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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Sep 24. 2020

뭐라도 사버리는 퇴근길의 마음

꾸역꾸역 채우던 마음속 공허함

"오늘 치킨 먹을래?"


첫 회사를 다니던 시절, 퇴근할 때면 카톡으로 동생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이었다. 평소엔 집에서 잘 시켜먹지도 않는 배달음식이 퇴근길이면 그렇게 당길 수가 없었다. 단순히 치킨만 당기는 게 아니었다. 어떤 날은 떡볶이에 튀김, 어떤 날은 유명 베이커리 집의 빵, 어떤 날은 생뚱맞게도 꽃다발. 종류는 달랐지만 퇴근길의 나는 높은 확률로 무언가를 사서 집에 들어가곤 했다.


처음엔 단순히 돈을 벌기 시작한 사회 초년생이 소비에 눈을 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생 때만 하더라도 만원에도 벌벌 떨던 내가, 후배들과 소고기를 사 먹고 술값을 계산하는 날이 오고야 만 것이다! 회사를 다니고 내 힘으로 많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 소비의 짜릿함은 달콤했다. 돈을 쓴다는 그 행위 자체에서 행복감을 느끼던 시기였다. 퇴근길에 무언가를 사 가는 행위도 필요보다는 일종의 행복을 느끼기 위한 일이었다. 고단했던 하루, 직장인의 퇴근길, 손에는 가족을 생각하며 구입한 치킨 한 마리.

이쯤이면 뻔하게도 '어릴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던 치킨  마리의 추억...' 이런 전개가 나와야겠지만, 아버지는 퇴근길에   번도 무언가를 사들고 오신 적이 없었다. 중장비를 몰고 전국의 공사장을 돌아다니셨던 아버지는 보통 주말에만 집에 계셨다. 평범하게 출퇴근을 하는 회사원들과는 다른 패턴의 삶이었다.


어릴 땐 아버지가 평범한 회사원이길 바란 적도 있었다.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고 학교에서 친구들이 아버지 직업란에 적어내던 회사원이라는 단어가 그럴싸하게 보여서였다. 구두를 닦아 용돈을 받는다는 것도 부러웠고 말이다. 아무튼 아버지는 평범한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직업이 아니었으므로, 내게는 구두를 닦아 용돈을 벌었다거나, 퇴근길 아버지 손에 들린 치킨을 기다렸다거나 하는 등의 어린 시절 추억은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자연스럽게 퇴근길에 무언가를 사들고 집에 들어가곤 했다.

미디어에 의해 후천적으로 학습된 내용이 머릿속에 각인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었다. 그 이유야 무엇이 됐든 간에 광화문으로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나는 자주 퇴근길에 자꾸만 무언가를 사 갔다. 엄마나 동생에게 필요한 게 없냐고 물어보는 일은 습관이 되었고, 퇴근길의 빈손이 왠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그러고 나서 한참 뒤에,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지금도 인생 드라마 중 하나라고 할 정도로 감명 깊게 본 드라마였는데 특히 극 중 이지안이 박동훈에게 했던 이 대사가 당시에도 지금도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아 있다.

"아저씨가 자주 했던 말 중에, 그 말이 제일 따뜻했던 것 같아요. '뭐 사가?' 집에 들어가기 전에 아줌마한테 전화해서 하던 말."


'뭐 사가?' 나는 그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한때 나 역시도 똑같이 그 대사를 말하곤 했으니까.


쓸쓸한 퇴근길, 시끄럽고 정신없던 회사에서의 하루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세상은 허무하리만치 평온하게 느껴지곤 했다. 거대하게 주변을 채우고 있던 복작거리는 것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텅 빈 공허만이 남아 있었다. 퇴근을 하면 평화와 고요를 얻을 줄 알았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던 회사에서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거기엔 아무것도 남아있질 않았다.

그 '아무 일도 없음'이 역설적이게도 다시 나를 텅 비고 쓸쓸하게 만들 때면 나는 무력감을 느끼고는 했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옴짝달싹도 못한 채 갇혀버린 것만 같았다. 누군가에게라도 이 감정을 털어놓고 싶어 핸드폰을 뒤적거리지만, 이내 드는 생각은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거겠지'싶어 괜스레 유난을 떨고 싶지 않아 진다. 그런 생각에 더 외로워질 때면, 길게 썼던 카톡을 지우고 괜히 가족들에게 '뭐 사갈 거 없어?'하고 되묻곤 하는 것이다. 그때의 그 심정.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무수히 복잡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쓸쓸함이라 부를 수 있을 그 감정을, '뭐 사가?'라는 이 단순한 물음 하나에 담아 보내곤 했다.


회사원일 땐 출근해서 퇴근을 꿈꿨지만, 이상하게 퇴근길 어둑하게 내려앉은 불빛을 보면 더욱더 쓸쓸하고 공허해지곤 했다. 그 공허함을 무엇으로라도 채워야겠어서, 그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는 그렇게 치킨과 떡볶이를 사들고, 필요한 것 없느냐며 가족들에게 물어보곤 했다. 꾸역꾸역 내 손에 뭐라도 쥐었을 때, 비로소 마음속 빈자리가 조금이나마 채워진 느낌이었다.


가을밤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날씨가 쌀쌀해지는 요즘 같은 시기의 퇴근길이 유독 더 쓸쓸했던 것 같다. 아마 오늘도 집으로 향하는 이들의 퇴근길엔 공허한 마음을 달래줄 무언가가 저마다 들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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