때문에 가기 전에도 부산이라는 목적지 말고는 그 안에서의 여정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나는 우선 레고 마을이라 불리는 감천문화마을을 둘러보기로 결정한 뒤 이동 편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이런저런 정보를 검색하고 있으니 어느덧 부전역이라는 방송이 나왔고, 나는 짐을 챙겨 기차에서 내렸다. 부전역 역시 4년 전의 내일로 여행을 하면서 여수에서 부산을 찾을 때 내렸던 역이었기 때문에 내리자마자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분에 젖어들었다. 나는 곧장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가서 감천문화마을로 가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여수에서는 흔히 말하는 ‘우리 동네‘혹은 ’집 앞 골목길‘에 이방인으로 다님으로써 그들의 생활 속에 들어가 보는 즐거움을 느꼈다면 부산에서는 지하철과 버스를 타면서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에서도 지하철이 아니면 어딘가 이동하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나에게 부산 지하철은 익숙하지만 전혀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 되었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개찰구부터 지하철, 사람들의 모습(그리고 사투리), 그 안의 분위기, 그리고 지하철의 세세한 내부 디자인들, 마지 복잡한 기계 내부의 전선같이 복잡한 수도권 지하철의 노선도가 아닌 단순하고도 명쾌하게 뻗어있는 노선도까지. 모든 것들이 조금씩 달랐다. 그런 곳에서 나는 역시나 영락없는 이방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평소라면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 나지만 이상하게도 여행지에 오면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묘하게 즐기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 나 자신이 내 스스로도 놀라웠다. 


지하철을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감천문화마을에 도착했다. 그곳까지 가는 길은 버스 안에 있었음에도 경사가  온몸에 전해질 정도로 급경사 지역이었다. 정류장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니 마을 입구가 나왔다. 

나는 마을 전체를 조망해보기 위해 먼저 하늘마루로 향했다. 알고서 간 것은 아니었지만 하늘마루는 오후 6시까지만 입장을 허가했기 때문에 나는 10분 전에 도착해 운 좋게 감상할 수 있었다. 그 곳에 올라가자 상쾌한 바람이 땀에 젖은 내 얼굴로 불어왔다.

감천문화마을은 소위 말하는 달동네였다. 지리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한 그 마을은 올라가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지붕과 집들의 색깔이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워 레고 마을, 혹은 한국의 산토리니로 불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관광객과 외부인이 바라볼 때의 낭만적인 모습일 뿐, 실제로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 곳이 낭만적인 휴양도시일리 없었기 때문에 나는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사진을 찍고 풍경을 감상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불편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건 어쩌면, 내 스스로가 당당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마을의 골목마다 새겨진 이야기들이 얼마나 무수히 많을지 하루 잠깐 온 여행자로써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골목길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주민들이 실제로 사는 소리도 듣고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떨고 계시는 소리도 들었지만, 나는 그곳에 있지 않았다. 괜히 마음의 가책을 느끼는 것이 맞는 것인가 싶었지만 한번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들자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저씨 한 분을 마주쳤다.  그분은 여기에 볼 게 뭐가 있다고 이렇게들 오는지 모르겠다면서,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와주니 예전보다 마을에 활기가 찬 것 같아 좋구먼”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얘기는 내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줌과 동시에 나를 반성하게 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이 분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녔다면 이 분들도 전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결국 사람은 어디에든 산다. 이 마을뿐이 아니라 해운대에도 사람은 살고 광화문에도 사람은 살고 프랑스의 파리에도 사람은 산다. 굳이 달동네라고, 조금 생활이 어려운 마을이라고 생각해서 이 곳을 여행자로 돌아다니는 것을 죄스럽게 생각했다면, 그것 역시도 편견이고 값 싼 동정은 아니었을지 생각했다.

감천문화마을의 골목 곳곳을 누비자 배가 고파진 나는 다시 지하철을 타고 어디로 갈지 고민했다. 우선 남포동과 자갈치시장 근처에 먹거리가 많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 남포역에서 내렸다. 이곳저곳 한참을 돌아다니는데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자갈치시장 역에서 내려야 했다. 남포역에서 걸어서 자갈치시장역에 가서 영화제 거리를 갔지만 씨앗호떡과 납작 만두를 파는 가판에는 사람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막상 그 앞에 가자 의욕이 떨어져버린 나는 예전에 맛있게 먹고는 꼭 다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돼지국밥을 먹기로 하고 서면역으로 출발했다. 서면역에서 내려 돼지국밥 골목을 들어갔다. 예전에 먹었던 포항 돼지국밥이라는 곳이 아닌 그 옆의 돼지국밥집도 유명한 곳이라고 해서 그 곳으로 들어갔다. 혼자서 돼지국밥을 먹으며 해운대에서 친구들을 만날 생각으로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았다. 하루 종일 순천역에서 먹은 라면이 전부였던 터라 돼지국밥은 무척이나 맛있었다. 해장이 되는 기분을 느끼며 다 먹고 난 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해운대로 향했다. 

해운대에 도착해 곧바로 해변으로 향했다. 걸어가는 동안 이곳에는 나와 같은 여행자가 오히려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피서를 즐기고 유흥을 즐기러 온, 술에 취한 사람들과 밝은 조명들이 밝히고 있는 휘황찬란한 도시가 바로 해운대였다. (도시를 떠나온지 며칠이나 됐다고) 오랜만의 도시 모습에 당황한 나는 촌놈처럼 이것저것 구경하며 바닷가를 향해 걸어갔다. 


해운대 백사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사진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물론 사진을 찍긴 했지만 내가 느낀 그때의 그 심정은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었다-마음의 풍경을 만났다. 외국에서 온 그녀는 해운대 백사장에서 바다를 바라보지 않고 바다와 평행하게 앉아 자그마한 노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이어폰을 꽂고 혼자 무언가를 적는 것인지 그리는 것인지 모를 그녀의 모습에 나는 눈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치 해운대의 그 넓은 백사장에 그 많은 사람들은 전부 사라지고 오직 그녀와 나만이 존재하고 있는  듯했다. 파도소리만이 조용히 들려올 뿐이었다. 그것은 여행지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그녀는 혼자서 해운대의 정수를 느끼려고 하는  듯했다. 처음 만나 말 한마디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그 순간은 하나의 시였고, 음악이었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은 불가능한 일- 자기 자신을 위하여 여행을 한다고 할 수 있다......(중략).. 자기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데 성공하고 나면 바다 위로 배를 타고 여행할 때의 그 머나멀던 여러 날의 기차 속에서의 불면 같은 것은 잊어버린다. (자기의 인식이라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초월한 그 무엇인가의 인식일 것이다.) 그런데 그 자기인식이란 반드시 여행의 종착역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에 있어서는 그 자기 인식이 이루어지고 나면 여행은 이미 끝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 까지 통과해야 하는 저 엄청난 고독 속에는 어떤 특별히 중요한 장소들과 순간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장소, 그 순간에 우리가 바라본 어떤 고장의 풍경은 마치 위대한 음악가가 평범한 악기를 연주하여 그 악기의 위력을 자기 자신에게 문자 그대로 계시하여 보이듯이, 우리의 영혼을 뒤 흔들어 놓는다. - 장 그르니에, 섬 

물론 해운대가 그렇게 낭만적인 곳만은 아니었다. 가는 길에 보았던 남녀들은 서로 헌팅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곳곳에는 취객들이 즐비했다. 그렇기에 더욱더 나는 그 마법 같은 순간 속에서 한참을 그 이름 모를 여자를 바라보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나는 정신을 차리고 친구들을 만나러 친구들이 묵고 있는 숙소 앞으로 갔다. 이 친구들은 10년이 넘도록 알고 지낸 사이들이지만 서로 바빠지면서 얼굴을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친구들이었다. 이번에는 정말 우연찮게 다들 다른 목적으로 부산에 도착했고 심지어 나를 제외한 이 둘은 같은 숙소에 묵고 있었기에 우리는 오랜만에 셋이 만나서 회포를 풀기로 했다. 


오랜만에 보았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우리 셋은 이날 밤늦도록 수다를 떨었다. 정말 좋고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과는 술 없이도 몇 시간씩 떠들고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친구들이 바로 그런 친구들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나와는 다르게 술을 거의 마시지 않고 즐기지 않는 이 친구들과는 중학교 때부터 밤을 새워서 놀더라도 얘기가 끊이지 않았던 친구들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로 오랜만에 즐거운 밤을 보낸 우리들은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나는 다음날 아침 일찍 기차역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역에서 가까운 찜질방에서 묵기로 결정했다. 찜질방에 도착해 짐을 풀고 씻은 다음 잠을 청할 때의 시간은 새벽 두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여섯 시까지 잠이 거의 오지 않아 뜬눈으로 지새운 나는 다음날 목적지인 단양으로 갈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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