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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Sep 14. 2020

내 인생의 사운드트랙

지금까지의 인생에 OST를 깔아본다면

영화 <Searching for Sugar Man>을 보다가 이런 표현을 봤다.


"Soundtrack to our lives"


대충 우리나라 말로 풀어보자면 '인생의 사운드트랙' 정도 될 것 같은데, 이 표현을 보고선 문득 내 인생에 OST를 깐다면 어떤 음악들을 골라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12개의 트랙을 골라서 삽입곡을 만든다면 어떤 노래들이 수록될까. 그래서 며칠 동안 천천히 고민하며 노래들을 뒤적거려보았다.


그렇게 오래 산 인생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30년 남짓한 인생의 OST를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고르고 싶은 노래는 너무 많았고, 내 삶에 영향을 준 음악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하는 생각을 계속해서 하게 됐다. 특정 기억을 떠올렸을 때 떠오르는 음악도 있었고, 특정 음악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장면도 있었다. 그야말로 정말 인생의 OST를 고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걸 생각하는 일은 늘 재밌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저 멀리 과거로 나를 데려간다. 처음 샀던 음반, 학창 시절 내내 CDP로 돌려 듣던 음악,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이 담긴 노래 등. 잠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아무튼, 그리하여 열 두 곡의 노래를 선정해보았다. 개인적인 기준의 명곡이라기보다는 인생의 특정 순간, 특정 장면이 떠오르는 노래들로 골랐다. 이건 음악사에 길이 남을 best 10곡을 고르는 게 아니라, 아주 개인적인 내 인생의 이야기가 담긴 노래들이므로. 내가 고른 열 두 곡은 다음과 같다.


1. 해이 - Je t'aime

2. 에픽하이 - Fly

3. 토이 - 좋은 사람

4. 캐스커 - 고양이와 나

5. 아이유 - Rain Drop

6. 자우림 - 스물 다섯 스물 하나

7. 가을방학 -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 질 때가 있어

8.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 스끼다시 내 인생

9. George Winston - Variations On The Kanon By Johann Pachelbel

10. Once ost - Falling Slowly

11. Coldplay - The scientist

12. Beatles - The long and winding road


이 열 두곡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여기서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경합을 펼친 곡과 가수들이 많았다. 오아시스와 라디오헤드를 넣지 못한 것도 아쉽고 데이미언 라이스와 레이첼 야마가타도 뒤늦게 생각났으나 처음 생각한 곡들이 더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곡들이 아닐까 싶어 넣지 않았다. 김광석이나 김광진, 다이나믹 듀오, 브라운 아이즈와 브라운 아이드 소울, 엔니오 모리꼬네 등등. 그 목록을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이런 노래들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 애석하면서도 동시에 내가 이렇게나 좋은 음악들 속에 둘러싸여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세상에는 정말 좋은 음악들이 많다. 앞으로도 많은 좋은 노래들이 나를, 세상을 감동시켜주길 작게 나마 소망해본다.


지금부터는 노래 한 곡 한 곡에 얽힌 이야기와 선정 이유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1. 해이 - Je t'aime(쥬뗌므)


해이는 내가 내 돈을 주고 음반을 구입한 최초의 가수다.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Je t'aime가 실린 1집이 아닌 2집과 서태지의 7집을 구매했었다. 처음 Je t'aime를 들었을 때, 해이의 청아한 목소리와 세련된 노래의 멜로디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노래는 지금 들어도 세련됐을 정도로 도회적인 색채를 강하게 띄고 있는 느낌이다. 프랑스의 샹송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해이는 내가 전공으로 불어불문학과로 선택했던 많은 이유들 중 하나였다. 그녀가 조규찬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좌절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내가 덕질한 최초의 가수일 것이다.


https://youtu.be/Qqg1BciIo-Y


2. 에픽하이 - Fly


에픽하이의 이 노래 역시 해이의 노래를 선택한 이유와 비슷하다. 중, 고등학교 시절엔 한창 힙합에 빠져 있었는데 그 당시는 지금 대한민국 힙합계에서도 대선배급이 된 에픽하이와 다이나믹 듀오가 막 음반을 내고 활동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에픽하이의 1,2집을 주야장천 돌려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당시 그들의 가사는 지금도 그렇지만 매우 철학적이면서도 충격적이었다. 타블로가 논스톱에 나오는 건 싫었지만 아무튼 타블로가 그렇게 TV 활동을 활발히 한 덕분에 에픽하이는 Fly가 수록된 3집을 기준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타이틀 곡이었던 Fly가 상당히 대중적으로 나와 사람들이 편하게 듣기 좋다는 이유도 한몫을 했다.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 아직도 고등학교 시절 체험학습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부평역 뒤편의 레코드 점에 들러 에픽하이의 3집을 사들고 돌아오던 길이 생생하다. 집에 있던 커다란 오디오 컴포넌트에 넣고 처음 3집을 듣던 때의 행복감은 이상하게 그 전에도 뒤에도 한 번도 느낄 수 없었다. 이상하게 막 그렇게 엄청 감동을 받은 노래도 아니고, 이 노래 보다도 훨씬 좋은 소위 말하는 '명곡'들을 많이 들었음에도 말이다. 그 당시엔 정말 심장이 터질 정도로 벅차오르는 행복감을 느꼈다. 왜였을까?


여담이지만 CD의 겉 비닐을 뜯고, 뻑뻑한 케이스를 열어 시디를 빼낸 다음 오디오 플레이어에 넣고 재생 버튼을 누르는 그 일련의 행위는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한다. 시디 안에 수록된 가사집을 뒤적거리며 하나의 음반을 온전히 듣는 그 행복감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https://youtu.be/IAgRgOh_t3o


3. 토이 - 좋은 사람


내 학창 시절은 정말 찌질함의 극치였다. 중-고-대학교로 이어지는 그 찌질의 역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도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이불 킥 정도가 아니라 이불을 찢어발기고 싶을 정도다. 토이는 그런 내 찌질 감성을 대표하는 가수였다. 오죽하면 대학교 동창이 나에게 "너야말로 토이 노래에 담긴 그 감성 찌질함의 정수"라는 표현을 썼을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 친구 말이 좀 심했네.


토이의 좋은 사람은 노래방에서 친구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처음 알게 됐다. 그 친구는 주로 sad 버전이라 편곡된 정말 처절하게 찌질한 노래를 더 좋아했는데, 잘생기고 키도 큰 친구가 왜 sad 버전을 더 좋아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기만자였다. 아무튼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땐 가사의 내용이 너무 좋아서 감탄했다. 섬세하고 현실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찌질함을 아름다움으로 포장하는 그 감수성이 좋았다.


앞에서 토이가 내 찌질 감성을 대표한다고는 했지만 나는 이런 토이의 찌질 감성을 단순히 '찌질함'이라는 한 단어로 재단해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엔 토이의 노래처럼 섬세하면서도 깨지기 쉽고, 누군가에게 쉽게 말은 못 하면서 혼자 속으로 삭혀버리는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토이의 좋은 사람은 내 인생의 ost를 떠올리자마자 거의 제일 먼저 떠오른 노래다. 고백하고 차인 순간마다 이 노래를 들었다. 노래를 다시 듣고 있으려니 그 숱한 차임의 역사가 떠오른다(...)


https://youtu.be/XNHYLmNhNvI


4. Casker - 고양이와 나


고등학교 2학년 때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의 컬러링이 바로 Cakser의 고양이와 나였다. 당시엔 선생님께 여쭤보기도 뭣하고 그래서 저음질의 컬러링에서 가사를 기억해낸 뒤 집에 와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알아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는 일종의 첫사랑과 관련된 노래라고도 할 수 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선생님과 사적인 통화를 자주 했다. 2학년 담임 선생님이었지만, 오히려 3학년에 올라가고 나서 더 친해졌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교무실도 자주 놀러 가고, 밖에서 따로 영화도 보고 밥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께 전화를 할 때면 항상 컬러링이던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그때 스카이 폴더폰을 들고 조마조마해하던 고등학교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선생님으로 인해 알게 된 것과 얻게 된 취향 등이 많다. 영화 원스가 그랬고, 잡지 PAPER가 그랬다. 교무실에 놀러 가면 항상 주시곤 하던 청포도 사탕 때문에 청포도 사탕을 보면 선생님이 떠오르고, 겐조 향수를 뿌리고 다니신 탓에 겐조의 물향과 비슷한 향조를 맡으면 자연스레 선생님이 생각난다. 누군가를 향기로 기억하는 건 선생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3년 전쯤 첫 책이 나왔을 때 전화로 연락을 한 적이 있으나, 그 이후로는 연락하지 않았다. 이젠 인천에서 어느 지방으로(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옮기셨고, 결혼을 해 자식이 두 명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https://youtu.be/bwEco_buv6I


5. 아이유 - Rain Drop


이 노래는 군대에서 처음 들었다. 2010년 8월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당시 훈련병이었던 나는 병 식당에서 배식 조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던 중이었다. 뒤편의 조리실에서는 취사병들이 커다란 스피커로 흥겨운 멜로디의 가요를 틀어놓고 있었고, 그 노래들 중 하나가 바로 아이유의 Rain Drop이었다. 나는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듣자마자 충격에 바로 얼어버렸다. 일부러라도 일을 늦게 끝내 한 번이라도 더 듣고 싶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그렇게 아이유라는 가수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그전까지는 아이유에 대해 '세 바퀴에 나온 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어린애'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인상적으로 부른 기억은 있었으나 딱 그 정도였다. 그러나 2010년 여름의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아이유의 찐 팬이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가장 덕질을 오래, 그리고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가수는 아이유 밖에 없다. 사실 아이유에겐 더 좋은 노래가 많으나 너무 많아서 내가 처음 입덕 하게 된 노래를 골라보았다.


https://youtu.be/EQzqq0LNlto


6. 자우림 - 스물 다섯 스물 하나


자우림은 내가 가장 오랫동안 꾸준히 팬질을 유지하고 있는 가수다. 그들이 데뷔하고 얼마 안 됐을 때부터 빠져서 듣기 시작했으니 꽤 오래되었다. 자우림의 모든 노래 중에서 한 곡을 고르기란 오래된 팬질의 역사만큼이나 쉽지 않은데 그래도 굳이 꼽자면 이 곡, 스물 다섯 스물 하나다.


이 노래가 나온 해에 나는 때마침 스물다섯이었다. 스물한 살의 여자 친구가 있었던 터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 해 놓은 '스물 다섯 스물 하나'를 보고 놀려댔지만, 그건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이었다.


나는 이 노래를 처음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스물 다섯, 첫 인턴을 하며 광화문으로 출퇴근을 하던 당시의 나에게 이 노래는 자우림이 내게 건네는 일종의 위로였다. 당시의 나는 특별할 줄 알았지만 지극히 평범한 보통의 사람임을 깨닫게 되는 과정에 놓여 있었다. 자우림의 노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계속해서 살아가 볼 만하다는 메시지를 내게 건네고 있었다. 여전히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광화문 사거리에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던 스물다섯의 내가 떠오른다.


https://youtu.be/LrB-fJn-3w4


7. 가을방학 -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 질 때가 있어


가을방학의 이 노래야말로 스물 다섯 즈음에 사귄 연인과 관련된 노래다. 제대 후 학교에 복학하고 사귄 첫 여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 이 노래를 끊임없이 돌려 들었다. 하필이면 학교 앞의 자주 가는 술집에 갔을 때, 헤어진 여자 친구를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하필이면 또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때문에 더 내게 각인된 노래이기도 하다.


사실 이 노래는 정바비가 세상을 떠난 형제에게 바치는 노래지만, 가사 안에 담긴 메시지는 좋은 기억을 남긴 채 헤어진 연인들에게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다. 가을방학의 가사들은 정말 아름다운데,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노래다. 네 덕분에 나는 반짝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나는 행복했다는 가사. 만약이라는 두 글자에 기대어 보지만 만약이라는 그 두 글자 때문에 또 한 번 무너져내리는 내 자신을 끊임없이 발견하는 이들을 위한 노래다. 만약은 만약이기 때문에, 현실에 없는 무언가를 상상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상실감이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https://youtu.be/3cS964_AlMY


8.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 스끼다시 내 인생


토이의 찌질함이 그래도 감성적이라면,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찌질함은 그야말로 인생의 실전을 보여준다. 찌질이라기보다는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하이퍼 리얼리즘에 가깝달까.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 같은 노래 보다는 이쪽이 더 내 스타일에 가까워서 비슷한 시기에 더 많이 듣곤 했다. 이 노래를 들으며 백양로를 가로지르며, 이십대 초반 밖에 안된 내가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 곱씹어보던 장면이 떠오른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코웃음이 나지만.


달빛요정은 내가 군대에 있던 중, 고독사로 세상을 떠났다. 때문에 그의 노래가 더 처절하면서도 가슴에 와닿게 들린다. 생활관 한켠에서 틀어둔 뉴스를 통해 그의 사망소식을 접했던 날, 나는 내 인생의 한 페이지가 막을 내린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스끼다시 같은 인생이지만, 어차피 난 횟집에 가도 회보다는 스끼다시를 더 좋아하니까 그걸로 된 것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스끼다시가 회보다 더 취향일 수 있는 법이다. 그게 인생이기도 하고 말이다.


https://youtu.be/eFPE3kBt3GM


9. George Winston - Variations On The Kanon By Johann Pachelbel


이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파헬벨의 캐논. 우리나라에는 엽기적인 그녀에 나온 조지 윈스턴의 변주곡으로 더 잘 알려진 음악이다. 나 역시 엽기적인 그녀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됐는데 지금까지도 멜로디만 있는 곡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다.


고등학교 3학년 가을 어느 날, 주말에 자습을 위해 학교를 간 적이 있었다. 그날 학교 운동장 한 켠 벤치에 앉아 아이팟 안에 담긴 이 노래를 듣다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수능에 대한 부담감,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뒤섞여 있던 내게 이 음악이 위로를 건네주는 것 같아서였을까? 당시 나는 입시에 큰 부담이 없었는데도(성적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그냥 별 생각이 없었다)이상하게 그땐 눈물을 흘렸다. 지금도 가끔 이 노래를 들으면 그때 기억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가사 하나 없는 이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릴 수 있다니, 참 감수성 풍부한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https://youtu.be/kllZlF6mB2s


10. Once ost - Falling Slowly


이 노래의 전주가 흘러나오면, 앞에서 말했던 고등학교 선생님과 함께 처음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당시에 왜 이 영화를 봤는지는 모르겠는데, 지금까지 봐 온 영화와는 결이 다른 영화였다. 뒤늦게 이 영화가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깔끔하지 못한 화질에 카메라 워킹은 끊임없이 흔들렸지만, 나는 이 영화의 마법에 완전히 빠져들었고, 결국 나를 이 영화의 촬영지였던 아일랜드의 더블린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그 선생님과 이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면 이정도로 내가 원스라는 영화에 빠져들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1년에 한 번씩은 꼭 다시 보는 영화다. 고등학생 시절, 열 살 많은 연상의 선생님에게 빠져버린 제자. 누군가는 비난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때 내가 느낀 그 감정은 정말 순수하게 사랑에 가까웠다. 선생님과 나 사이에는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렇게 정말 아무 조건 없이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을까 싶어진다.


https://youtu.be/k8mtXwtapX4


11. Coldplay - The scientist


두말 할 필요 없는, 콜드플레이의 대표곡이다. 나 역시 콜드플레이를 이 노래로 알게 되었다. 처음엔 아마 브릿팝을 좋아하던 대학교 선배를 통해 알게 되었을텐데, 그 뒤로 콜드플레이의 모든 곡을 미친듯이 찾아서 듣기 시작했다. 이 노래를 처음 접하고 크리스 마틴의 그 오묘한 음색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실 콜드플레이 전에는 라디오헤드를 더 많이 들었고 여전히 OK computer를 최고의 음반으로 생각하긴 하지만, 콜드플레이의 내한 공연을 가고 난 뒤 최애는 콜드플레이로 바뀌었다. 공연에서 크리스 마틴이 이 노래를 부르기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다가, 드디어 전주가 흘러나왔을 때 심장이 빠르게 뛰고 온 몸에 소름이 쫙 돋던 그 순간의 전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https://youtu.be/RB-RcX5DS5A


12. Beatles - The long and winding road


가장 좋아하는 가수를 단 하나만 고르라면 주저없이 고르게 될 가수는 단연 비틀즈다. 이 목록을 선정하면서도 제일 먼저 떠오른 가수가 바로 비틀즈였다. 내가 비틀즈를 좋아하게 된 것은 엄마의 영향 때문이다. 어린 시절 엄마는 비틀즈의 첫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인 <1>을 사서 항상 거실에서 틀어두곤 했다. 자연스럽게 비틀즈의 노래들을 접하게 되었고 나 역시 비틀즈를 좋아하게 됐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햇살이 천천히 떨어지던 거실에 하릴없이 누워있던 열 여섯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이 노래가 흘러나올 때 쯤이면 오디오 플레이어에 담긴 이 음반이 끝나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노래가 끝나면 오디오 플레이어에서 씨디가 부지런히 돌아가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고, 나는 일어나서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르고는 했다. 언젠가 인생의 마지막이 온다면, 이 노래를 트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https://youtu.be/NR0u_qjq2fM


이렇게 내 인생의 사운드트랙 열 두 곡을 골라봤다. 쓰다보니 주저리주저리 말이 참 길어졌는데, 아마 시간이 흘러 다시 내 인생의 사운드트랙을 골라보라고 하면 이 중 몇 곡은 바뀔지도 모르겠다. 목록을 작성하며 느낀건 노래라는 것이 생각보다 기억과 아주 강렬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내가 과거를 생각보다 또렷이 떠올리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아마도 노래의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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