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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Sep 26. 2020

세계로부터 유리되어

내가 도심을 떠나 캠핑을 가는 이유

세계로부터 유리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조각으로 있고 싶을 때면, 자연스레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한다. 제주에서 살 때 생겨난 습관이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이 옹졸해짐을 느낀다. 인생을 잘못 살았나, 싶은 후회의 순간들도 점점 많아진다. 전부 내 실수고 미숙한 내 잘못이지만 인정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 서든지 정면으로 부딪혀 그 상황을 마주했을 테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세상에는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럴 때면 차라리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잠시 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지난여름엔 캠핑을 시작했다. 어릴 적 아버지 손을 잡고 종종 산으로 계곡으로 캠핑을 다니긴 했지만, 나이를 먹고서는 밖에서 텐트를 치고 자 본 적이 없었다. 아, 군대를 빼고 말이다. 본격적으로 캠핑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어서였다. 집을 짓고 불을 피운 다음 매 끼의 끼니를 고민해야 하는 원시적인 행위가 주는 단순 명료함이 필요했다. 단순 반복적인 행위의 마법은 생각을 정리하려고 애쓰지 않더라도, 일련의 행위를 끝내고 나면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된다는 데에 있다. 내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인간은 왜 도시에 살면서 일부러 굳이 굳이 원시의 시간을 그리워하는 걸까? 오랜 역사를 거치며 우리 안에 내재된 오래된 DNA인 걸까? 나는 캠핑이란 도시에 살면서 자신들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 줄도 모르는 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인류가 원시의 시간을 더듬으며 본능적으로 행복을 찾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지고 캠핑장비가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캠핑이란 자연 속으로 들어가 원시의 시간을 다시 한번 복기하는 행위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본능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일이라는 뜻이다.


캠핑장의 꽃이 낮보다도 밤에 있는 것이 그 증거일지도 모른다. 기원전의 원시인들은 한낮에 자신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피지컬을 자랑하는 동물들을 목숨 걸고 사냥한 뒤, 불 앞에서 하루를 마무리지었을 것이다. 그들은 활활 타오르는 불 주변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 무사히 돌아온 동료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잡아온 동물을 나누어 먹으며 그 속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생존해냈던 원시의 선조들에게 저녁 시간만큼은 유일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도시의 불빛과는 떨어진 장소에서, 하늘의 별빛과 내 앞에 놓인 장작불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있는 밤. 어둑한 밤에 아주 작은 빛에만 의지한 채 서로의 이야기를 조그마하게 속삭이는 시간. 풀벌레 소리만이 온통 세상을 뒤덮는 그 순간에는 나도 예전의 선조들이 그랬듯이 안도와 함께 일행들과의 유대감을 느낀다. 세상엔 오로지 우리만 있는 듯이 느껴지고, 행복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인생은 생각보다 단순하다는 위안과 얄팍한 안도감. 수많은 고민을 안고 떠나온 캠핑장에서는 고민의 무게가 한없이 하찮고 가볍게만 느껴지곤 했다.


밤이면 별이 하얗게 뜨고, 아침이면 태양이 말갛게 떠오르던 광경들을 보며 늘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렇게 작은 순간들을 조금씩 채워 넣은 여름이었다. 코로나가 심해지고 폭우가 쏟아지면서 캠핑이 힘들어져 잠시 뜸해지기는 했으나, 이제 캠핑 가기 좋은 계절인 가을이 왔다. 다시 한번 창고에 넣어둔 텐트를 꺼내어 캠핑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번 추석 연휴가 지나고 나면, 인적이 드문 캠핑장에서 다시 한번 고요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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