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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Sep 23. 2020

망각의 부스러기

영화 이터널 선샤인, 뉴욕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브루클린의 하늘은 회색빛이었다. 창틀에 비가 후드득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빗물에 젖어 번들거리는 건너편 건물의 붉은색 벽돌을 보며, 오늘 일정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 중에 만나는 비는 결코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잠에서 덜 깬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했다. 목적지는 123 Valentine Lane.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조엘이 사는 곳으로 나오는 아파트가 있는 곳이었다. 숙소가 있는 브루클린에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장소였다. 가는 김에 조엘이 몬탁행 기차를 타는 장소인 Mt. Vernon East역에 먼저 들를 예정이었다. Mt. Vernon East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유명한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기차를 갈아타야 했다.

이른 아침의 그랜드 센트럴 역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영화 속에서만 보던 역은 생각보다 훨씬 고풍스러웠다. 유럽 어느 오래된 건물에 들어선 것 같은 실내 인테리어는 저 멀리 한국에서 온 여행객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연신 구경에 여념이 없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Mt. Vernon East역으로 향하는 기차가 어느 플랫폼에 정차하는지를 찾았다. 그랜드 센트럴 역은 남은 뉴욕 일정 중에 다시 한번 들러도 충분할 것이었다.


기차에 타서 짐을 정리하고 있으니 역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자리마다 돌아다니며 검표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 오더니 경쾌하게 "Good Morning!" 하고 인사를 건넸다. 주변 사람까지 덩달아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밝은 표정을 지닌 사내였다. 기차는 분주히 목적지인 Mt. Vernon East 역을 향해 달렸다. 기차가 맨해튼이 위치한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할수록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또한 을씨년스럽게 바뀌어갔다. 내가 본 정신없고 화려한, 시끄럽고 분주히 돌아가는 뉴욕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기차가 Mt. Vernon East 가까워져 올 수록 마천루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한적한 교외의 풍경이 그 빈자리를 대신 채웠다. 풍경은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Mt. Vernon East역은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출근하던 조엘이 무언가를 깨닫기라도 한 듯이 반대편 플랫폼으로 달려가 몬탁 행 기차를 타는 장소다. 헤어진 연인이 서로의 기억을 지운 뒤 다시 시작하는 이상한 연애는 바로 이 작은 기차역에서 시작됐다.


I ditched work today. Took a train out to Montauk. I don't know why. I'm not an impulsive person. I guess I just woke up in a funk this morning.


오늘 회사를 땡땡이치고, 몬탁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충동적인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기분이 별로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밸런타인데이 아침, 회사를 땡땡이치고 출근 기차가 오는 플랫폼의 반대편으로 달려가 몬탁으로 향하는 조엘. 충동적인 사람이 아님에도 그가 전혀 생뚱맞은 장소인(본인은 그렇다고 생각하는) 몬탁 해변으로 향하는 이유는 사실 기억이 지워지기 직전, 클레멘타인이 귓속말로 전한 "몬탁에서 만나"라는 메시지가 지워진 그의 기억 속에 깊이 박혀버렸기 때문이다.


가끔 우리는 '충동적인'사람이 아닐지라도 영화 속 조엘처럼 무언가에 이끌려 평소에는 하지 않던 행동을 저지른다. 그런 행동의 원인을 손쉽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은'알 수 없는 머릿속의 속삭임'이다. 그러나 우리가 충동적인 행동을 저지를 때, 실제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그저 무언가 알 수 없는 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예감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 때문이다.


대부분 우리는 그런 무언의 충동을 억누르고 살아가지만, 때로는 알 수 없는 그 힘에 이끌려 과감하고 무모한 행동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무모함이 우리를 진정 우리가 원하는 대상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기도 한다. 영화 속 조엘이 반대편 플랫폼으로 뛰어가 열차를 잡아타는 그 장면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임과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충동의 순간을 영화적으로 가장 잘 표현해낸 장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그가 출근길의 충동을 평소처럼 가볍게 무시해버렸다면 아마도 이 모든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밸런타인데이의 충동. 그러고 보니 조엘이 사는 아파트 역시 성 밸런타인의 이름을 딴 Valentine Lane에 위치해 있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은 이 같은 디테일도 생각해두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꿈보다 해몽 같은 해석일까.

플랫폼에 서서 조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찍는 동안, 두 대의 기차를 보냈다. 이제 막 사진을 다 찍고 돌아서려는데, 방금 떠난 기차에서 내린 한 미국인이 환하게 웃으며 "야, 너 안경 멋지다"라는 칭찬을 건넸다. 그런 상황이 익숙지 않은 나는 의문과 경계를 잔뜩 품은 채 고맙다는 인사를 보냈는데, 그녀는 그 답변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인 채 쿨하게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미국 여행을 하며 적응하지 못했던 건, 이처럼 뜬금없는 타이밍에 훅 하고 치고 들어오는 미국인들의 대화방식이었다. 낯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불편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리는 오지랖과는 다르게 그들은 그저 본인이 보고 느낀 점을 어떤 가치판단 없이 솔직하게 얘기하고 쿨하게 넘어갔다. 내가 여행 중에 가장 크게 느낀 미국과 우리의 문화 차이였다. 어쩌면 미국인들의 '쿨'함이라는 건 바로 이렇게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은 채 자기 자신이 느끼는 바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역에서 생뚱맞게 안경 칭찬을 받은 나는 당황함을 애써 숨긴 채 우버 택시를 불렀다. 조엘이 사는 아파트인 Edendale로 향할 차례였다. 처음 경험해 본 우버는 우리나라에서 자주 이용했던 카카오 택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운전자가 택시가 아닌 정말 일반 차량을 몰고 와 태우고 간다는 점과, 차를 타는 내내 무안할 정도로 말을 건네지 않는다는 점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렇게 우버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해 아파트 현관문을 밀었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공동 현관문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만이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듯 보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차마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근처에 경비원이 있는지 찾아보려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떡해야 하나 하고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Excuse me"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더니 문을 잡고선 고갯짓으로 내게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옳다구나 싶었던 나는 "Thank You"하고 잽싸게 아파트 내부로 들어갔다. 나를 열쇠를 깜빡하고 온 입주민으로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문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는 모습이 불쌍해 보여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녀 덕분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조엘의 아파트는 몬탁과 더불어 상당히 인상적인 장소로 남게 되는데, 그가 기억의 삭제를 바로 이곳에서 진행할 뿐만 아니라, 영화의 엔딩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뒤늦게 모든 사실을 알고도 다시 한번 사랑을 시작하기로 결심하는 장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온 건물 내부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아파트였다. 너무도 평범해서 딱히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단조롭고 흔한 건물이었다. 곳곳에 영어로 쓰인 안내문들이 없다면 이곳을 한국의 어느 오래된 아파트로 착각할 정도였다. 아무도 없는 아파트 복도에는 오직 내 발자국 소리만이 크게 울리며 퍼져나갔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미국의 아파트 복도와 계단을 왔다 갔다 하고 있으니 괜한 긴장감이 생겨났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면서 조심스레 아파트 층계를 오르내려 둘이 대화를 나누던 복도와 최대한 비슷한 모습의 장소를 찾아다녔다. 마침내 영화 속 장면과 비슷한 장소를 찾아냈을 때, 평범했던 아파트 복도에서 나는 순간적으로 내 앞에 마법처럼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나타난 것 같은 착각에 휩싸였다.

장식적인 특징이나 건축적인 매력이라고는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아파트 복도였지만, 영화 속 촬영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머나먼 한국에서부터 찾아온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의미 있는 장소였다. 영화 속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대사와 그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영화 속 촬영지를 돌아다니는 일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들고 미리 준비해둔 영화 속 장면을 꺼내 사진을 찍으면서도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긴가민가했지만 결국 내가 그 장소를 찾아내고야 말았다는 행복감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몬탁 해변에서 만나 서로를 향한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사랑에 빠지게 된 두 남녀는 메리라는 의문의 여성에게 도착한 한 통의 우편물을 받게 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말들로 가득한 이 우편물 속에 동봉된 테이프를 재생하자, 기억을 지우기 전 클레멘타인이 조엘에 대해 얘기한 험담들이 스피커 너머로 들려온다. 그건 바로 미처 둘이 지우지 못한 망각의 부스러기였다. 혼란스러워하는 조엘과 클레멘타인.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 앞에서 둘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 도착해 한참을 펑펑 울던 클레멘타인은 무언가 결심한 듯 조엘의 아파트로 향하고, 그곳에서 클레멘타인이 그랬듯 기억을 지우기 전 조엘이 했던 말들을 듣게 된다. 서로에 대해 얘기한 험담을 절망적인 마음으로 듣고 있는 둘. 자신들은 알지 못하는 지워진 과거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날카로운 칼이 새롭게 시작하려는 남녀에게 되돌아와 꽂힌다.


견딜 수 없어진 클레멘타인이 만나서 반가웠다는 인사를 건네고 떠나려는 그때, 조엘이 복도로 나와 클레멘타인을 붙잡는다.

- I'm not a concept, Joel. I'm just a f***ed up girl who is looking for my own peace of mind. I'm not a perfect.

I can't see anything that I don't like about you. Right now. I can't.

- But you will. But you will. You know, you will think of things, and I'll get bored with you and feel trapped because that's what happens with me.

Okay.


- 조엘, 나는 내 앞가림이나 겨우 하는 이기적인 년이에요. 완벽하지도 않고요.

상관없어요. 지금은 당신이 맘에 드는걸요.

- 그렇지만 결국 당신은 나를 거슬려할 거고, 나는 당신을 지루해할 거예요. 그럴 거라고요.

괜찮아요. 뭐 어때.


우리의 사랑은 결말이 정해져 있다는 클레멘타인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웃어 보이는 조엘. 끝끝내 헤어지게 되더라도,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과 기억을 온전히 간직한 채 살아가겠다는 다짐. 그건 망각의 부스러기를 더듬거린 끝에 다시 만난 클레멘타인과 조엘의 사랑임과 동시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연인들의 사랑이다.


끝이 정해져 있는 사랑은 비단 영화 속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 뿐 아니라 일상 속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필멸의 존재인 우리에게 사랑이란 어쩌면 끝을 알고도 시작하는 미련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앞선 이별의 경험들을 통해 지금의 터질 것 같은 이 사랑에도 언젠가 끝이 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내 끝끝내 당신을 싫어하게 되더라도지금 이 순간 만큼은 당신을 사랑하리라는 마음. 그 벅찬 마음을 안은 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Blessed are the forgetful for they get the better even of their blunders.
망각하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 Friedrich Nietzsche,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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