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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Oct 10. 2015

정면으로 나를 마주하기 위해서

4년 만에 다시 홀로 떠난 내일로 여행 (2014년)

Prologue - 여행을 권하며


"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면,
여행은 그 일의 역동성을 그 열의에서부터 역설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활동보다 풍부하게 드러내준다.
여행은 비록 모호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일과 생존 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나는 이 여행기를 여행한 장소 혹은 여행에 대한 조언 보다는 내일로 여행을 하며 느꼈던 점들을 쓰고, 어떤 여행이 되었든 여행에 대한 열망에 불을 지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다. 


2014년 스물여섯의 절반을 인턴으로 보내고 난 뒤 나는 7월 한달을 집에서 하루 종일 영화를 찾아 보고 잠자리에 드는 한량생활을 지속했다. 반년 동안 수고한 나에게 주는 휴식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어떠한 일도 하지 않는 생활을 한 달 동안 보내고 나니, 이제 슬슬 이 생활을 청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월 한 달 동안 다닐 토익학원을 등록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내 생활에 변화를 줄 수 없었다. 그때 문득 ‘2010년에 입대 전 혼자 떠났던 내일로를 다시 떠나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2010년 당시 스물 둘이었던 나는 그 전까지 혼자 떠나본 여행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랬던 나에게 군 입대를 앞두고 떠난 내일로 여행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술자리에서 종종 안주거리 삼아 얘기할 정도로 소중하고 좋은 경험이자 추억이었다. 그 전의 나는 단 한번도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오롯이 나 혼자 시간과 장소를 견뎌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견딤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내 안으로 깊이 침잠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때의 여행을 끝낸 뒤 나는, 혼자 여행을 다니는 일은 시간과 장소를 오롯이 혼자 견디는 일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상반기에 있었던 많은 일들을 정리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다시 혼자가 되어 내 안으로 들어가야했다. 본격적인 취업 준비와 학업으로 정신없어지기 전에 다시 한번 나를 맨몸으로 마주해야 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주저없이 내일로 티켓을 샀다. 출발은 바로 다음날이었다. 주저하다보면 귀찮다는 핑계로 떠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충동적으로 티켓을 끊었다. 간단하게 목적지와 기차편만 정한 뒤, 짐을 싸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이렇게 충동적으로 떠나기는 처음이었다. 그렇게, 스물 여섯의 내일로 여행이 시작되었다.


1일

아침 10시 30분 쯤 용산역에 도착해서 여수로 가는 기차를 기다렸다. 용산에서 여수엑스포역까지는 여섯 시간가량이 소요되는 긴 여정이었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기차가 도착했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기차에 올랐다. 기차가 출발하는 순간, 드디어 시작이구나 싶었다. 출발하면서 5일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그 시간동안 나 자신을 조금 더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떠나는 목적지와 그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무엇보다도 목적지까지 가기 위한 여정에 있었다. 나에게 여행은 어딘가를 ‘도착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그저 떠나기 위해’시작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게다가 기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더더욱 ‘떠남을 위한’ 여행을 즐겁게 해준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생각에 저절로 빠져들었다. 서울을 출발하면서 창 밖을 바라보니, 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잿빛 하늘이었다. 4년 전, 여행에서 내내 날이 흐려서 사진이 원하는대로 찍히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걱정 반 기대 반. 그렇게 기차는 여수로 향했다.

“어디로,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 - 샤를 보들레르

까무룩 잠이 들었는지, 깨고 나니 어느덧 두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창 밖을 보니 다행히 남쪽으로 갈수록 날이 맑아지고 있었다. 준비해 온 책을 읽고 있는데 어느새 주위가 어두워졌다. 터널이었다. 하지만 터널은 금세 끝났고,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을 똑바로 뜨기 힘들 정도의 햇살이 터져나왔다. 평소라면 눈살을 찌푸리며 커튼을 쳤겠지만 그냥 그대로 두었다. 그 햇살은 나에게 다 괜찮다며 너의 여행을 축복한다고 말하며 부드럽게 나를 안아주고 있는 듯 했다. 어쩌면 내 불안한 감정 때문에 햇살에게 위로받고 있다고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무작정 떠나고 싶어서 훌쩍 떠나버린 이 여행의 시작에서 나의 불안감은 그렇게 사라지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여섯 시간여를 달리니 어느덧 다음역이 여수엑스포역이라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여수는 4년 만에 오는 곳이었다. 여수엑스포가 열리기 전에 들렀던 여수와 그 후의 여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호기심 반 설레임 반으로 기차역에서 내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여수역의 명칭이었다. 여수역은 여수엑스포역으로 명칭이 바뀌어있었다. 그리고 공사로 인해 정신없었던 여수역 앞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여수엑스포가 열렸던 전시장으로 바뀌어있었다. 하지만 바닷가에 오면 불어오는 습기를 머금은 찝찔한 바람과 공기는 내가 바닷가 마을에 도착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생각보다 아주 화창한 하늘이 아니었기에, 조금은 실망한채 일단 오동도까지 무작정 걸었다. 2~3km되는 거리를 여수 엑스포 전시장과 탁 트인 여수 앞바다를 구경하며 걸었다. 한 40분 정도 걸었을까, 여수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에 하나인 오동도에 도착했다.

오동도로 가는 길까지는 내 기억속의 여수가 아니었다. 엑스포를 위해 지어진 건물들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오동도에 도착한 순간, 4년 전의 내가 보았던 그 풍경이 펼쳐졌다. 오동도로 가기 위해 길게 놓인 다리와 그 옆에 쌓여있는 방파제들, 그리고 그 다리를 왕복하는 조그마한 꼬마기차까지. 모든 것이 4년 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오동도를 가서 여수의 푸른 바닷물을 가장 가깝게 볼 수 있는 용굴을 잠시 둘러본 뒤, 전날 지인이 추천했던 장어탕을 먹기 위해 또 약 3km되는 거리를 무작정 걸었다.

확실히 여수 시내쪽으로 들어오자, 예전 내가 보았던 여수시내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는 듯 했다. 그것은 그보다도 더 옛날, 내 어린시절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외할머니의 집 근처에서 보았던 아련한 풍경들이었다.

낯선 땅이란 없다. 단지 여행자가 낯설 뿐이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나는 여행지에서 그곳의 사람들이 사는 곳을 누비면서 둘러보는 것을 좋아한다. 누가 봐도 ‘나는 여행자입니다’라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그들의 삶의 터전인 동네 과일가게며 조그마한 슈퍼 따위를 지나다니는 일은 묘한 쾌감까지 느껴지곤 한다. 나를 아무도 알지 못 하는 곳에서 여행자처럼 이곳 저곳 기웃기웃 돌아다니면, 내가 살던 곳에서도 보아왔던 낯익은 모습이 여행지에서는 무척 낯설게 느껴지는 마법 같은 순간이 있다. 나는 이런 마법 같은 순간들이 좋아서 동네에서도 카메라를 들고 자주 내가 평소에 돌아다니지 않는 길과 골목을 기웃거리기도 했었다. 요새는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길을 잃을 가능성도 줄어들어서 이렇게 낯선 곳을 돌아다녀도 크게 걱정이 되지 않는다. 불과 4년 전만 하더라도 모든 자료를 사전에 검색해서 종이로 뽑고 위치 하나하나 세세하게 기록해두었지만, 스마트폰의 발달로 이제는 여행자가 훨씬 여행다니기 편해졌다는걸 새삼 깨달았다. 물론 여행지에서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여행의 낭만이 될 수는 있지만, 지역 사람들도 잘 모르는 정보는 스마트폰의 도움을 얻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할 때가 있다.

그렇게 한 시간 쯤 걸었을까, 목적지였던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에 도착하니 영락없는 여행자 신세인 채로 식당에 들어가-아까 말했던 묘한 쾌감을 느끼며-장어탕을 시켜놓고 잠시 짐을 정리했다. 잠시 후 음식이 나왔고, 하루 종일 점심에 먹은 햄버거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나는 허겁지겁 장어탕을 비웠다. 통통한 장어가 그대로 들어가 있는 장어탕은,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피로를 싹 풀어주는 것 같았다.

장어탕을 맛있게 먹은 뒤, 나는 돌산대교로 향했다. 돌산대교의 야경을 본 뒤에, 숙소에서 잠을 청할 생각이었다. 검색해본 결과 돌산대교 근처에 괜찮은 찜질방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 이번에도, 나는 무작정 걸었다. 30분쯤 걸어 돌산대교를 도착했는데, 장어탕을 먹어서인지 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의 불안과 짜증을 느끼며 30분 가량 돌산공원 근처를 돌아다녔다. 그 곳에서 정박해있는 배들도 구경하고 여수의 야경을 구경하고 있는데,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음침한 곳이 나올 뿐이었다. 심지어 내가 검색해두었던 찜질방은 이미 예전에 망해서 문을 닫은 곳이었다. 속도 안 좋고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재빨리 방향을 바꾸어 다시 돌산대교 방향으로 올라가 택시를 잡아타서는 다시 여수엑스포역으로 향했다.

여수엑스포역에 들러 잠시 화장실을 들른 뒤 나는 숙소를 정하기 위해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는 4년 전에 묵었던 펜션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숙소는 아주 조용하지만 경치가 좋고 작게 배들도 정박해있는, 정말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여수밤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다행히도 그 펜션은 예전처럼 내일로 여행객들을 위해 하룻밤 만원에 잘 수 있게 해 주고 있었다. 3만원에 혼자서 잘 수도 있었으나 예전처럼 방에서 묵는 다른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할 겸 만원을 내고 방을 잡았다. 하지만 내가 들어간 시간은 밤 열시였고, 숙소의 주인은 사람들이 더 오지 않는다면 혼자 묵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했다. 여러모로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간단히 짐을 풀고 숙소 밑의 편의점에서 캔맥주 두 캔을 사다가 밤바다 앞에서 맥주를 마셨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보고 싶었고, 가장 오고 싶었던 곳이 바로 여수 밤바다였다. 이제는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로 유명해진 이 여수 밤바다를, 나는 노래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그 매력에 빠져있었다. 스물 두 살의 내가 바라보았던 여수의 밤바다는 왠지 모를 매력이 있었다. 조용하지만 저 멀리 보이는 돌산대교와 여수 시내의 불빛들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여수 밤바다는 많은 이야기를 그 속에 간직하고 있는 듯 했다. 여수에서 4년 전이나, 4년 후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바로 내가 같은 장소에서 바라본 그 여수 밤바다였다.

크다고는 할 수 없는 작은 배들이 꿈꾸는 듯 한가하게 정박해있고, 그 앞에는 몇몇 아저씨들이 낚시를 하고 있는 풍경. 저 멀리 돌산대교의 야경이 보이고 여수 시내의 가로등 불빛들이 반짝거리고 있는 곳. 파도는 조용히 항구에 부딪히며 속삭이고, 밤공기는 선선하게 불어오는 곳. 너무나도 다시 오고 싶어 몇 번 씩이나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바로 그 바다였다. 같은 장소, 같은 공간에 4년 만에 다시 오니 마치 스물 두 살의 나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었다. 4년 전, 다 컸다고 생각했지만 성장한 것은 정말 하나도 없었던, 그렇다고 철이 없었다고 하기엔 조금 억울했던, 그냥 그랬고 그냥 그렇게 흘러갔던 스물 두 살. 그 시절의 나는 딱 그 정도였다. 그냥 그랬던.


맥주를 다섯 캔쯤 비웠을 때 숙소에 올라가서 카메라를 갖고 내려오려는데 방 앞에 어떤 남자가 서 있었다. 내가 방문을 열려고 하자 이 방에 묵으시는 분이냐며 자기도 이 방에서 묵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나보다 한 살이 어린 친구였고, 혼자 하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나란히 맥주를 한 캔씩 사서 밤바다를 보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그 친구는 다음날 일찍 기차를 타야 해서 먼저 숙소에 올라갔고, 나는 조금 더 있을 생각으로 이어폰을 꽂고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들었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의 소용돌이는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세상에 노래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구나 싶었다. 버스커버스커는 아마 나와 똑같은 바다를 보며 이 곡을 썼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면서 그렇게 여수에서의 밤이, 여행의 첫 번째 밤이 저물고 있었다.

여행은 다른 사람이 덮던 이불을 덮고 자고
다른 사람이 먹던 식기와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이다.
온갖 사람들이 다녀간 낡은 여관방의 벽지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그리고 낡은 벽지가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다른 사람을 자신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행은 햇볕을 쪼이며 바닷가를 걷는 것이다.
아아, 파도처럼 하나의 물결에 또 하나의 물결이 되어,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다.

- 구본형, 사자같이 젊은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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