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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Sep 25. 2020

예민한 사람

예민함과 역지사지

사람들은 보통 예민한 사람들을 대하기 어려워한다. 까칠하고, 신경질적이며 작은 일에도 쉽게 반응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탓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민한 사람들이 무작정 남에게 자신의 불편함을 드러낸다거나 화를 내는 것은 아니다. 예민하다와 성격파탄자가 동의어는 아니니까. 단지 남들보다 말 그대로 조금 더 민감할 뿐인 거다.


오히려 진짜 예민한 사람들은 화를 잘 내지 않는다. 화를 낸다는 것은 곧 남에게 싫은 말을 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나를 비롯해 내가 알고 있는 예민한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지간해서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상대가 둔감하든 예민하든 관계없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의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 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높은 예민성 기준을 가진 그들은 보통 사회적 관계에서 자기 자신에게 그 기준을 엄격하게 들이댄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예민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엄격한 기준을 남에게 들이대지 않는다. 예민함은 철저히 본인에게 적용되는 기준이다. 남에게 그 기준을 들이대 봐야 어차피 다른 사람들에게 그 예민함을 똑같이 적용할 수 없다는 걸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탓이다(물론 회사 팀장님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좀 피곤할 수도 있긴 하겠다).


만약 당신 주변의 누군가가 예민하다고 생각된다면, 그를 한 번 유심히 살펴보기를 권한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평소에도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때로는 그 사람과 당신의 관계가 예민한 사람의 노력과 초인적인 인내로 유지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걸 배려라고 말하기엔 애매하다. 배려는 기본적으로 타인을 위한 양보의 느낌이 강한데, 예민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세워 놓은 기준에 철저하게 본인을 맞출 뿐인 경우가 많다.


예민하다는 것은 섬세하고, 관찰력이 좋으며 눈치를 잘 살필 줄 안다는 뜻이다. 그렇다는 건 최소한 남을 대할 때 아무 생각 없이 자기 자신의 기분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민한 사람은 '내가 이 행동을 했을 때 타인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나는 그것이 바로 역지사지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같은 시대, 만인이 만인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는 시대에는 이런 예민함과 역지사지의 태도가 필요하다. 나는 화를 내는 사람들이 오히려 예민하지 못하고 남의 감정을 섬세히 살필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예민 보스들은, 스스로 세워놓은 기준 때문에라도 화를 잘 내지 못하는 섬세한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타인에게 조금은 신경을 더 곤두세우고 예민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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