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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Dec 13. 2015

파리의 민낯, 그리고 비포 선셋

(2015.01.01 in Paris, France)

바뀐 잠자리가 낯설었는지 전날 새벽 늦게 숙소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숙소에서 대충 준비를 끝내고 거리로 나왔다. 거리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듯 한산하기만 했다. 파리의 아침은 전날 밤과 몰라보게 달라져있었다. 전날 밤의 광란은  온데간데없고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함과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아직도 내가 새해를 맞이하고 있는 곳이 파리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2015년 1월 1일의 아침이었다.

파리에서의  첫날은 영화 비포 선셋의 촬영지를 돌아다니며 둘러볼 계획이었다. 비포 선셋의 촬영지를 따라다니는 일정은 아직은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파악하기에도 좋을 듯한 동선이었다. 아무리 혼자 여행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지만, 파리에서의 새해 첫 날을 혼자 돌아다니며 보내기엔 아쉬웠던 나는 마침 전날 함께 새해를 맞이했던 동행들 중 내 일정에 관심을 보인 친구와 함께 다닐 예정이었다. 약속 장소는 역시나 영화가 처음 시작하는 장소인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앞이었다.


그러나 예정된 약속시간보다 일찍 숙소를 나왔던 나는 우선 생 제르맹 데 프레 거리에 있는 유명한 카페 'Café de Flore(카페 드 플로르)'를 들러 커피 한잔과 빵을 먹으며 파리지앵 같은 하루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흔히들 프랑스 하면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이런 크고 작은 카페들이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에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카페들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이 '카페 드 플로르'였다. 프랑스의 카페는 그 당시 일종의 사랑방과 같은 곳으로, 많은 지식인들이 카페에 모여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사교의 장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카페 드 플로르'는 알베르 카뮈와 프랑스와 미테랑 전 대통령,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커플 등이 자주 찾았던 곳으로 알려져있다.


카페 드 플로르 바로 옆에도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는데 이 곳 역시 헤밍웨이나 생텍쥐베리 등의 유명한 문호들이 자주 찾았던 카페라고 한다. 너무 가까운 곳에 이렇게 어마어마한 두 카페가 마주하고 있어 어쩐지 두 카페 간의 경쟁의식이 무척 심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카페 앞에 도착한 나는 혼자서 들어가지 못한 채로 쭈뼛거리며 한참을 서성였다. '어쩐지 고급스러워 보이는 이런 카페에 내가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전공 시간에 익히 들어왔던 카뮈라든지 헤밍웨이 같은 작가들이 자주 찾았다는 카페를 내가 막 들어가서 이용할 수 있는 곳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나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한참을 기웃거리고 나서야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나는 카페 드 플로르에 들어가 노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종업원은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고 참지 못한 나는 손을 들어 종업원을 불렀으나(프랑스에서는 웨이터를 부를 때 '웨이터!'하고 외치거나 손을 드는 행위는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기다려달라는 답변만 남긴 채 한참을 나타나지 않았다. 내 앞에 앉은 프랑스 남자가 신문을 읽으며 아침을 먹는 모습을 한참 동안 관찰하던 나는 커피 한잔 마시지 못한 채 자리를 떴다.


이 뒤로도 나는 유명한 사람들이 즐겨 찾았다는 카페에 몇 번 들렀지만 그때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자주 찾았다는 사실이 적어도 내겐 그 장소에 대한 인상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사실들은 어쩐지 내게 전혀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못하는 어떤 신화 속 이야기 같았을 뿐이었고, 오래된 카페의 분위기 속에서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글을 썼을지 생각해보기엔 내 사고의 깊이가 그 정도에 가 닿지 못했다.

카페를 나와 바로 앞에 있는 생 제르맹 데 프레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당 앞에선 어떤 할머니가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나눠주고 있었다. 영화 '나홀로 집에'에 나왔던 비둘기 아줌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연 있어 보이는 그 할머니는 애완견을 데리고 한참 동안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나눠주고 있었다. 동화 속 마녀 같기도 하고 푸근한 동네 할머니 같기도 한 그녀의 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봤다.


생 제르맹 데 프레 성당에 대한 어떤 정보도 모른 채 들어갔던 나는 나중에서야 이 성당이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라는 것을 들었다. 중세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 558년에 처음으로 건립되었고, 10세기 말에 재건되어 그 뒤로 몇 번의 증축과 개보수 작업을 거쳐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내부에는 수학자 데카르트와 폴란드 왕 카시미르의 묘비 등이 있다. 생 제르맹 데 프레 성당의 옆에 있는 작은 뜰에는 프랑스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흉상도 있었는데, 알고 보니 피카소가 그를 기리며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기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라는 시를 수업시간에 공부하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어 그 흉상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생 제르맹 데 프레 성당을 나온 나는 본격적으로 비포 선셋의 촬영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은 걸어서 약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천천히 걸어가며 생 제르맹 데 프레 거리에 위치한 작은 노점들을 구경했다. 거리는 아직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곧,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에 도착했다.

파리에 여행하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셰익스피어 & 컴퍼니를 마주치게 된다. 파리의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 중의 하나인 노트르담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센느 강변에 위치해있어 어디를 가든지 한 번쯤은 이 서점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항상 서점 앞에 사람들이 몰려있어 근처를 지난다면 호기심 때문에라도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또한 이 서점은 파리에 최초로 생겨난 영미문학 전문 서점으로도 유명하다. 영화 비포 선셋 덕분이 아니라 원래도 앙드레 지드나 헤밍웨이 등의 작가들이 즐겨 찾았던 역사 있는 서점이기도 한 이 곳에서 영화는 제시와 셀린느의 재회를 그린다. 파리에서 둘의 재회를 나타내기에 이렇게 상징적인 곳이 또 있을까 싶다. 미국에서 온 제시와, 파리의 여인 셀린느. 온통 프랑스어로 가득한 파리 한 가운데 마치 영어의 섬처럼 위치한(파리의 한 가운데에 영국 최고의 작가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딴 서점이라니!) 이 이질적이면서도 운치 있는 영미문학 서점에서 둘의 재회가 이루어지는 것은, 미국 남자와 파리 여자의 9년 만의 재회를 다루기엔 더 없이 적절한 장소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 서점은 단순히 비포선셋 혹은 미드나잇 인 파리의 촬영지가 아니라, 그 자체로도 무척이나 매력적인 곳이었다. 목조로 이루어진 서점 내부에 빼곡히 꽂혀있는 각종 서적들과, 조용히 책 읽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배려하는 서점 직원들까지 세 가지가 삼위일체 하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로 인해 서점에 사람들이 몰려도 본연의 역할(?)을 버리지 않고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심지어 고맙기까지 한 곳이기도 했다.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사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어차피 영어로 된 책을 읽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상징적인 의미로 한 권 정도는 샀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곳에서 같이 다니기로 한 친구를 만났다. 계획했던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나는 슬슬 허기를 느끼고 있었다. 마침 곧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우리는  카르티에라탱 지구에서 이 친구가 추천하는 식당을 들어가 밥을 먹기로 했다. 저렴한 가격에 프랑스식의 코스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는데, 정말로 '저렴한'가격에 맞는 프랑스식의 코스요리가 나왔다. 맛은 나쁘지 않았으나 왜 프랑스 하면 요리라고 하는지 이때까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내 프랑스 여행에서 딱 하나 빠진 것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음식'이었다.

그래도 프랑스에서 먹은 첫 요리치 곤 꽤 나쁘지 않은 맛이었다. 배를 채운 우리는 본격적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앞을 다시 지나 우리가 향한 곳은 그 옆의 골목이었다.

이 골목은 9년 만에 재회한 제시와 셀린느가 걷던 길이었다. 이 곳에서 셀린느는 제시에게 9년 전에 비엔나에 다시 갔느냐고 물어보며 그 당시 자기는 할머니의 장례식 때문에 가지 못했다고 말한다. 셀린느 앞에서 얼버무리며 '나도 못 갔다'는 제시의 거짓말을 바로 알아차리곤 미안해하는 셀린느.


운명적인 사랑은 실제로 그 둘이 이루어졌을 때만이 '운명적'이라는 마법의 단어를 붙일 수 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는 결코 '운명적'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다. 그들에게는 비엔나에서의 사랑이 그랬다. 비엔나에서의 사랑은 파리에서 재회하기 전 까지 '운명적'이라는 단어 대신'안타까운' 혹은 '아쉬운'이라는 접두사만이 붙을 수 있을 뿐이었다. 셀린느에게 할머니의 장례식 때문에 가지 못한 9년 전의 비엔나도, 제시에게 셀린느를 만나지 못했던 9년 전의 비엔나도 둘에게 비엔나라는 공간은 그렇게 운명적일 수 있었던 사랑을 안타깝게 놓친 장소로 기억될 뿐이었다.

그 둘을 쫓아 세 번째로 갈 곳은 서점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영화에서는 길을 '조금'걷는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 센느강을 건너 꽤 먼 거리를 걸어야 했다. 동행하는 친구가 메트로를 타고 가는 것을 원했기에 우리는 역으로 향했다.

파리는 어디서 사진을 찍든 작품이었다. 건물들의 개보수에 부여된 엄격한 규제정책은 파리를 고풍스러우면서도 기품 있는 도시로 만들었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불편한 정책이었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불편함을 감수 해낸 건, 그 도시를 향한 그들의 자부심과 애정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리라.

목적지로 향하는 메트로를 탄 우리는 어디선가 나는 시큼한 냄새에 저절로 코를 막았다. 파리에서 꽤 오래 지낸 경험도 있었고, 파리를 자주 왔다는 그 친구는 이 냄새의 근원이 파리의 노숙자들이라고 했다. 그러자 나는 우리가 열차에 오르기 직전 한 노숙자가 열차에서 내렸던 것이 생각났다. 태어나  난생처음 맡아보는 불쾌한 냄새였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코 밑이 시큰거리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잊지 못할 냄새였다. 이렇듯 파리는 여러모로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많은 것들이 달랐다. 군데군데 낡고 허름한 도시 곳곳엔 퀴퀴한 냄새가 거뭇한 얼룩마다 스며있었다.


내가 파리에 대해 기대했던 그 모든 것들이 산산이 조각나는 데는 채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파리에서의 10일은 혼자서 차곡차곡 쌓아왔던 낭만과 기대를 한방에 무너뜨린 뒤 다시 천천히 쌓아 나가는 여정이었다. 내가 마주한 것들은 낭만이라는 화장을 하지 않은 파리의 민낯이었다. 앞으로의 여행을 위해선 그런 모습들도 익숙해지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했다.


다행히 목적지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우리는 금방 냄새나는 메트로에서 내릴 수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생 폴 생 루이(Paroisse Saint Paul-Saint Louis) 성당 근처의 골목길이었다. 이 골목길에서 둘은 제시의 소설과 둘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가 쓴 소설에 대해 셀린느는 자신이 타인(제시)의 눈을 통해 표현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렇게 묘사된 자신이 다시 다른 타인에게 읽히는 그 묘한 감정에 대해 털어놓는다. 굳이 셀린느처럼 타인에 의해 소설에서 묘사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종종 타인에 의해 나 자신이 정의되는 경험을 겪곤 한다. 이런 경우 내가 생각한 내 모습과 타인이 생각하는 내 모습이 다를 때,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이질감을 경험하곤 한다. 그리고 이럴 때 우린 마치 발가벗겨진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대부분 타인에 의해 묘사되는 내 모습은, 오해다. 우리는 매일 무수하게 많은 오해들 속에서 서로를 오해하고, 그리고  오해받으며 살아간다.


제시가 묘사한 9년 전의 자신도, 그리고 사람들에게 읽히는 9년 전의 자신도, 자신이 생각한 9년 전의 소녀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건 어쩌면 모두 오해였다. 제시가 생각하고 묘사한 셀린느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다시 재해석된 셀린느도 모두 그녀 자신은 아니었을 테다. 제시가 책에서 묘사한 셀린느와 그가 9년 만에 다시 만난 셀린느는, 그의 상상 속에 9년 동안 존재했던 셀린느와는 다르지 않았을까. 거기엔 9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은 차이가 존재했으리라.

성당에서 나와 그 길을 걷다 보니 근처에 셀린느의 집으로 나오던 아파트가 있었다. 영화에서는 마당에서 바비큐를 해먹는 같은 아파트의 주민들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조용한 주택가일 뿐이었다. 왁자지껄한 바비큐 파티라든지, 명랑한 이웃 따위는 없었다. 그곳은 영화와 현실 사이엔 딱 이만큼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보여주려고 하는  듯했다. 어차피 이 곳에서는 더 할 일도 없었으므로 아파트를 잠깐 구경한 뒤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방해를 줄 것 같아 사진만 조금 찍고는 바로 나왔다.


그리고 도착한 카페 Le Pure Café. 영화에서 둘은 카페에 들어가 9년 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본격적으로 나누기 시작한다. 둘이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이 신변잡기적인 내용들이었지만 9년 만에 만난 남녀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쉬지 않고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너무나도 로맨틱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런 일이야말로 정말로 영화 같은 일일 것이다. 매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커플 혹은 친구 간에도 서로 설전을 벌이게 되면 자연스레 감정이 상하곤 하는데, 영화에서 이 둘은 크고 작은 의견 충돌과 대립, 그리고 설전을 벌임에도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운명의 짝은 마치 직소퍼즐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직소퍼즐은 두 퍼즐이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오히려 약간 혹은 전혀 다른 모양의 직소퍼즐이 둘, 그리고 몇 백개가 모일 때 하나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이처럼 운명이라는 것은 서로 다른 남녀가 마치 직소퍼즐처럼 완벽하게 들어맞는 그 지점에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서로 다른 남녀가 완벽하게 들어맞는 그 지점을 두고 우리는 마법이라고 부르는 것일 테다.

동행한 친구와 나는 카페 안에 들어와 몸을 녹일 겸 커피를 한잔씩 시켰다. 셀린느와 제시가 앉아있었던 자리에 가서 앉아보고 싶었으나 이미 그 자리엔 먼저 온 사람들이 있었다. 카페 안의 분위기는 조용했다. 웨이터는 마치 우리가 왜 여기 왔는지 알고 있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우리도 그 미소에 화답했다. 카페에서 시킨 카푸치노는 부드러웠다. 추운 날씨에 오래 걸은 몸의 피로를 풀어주기엔 이만한 음료도 없었으리라. 특별히 맛있거나 기억에 남는 맛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런 평범한 맛이었기에 카페에서 부담 없이 피로를 풀 수 있었다.


카페에서 추운 몸을 녹인 우리는 여기서 작별인사를 나눴다. 그 친구는 오후에 개인 일정이 있었고, 나는 이 일정의 마지막 목적지가 한 군데 더 남아 있었다. 길지도, 아쉽지도 않은 짧은 작별 인사를 나눈 우리는 상대방의 여행에 축복을 건네며 헤어졌다.

파리의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짧은 유럽의 겨울 해였다. 해가 지기 전에 빨리 마지막 장소를 돌아본 뒤 숙소로 돌아가야 했기에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밤의 파리를 또 혼자서 돌아다닐 자신이 없었다.


영화에서 둘은 카페를 나와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ée)의 산책로를 걷는다. 프롬나드 플랑테는 가로수 산책길 정도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곳은 원래 근처의 바스티유 역에서 파리 동남쪽을 연결하던 철도가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하지만 1969년 운행이 중단된 후 방치되어있었다가 1980년대에 이 곳을 녹지로 조성하는 사업을 시작했고, 1993년에 완공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가만 보면 프롬나드 플랑테만의 특징적인 철골구조물들이 있는데, 이 특이한 디자인의 구조물은 기존에 있었던 철도의 모양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 곳은 뉴욕 하이라인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고.

프롬나드 플랑테를 걸으며 제시와 셀린느는 9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하룻밤을 보냈던 9년 전의 제시와 셀린느는 이젠 더 이상 운명적인 사랑을 믿기엔 조심스러울 것이 너무나도 많은 나이로 파리에서 재회한다. 그리고 둘은 9년 전 비엔나에서 있었던 일을 제각기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이렇듯 서로 같은 사건을 놓고 다르게 기억하는 일은 우리 주변에서도 비일비재하다. 보통 헤어진 연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비극은 바로 이런 '기억의 차이'에서 야기한다. 어느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기억이 어느 누군가에겐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일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행복했던 일이 상대방에겐 아무 일도 아닐, 심지어 고통스러웠던 기억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보통의 경우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우리의 기억이고, 추억이다.

이렇듯 인간은 변하지 않는 사실 앞에서 무기력한 존재다. 우리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 앞에서 무기력한 인간이 억지로 기억과 추억을 미화시키는 것은 어쩌면 과거의 기억에 대한 유통기한을 늘리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럴 때 우리는'기억은 미화된다'라는 유명한 경구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사실 비포 선셋의 촬영지를 쫓아다니는 과정은 영화만큼 로맨틱하지는 않았다. 촬영지가 어딘지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기도 했고, 비포 선셋이라는 영화자체가 둘의 대화 위주로 이루어진 작품이었던지라 촬영지 자체에 대단한 볼거리가 있다거나 한 곳들도 아니었다. 단지 '파리를 여행하는 여행자는 골목길에서 길을 잃어야 한다.'는 그 유명한 문장을 몸소 체득할 수 있던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제시와 셀린느의 로맨틱한 경험 역시 꾀죄죄하게 파리의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한국인에겐 파리와 서울 사이의 거리 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지는 단어였다. 다행스러웠던 건 그래도 파리를 여행하는 첫날부터 파리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파리라는 도시에 대해 익숙해질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프롬나드 플랑테에서 저무는 파리의 태양을 보며, 그래도 이 도시가 조금은 사랑스러워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비포 선셋(해가 지기 전)이었다.

어쩌면 내가 경험한 그 간극들이 바로 영화와 현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심지어 내 상상 속 파리와 실제의 파리 사이에도 상당한 간극이 존재했으니 말이다). 결국 비포 선셋이라는 영화도 결국  9년이라는 시간의 간극, 제시의 소설 속 셀린느와 현실의 셀린느 사이의 간극 등 세상의 간극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간극들에 대해 이렇듯 로맨틱하게 풀어낸 영화가 또 있을까.


지친 몸을 이끌고 해가 진 파리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하며, 2014년과 2015년은 또 얼만큼의 간극이 벌어질까 하고 생각했다. 이미 해가 진 파리의 거리는 어느덧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새해의 태양을 대신하여 환하게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그렇게 파리에서의 새해  첫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영화 비포 선셋에 대한 내용과 사진들은 제가 이전에 썼던 글 '그 모든 간극들에 대하여' - https://brunch.co.kr/@framingtheworld/12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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