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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Nov 09. 2015

야간열차는 상처를 안은 채 달린다

4년 만에 다시 홀로 떠난 내일로 여행 (2014년)

3일 


전날 찜질방이 불편했던 탓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나는 여행 3일차가 되어 점점 더 피로가 쌓여가는 몸을 이끌고 해운대역으로 향했다. 여전히 남쪽은 비가 올 기미는 보이지도 않는 맑은 날씨였지만, 위쪽 지방은 날이 흐리고 비가 쏟아지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오늘 가기로 한 단양 역시 비가 오는 등의 좋지 않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기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역에 도착하니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많이 보였다. 시계를 보니 일반적인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이었다. 보통 통근 열차라고 불리는 이 시간대의 기차를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이 기차가 생활의 일부가 되어있는 사람들을 보니 생소한 느낌이었다. 기차는 나에게 있어서 어딘가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이용하는 교통수단으로 인식될 뿐이었지, 출퇴근을 할 때 이용하는 수단이라고는 생각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경한 풍경 속에서 나는 출근길 회사원들의 틈에 앉아 단양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전날 잠을 설친 탓에 기차에 앉자마자 기절하듯이 잠들어버렸다.


잠에서 깨어나니 시계는 열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창밖의 날씨는 세 시간 전과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파랗던 하늘은 구름에 가려져 잿빛이었고 창문에서는 부슬부슬 빗방울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자그마한 우리나라 안에서도 이렇게나 다양한 날씨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물론 평소에도 내가 있는 서울과 다른 지역의 날씨는 달랐겠지만 일기예보를 보고 그렇다고 알고 있는 것과 이렇게 직접 체험해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큰 나라 안에서는 얼마나 다양한 기후가 존재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비가 오는 창밖을 보며 단양에서 하기로 한 패러글라이딩을 하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나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약 패러글라이딩을 하지 못하게 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나에게 혼자 하는 여행의 좋은 점은 바로 이런 곳에 있었다. 일행이 있었다면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에 있어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테지만, 나는 혼자였고 내가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그 누구의 의견도 들을 필요가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우리는 항상 남의 눈치, 남의 시선, 남의 의견을 신경쓴다. ‘이건 저 사람이 싫어하겠지’, ‘이걸 한다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이걸 하고 싶은데 해도 상관 없을까’ 등등 우리는 많은 경우 남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물론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렇게 남을 의식하는 것은 필요하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은 나 혼자 사는 삶이 아닌 이상 누군가의 희생과 피해를 강요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남의 의견도, 남의 시선도, 남의 눈치도 그 어떤 것도 신경쓰지 않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는 우리에게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혼자 하는 여행이 필요하다. 여행지에서는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 오롯이 혼자 결정하고 그에 따른 결과도 오롯이 나 혼자만의 것이자 책임이 되는 것. 누구의 핑계도 댈 수 없고 누구에게도 떠넘길 수 없는 것. 그렇지만 그것이 외롭고 버거운 일이 아니라 너무나도 자유롭게만 느껴지는 것. 그것이 바로 혼자 하는 여행이고, 그런 여행을 통해 우리는 혼자 사는 삶을 배우는 건 아닐까. 나는 그래서 혼자 하는 여행이 사람을 성장시켜 준다고 믿는다. 

걱정과 설렘(비로 인해 패러글라이딩이 취소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빗속의 패러글라이딩에 대한 설렘의 감정이 공존하고 있었다)을 안고 도착한 단양역은 날은 조금 흐렸어도 비는 내리지 않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예약해놓았던 패러글라이딩 업체에서 나를 픽업하러 역으로 왔다. 자동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이동하고 있으려니 창밖으로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업체의 사무실에 도착해 몇 가지 간단한 절차를 거치고 활공장으로 향했다.

활공장에 도착하니 마치 병풍처럼 펼쳐진 산 사이로 굽이치는 강과 도로의 모습들이 한눈에 드러났다. 오히려 날이 살짝 흐린 덕분에 산들이 구름과 안개에 살짝 가려진 모습이 마치 중국영화에서 무림고수들이 살 법한 산처럼 신비롭게 보였다.


나보다 먼저 온 팀들이 패러글라이딩을 준비하고 비행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삼십분쯤 기다렸을까, 패러글라이딩 파일럿 한분이 오시더니 준비하라고 하셨다. 각종 보호장비와 비행장비를 착용하자 이제 드디어 패러글라이딩을 한다는 생각에 두근거렸다. 패러글라이딩 장비는 생각보다 무겁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다. 간단하게 파일럿에게 비행에 대한 안내를 받은 뒤 낙하위치로 이동했다. 뛰어내리기 위해 달리기 시작하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달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뒤에 있는 날개가 펴지면서 공기저항이 심해지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게 힘들게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몸이 공중에 붕 뜨는 것이 느껴졌다. 


떴다.

내 몸이 공중에 떠 있었다. 두려움과 흥분을 감출 수 없었던 내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단순히 내 몸이 공중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발 아래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공기와 얼굴을 스치는 바람들은 비행기를 탔다거나 군 시절 헬기에서 뛰어내릴 때 느꼈던 경험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공중에서 내가 완전하게 자유로워진 느낌이었다. 발 아래에 조그맣게 펼쳐진 강과 도로, 논 밭들을 보며 천천히 비행하는 느낌은 정말이지 색달랐다.

패러글라이딩을 타기 전엔 안전에 유의해야 하는 활동이고 공중에서 빠른 속력과 불안정함 때문에 경치를 제대로 감상을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실제로 타보니 오히려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중에 무척 안정적으로 떠 있었다. 5분 남짓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패러글라이딩은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정적이지 않은 활동이기도 했다. 


걷고 보고 생각하는 여행도 좋지만 내가 사는 일상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여행지에서 즐겨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되곤 한다. 여행의 목적이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을 벗어나서 기분전환을 하는 것에 있다면, 패러글라이딩이나 번지점프, 레프팅과 같은 동적인 활동들은 그런 목적을 쉽게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스트레스해소는 정적인 활동 보다 이렇게 역동적인 활동을 할 때 훨씬 크게 느껴진다.


게다가 패러글라이딩을 하면서 보았던 풍경은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런 순간이 좋았다. 광대무변한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경험하는 순간은, 도시의 빽빽한 빌딩 숲 사이에서는 절대 경험하지 못하는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내 주위로 돌고 내가 세상의 주인공 같을 때, 생활에서 한발자국 떨어져 나 자신을 바라보면 결국 한없이 작은 하나의 인간임을 깨닫곤 한다. 그 깨달음은 내가 한없이 작고 초라한 사람이라는 부정의 깨달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겸손이자 경의의 깨달음이다. 

높은 산에 오를 때마다 나는 정복의 쾌감 대신 스스로가 한없이 왜소하게 느껴지는 느낌이 좋았다. 산등성이마다 흐드러지게 핀 꽃들 중 나를 위해 핀 꽃이 있으랴. 사람의 존재, 세상 모든 일과 무관하게 꽃은 피고 진다. 내가 거기 있건 말건 자연은 그저 그곳에 있다는 사실, 자연의 무심함을 자각할 때마다 나는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 김희경,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패러글라이딩을 끝낸 뒤 비행하는 동안 찍었던 동영상을 옮겨 받고 픽업차량을 타고 다시 단양역에 도착했다. 이제 단양에서 기차를 타고 제천으로 간 다음 그 곳에서 강릉으로 가는 오늘의 마지막 기차를 타면 오늘의 일정은 끝이었다.

강릉에는 밤 열시쯤 도착할 예정이었기에 강릉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친구에게 연락을 해 두었다. 부산에서 봤던 친구들 중에 한명이 강릉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 3일째는 그 친구의 자취방에서 잘 예정이었다. 조금 있으니 제천으로 가는 기차가 왔다. 기차를 타고 금방 제천역에 도착한 나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일단 밖으로 나왔다.

강릉으로 가는 기차는 한 시간을 기다려야 탈 수 있었다. 다행히도 제천역 앞에 식당과 상가들이 있었기에 그 주변을 돌아다니며 무엇을 먹을지 고민했다. 돌아다니다 보니 허름한 분식집이 보였다. 그 곳으로 들어가 떡볶이와 튀김을 1인분씩 시켰다. 가게 안의 손님은 나 밖에 없었다.


누구에게나 여행의 목적은 다르겠지만 나는 여행을 하면서 단 한번도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한 소위 ‘먹방’여행을 계획해 본 적이 없었다. 평소의 내가 먹을 것, 그것도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 다니는 것에 대한 수고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먹는다는 것은 내게는 그저 허기를 채우기 위한 행위일 뿐이었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내게는 음식보다도 훨씬 가치있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았을 뿐이었다. 분식점의 맛은 보통이었다. 딱히 맛있다고 말할 수 있는 맛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떡볶이에선 조금 밋밋한 고추장의 맛이 느껴졌고 튀김은 바삭하지 않고 습기를 머금은 채 눅눅해져있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에 나오는 장소들 중의 하나로 느꼈을 정도의 외롭고 고독한 식당이었다. 

Edward Hopper, Automat, 1927, oil on canvas, 71.4 x 91.4 cm (Des Moines Art Center, IA, USA)

그렇게 단순히 허기를 채우기 위한 일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식사를 마치고 나와 역으로 돌아왔다. 다행히도 기차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조금 기다리자 열차가 도착했다. 열차에 올라 강릉으로 가는 길은 심심했다. 남쪽보다 상대적으로 산이 많은 강원도 지역을 지나기 시작하자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기차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으로 들어갔다. 창밖의 풍경은 깜깜한 밤 속으로 사라졌다. 꽤 오랜만에 타는 야간열차였다. 낮의 기차도 좋지만, 모든 낮과 밤이 그렇듯이 야간열차는 낮엔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느끼고 볼 수 있게 해준다. 밤에 보는 기차 창밖의 풍경이 때론 낮에 보는 풍경보다 더 극적일 때도 있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저 멀리 보이는 가로등의 주황 불빛들. 이름 모를 마을의 불빛들이 드러나면 나도 모르게 탄성을 절로 짓게 되기도 하고, 그 불빛들이 마치 별빛처럼 반짝거릴때면-정말 단어 그대로 반짝거리고 있다-그 모습들이 아름다워 넋을 놓고 쳐다보게 되기도 한다. 어둠이 지루해지기 시작할 즈음엔 밤의 색으로 바꿔입은 기차역들이 지친 여행자들을 반겨주고 있는 모습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보통의 야간열차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사람이 없는 열차칸에 앉아 규칙적으로 덜컹거리는 기차의 소음을 들으며 새까만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세상에 마치 나 혼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 순간, 세상은 너무나도 고요하고 조용해서 내가 얼마전까지 있었던 일상이 정말로 있었던 것일까 싶은 의문에 빠지기도 한다. 그대로 이 기차를 타고 달리면 아무도 나를 모르고 그 누구도 없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 줄 것이라는 착각.


아마 야간열차를 타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갖고 기차에 오른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이 기차가 밤을 틈타 나를 그런 곳으로 데려다주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 어딘가 하나씩 삶에서 받은 상처를 껴안고 있는 사람들. 그렇지만 그 상처를 그대로 두고 아파하기보다는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떠남을 선택한 사람들. 그렇게 정처없이 달리던 기차는 정동진을 지나고 있었다. 언젠가 옛 연인에게 나는 야간열차로 정동진에 가자는 얘기를 했었다. 야간열차를 타고 정동진에 도착해 떠오르는 해를 기다리며 아침을 맞이하자고. 결국 그때 정동진엔 오지 못했었만 야간열차를 타고 정동진역을 지나고 있으니 그 시절의 일들이 생각났다. 머릿속에서 생각의 날실과 씨실들이 복잡하게 얽혀 하나의 감정을 만들어가고 있는 듯 했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이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밤 열시, 강릉역에 도착했다. 5년 전 겨울에도 나는 나를 포함하는 친구 넷과 함께 새벽에 강릉에 왔었던 적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밤에 강릉역에 도착하니 시간은 마치 5년 전 그때로 돌아간 듯 했다. 지금도 그 친구들 중에 한명은 강릉에서 대학을 다니게 될 줄 몰랐었다고 말하곤 했다. 바로 오늘 밤 집에서 자기로 한 그 친구였다. 십년을 훌쩍 넘기는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지낸 사이였다. 5년 전의 우리는 지금보다 많이 어렸고 지금보다 많은 것을 몰랐다. 강릉으로의 그 짧은 여행이 기억나는 이유도, 어렸고 몰랐던 시절 처음 그 친구들과 했던 여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여행은 내 첫 기차여행이었고, 첫 야간열차였으며, 처음으로 친구들과 떠난 여행이었다.


강릉에 도착해서는 친구 집에 들어가서 씻고 짐을 푼 뒤 치킨을 시켜 맥주와 함께 먹으며 같이 영화를 보며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어릴적 우리는 종종 넷 중 한명의 집에서 다 같이 밤을 보내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며 놀곤 했었다. 그 시절의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밤에 좁디 좁은 방에 다 같이 드러누워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현실에 좌절하며 보냈을 뿐이었다. 그래도 우린 즐거웠다. 내 어린시절의 가장 즐거운 추억들 중의 하나라면 나는 이 친구들과 보낸 그런 시간들이었다.


5년 만에 온 강릉에서 나는 다시 옛날의 우리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여전히 이 친구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내 주변의 사람들 중에 가장 술을 적게 마시면서도 가장 많이 밤을 지새우며 가장 많은 얘기를 했던 사람,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사람이었다. 나이가 들어 술을 그렇게 마시면서도 이 친구들에게 고마웠던 것은 나를 제외하곤 술을 즐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서로 워낙 어릴때부터 봐서였을까, 오히려 우리는 술을 마시지 않고 노는 것이 더 즐거웠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나니 새벽 네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우리는 내일을 기약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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