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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Dec 28. 2015

아름다움을 붙잡는다는 것

(2015.01.02 in Paris, France) - 1


아침부터 공기는 착 가라앉아 있었고 창문 너머로  내다본 땅은 젖어 있었다. 하늘에서는 마치 분무기를 뿌리듯이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산을 쓰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 처음엔 우산을 썼던 나도, 그들을 따라 이내 우산을 접어버렸다. 왜 비 오는 날씨에도 그들이 우산을 쓰지 않았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파리지앵들이 폭우가 내리는 날도 우산을 쓰지 않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날의 아침은 확실히 우산을 쓰기에도, 안 쓰기에도 애매한 날씨였다. 그렇게 나는 괜히 파리지앵의 낭만이라고 혼자 생각하며 보슬비를 맞았다.


여행자에게 있어 가장 최악의 날씨라면 이렇듯 비 내리는 날씨일 테다.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여행자에게 있어 비는 하나의 장애물이자 극복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파리는 비가 오는 날씨에도 가볼 곳, 구경할 거리가 많은 도시였다. 아니, 오히려 흐린 날씨는 파리의 수 많은 미술관들을  더욱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주곤 한다. 비 내리는 날씨를 피해 미술관으로 들어가 시간을 보내도 아깝지 않은 도시라니!(심지어 그게 루브르, 오르세, 오랑주리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들이다). 그렇게 이른 아침 숙소를 나선 나는 곧바로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했다.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은 파리 6구의 센느 강변에 위치한 미술관으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의 미술작품들을 주로 전시하고 있으며 주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원래 오르세 미술관의 건물은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 개최를 맞이해 건설한 철도역이었으나, 1939년에 철도역 영업을 중단한 이후 용도를 두고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고 한다. 다양한 논의 끝에 철도역이었던 오르세 미술관은 19세기를 중심으로 하는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고, 1986년에 개관한 이 미술관은 현재 파리를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정착하게 됐다.

오르세 미술관은 이 당시 촬영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찾아보니 2015년 3월, 내가 방문하고 두 달 뒤 사진 촬영이 허가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림을 사진으로 담아가고 싶어 부지런히, 그리고 몰래 그림 앞에서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이렇듯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을 소유하고 붙들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그림을 사진을 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사진기로 담은 그림은 결국 내가 본 그림 그 자체가 아닌 '그림을 찍은 사진'이 되어버린다. 내가 두 눈으로 봤던 존재와는 다른 양식의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그림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대가들의 붓터치와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은 아무리 내가 사진으로 찍어 담아온들 재현해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사진을 찍으려 그림 앞에서 서있다 보면 다른 관람객들을 방해할 수도 있었다. 그건 결국 내 감상에 대한 방해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모든 그림들 앞에서 사진기를 들지 않았다.


아래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들을 조금이나마 감상해보자. 그림의 출처는 전부 오르세 미술관 공식 홈페이지(http://www.musee-orsay.fr/) 혹은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museedorsay/)에서 가져온 것이다.

Claude Monet, Coquelicots          Paris, musée d'Orsay
모네의 양산을 든 여인의 실제 전시된 모습       출처 : 오르세 미술관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Vincent van Gogh, La nuit étoilée       Paris, musée d'Orsay
고흐의 자화상을 보고 있는 사람들      출처 : 오르세 미술관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이 엄청난 그림들을 실제로 보고 있으니 정신이 멍해졌다. 오르세는 새삼 그들의 위대함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실제로 그림에 아무런 흥미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일지라도 이 곳에 온다면 고흐와 모네, 밀레 같은 사람들을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으리라. 예술이라면 으레 어렵고 난해한 것으로 생각하던 나였지만(여전히 미술사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지식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화들을 직접 보며 나만의 생각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무척 행복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그림은 다를 수 있지만 오르세에서 적어도 하나의 그림은 건져갈 수 있지 않을까. 그만큼 오르세에는 수 많은 대가들의 미술품이 만찬장의 음식처럼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우리가 관객으로서 어떤 화가의 그림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어떤 특정한 장면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특징을 그 화가가 골라냈다고 판단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화가가 어떤 장소를 규정할 만한 특징을 매우 예리하게 선별해냈다면, 우리는 그 풍경을 여행할 때 그 위대한 화가가 그곳에서 본 것을 생각하게 되기 마련이다. -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오르세에서 정신없이 미술품을 구경하고 나오니 오후 두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회색빛으로 가득하던 하늘은 어느덧 구름이 걷히고  푸른빛을 보여주고 있었다. 파란 하늘에 간간이 구름들이 보이긴 했으나 산책하기에 나쁘지 않은 날씨였다. 오르세 미술관 바로 옆에 센느강이 있었기에 나는 다음 목적지인 오랑주리 미술관까지 천천히 걸으며 센느 강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센느 강변을 걷고 있으니 서울의 한강이 엄청난 폭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러나 한강은 도심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그 크기 때문인지 쉽게 다가가기 힘든 느낌이 들곤 한다. 한강처럼 넓고 깊은 물 앞에 서 있으면 자연스레 내 존재가 하염없이 작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건 내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했는데, 언젠가 새벽에 술에 잔뜩 취해 서강대교를 건너고 있을 때 불 빛 하나 없는 검은 한강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은 하늘과의 경계가 모호해져버린 물은 내가 감히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고 마치 나를  집어삼킬 듯이 보였다. 그때 나는 물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그건, 말 그대로 심연(深淵)이었다.


그에 비해 유럽의 강은 대체로 아담했다. 그래서 더 인간적이고, 정감이 갔다. 몇 번 보지도 않은 강에 정감 간다는 표현을 써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한강이 웅장하고 거대한 느낌이었다면 아담한 센느강은 그에 비해 훨씬 다가가기 쉽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건 자연의 경이로움과도 맞닿아있었다. 자연은 때로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웅장함을 보여주며 두려움을 안겨주지만 세상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포근함과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그건 한낱 인간이 가늠할 수 없는 자연의 다양한 모습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센느강을 산책하던 나는 짐을 정리하기 위해 잠시 가방을 열었다. 그때 어디선가 집시 무리가 달려와서 사인판을 들이밀며 사인을 해달라고 가방을 가렸다. 내 가방으로 손이 들어가는 광경을 보는 순간, 나는 영어와 한국어, 그리고 짧은 불어로 온갖 욕을 그들에게 쏟아부으며 그들을 밀쳐냈다. 그들 역시 소리를 질러댔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그들에게 영어로 '꺼져'라고 소리치곤 다시 걸어갔다. 아찔하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웠다.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고 빨리 알아챘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앞으로도 이렇게 당할지 모르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찔했던 소매치기 경험을 겪은 나는 더 이상 센느강의 느긋한 산책을 즐기기에 적합하지 않은 감정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잰걸음으로 센느 강변을 걸어가던 중, 이번엔 다른 의미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런던에서 만나 함께 버킹엄궁 근위병 교대식을 봤던 친구를 마주친 것이었다. 우리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이 믿지 못할 우연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침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던 나는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냈고, 그 역시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냐며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이렇듯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보며 여행을 상상하는 것과 실제 여행을 떠나는 것은 다르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결국 자신의 경험과 섬세한 감정의 결을 나만의 이야기로 써 내려가는 과정이다. 타인의 여행기를 읽는다 한들 집시를 만나 느낀 당혹감과 두려움, 여행지에서 우연하게 두 번이나 마주치는 사람에 대한 반가움과 놀라움이라는 감정의 섬세한 결까지 느낄 수는 없다. 여행은 결국 우리의 경험이라는 양식에 가장 강력하게 지배를 받는 영역인 셈이다.


이렇게 센느 강변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뒤로한 채 나는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비친 햇살 때문이었는지 많은 파리 시민들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정원에서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다. 1월의 튈르리는 기대했던  것보다는 을씨년스러웠으나 또 생각했던  것보다는 활기찼다. 군데군데 있는 잔디는 겨울임에도 녹색빛으로 자라나 있었고(물론 약간 힘없어 보이는 녹색이긴 했다), 겨울 햇살은 차가웠지만 튈르리 정원의 색채를 온전히 비추고 있었다.

세계의 여러 도시 중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고유 명사화해서 부르는 곳은 몇 군데 없다.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뉴요커(New Yorker)라 부르거나 파리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파리지앵(Parisien)이라 부르지만(엄밀히 파리 여자들은 Parisienne라 불려야 한다) 런던 사람들을 런더너라고 하지도, 서울에 사는 사람들을 서울러(...)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신기하게도 파리에 사는 사람들을 흔히 파리지앵이라고 부르곤 한다.


파리지앵이라는 이국적인(그러면서 어쩐지 귀여운 구석이 있는) 단어를 입안에서 굴리고 있다 보면 파리지앵이 주는 느낌과 파리 사람들의 분위기 사이에는 묘한 접점이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꿈꾸는 듯 거니는 사람들, 어딘가 정신이 팔린 듯 보이지만 여유를 즐길 줄 알며 예술적인('예술적인'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 파리지앵이라는 단어에는 파리 사람들의 도시에 대한 애착과 이방인들의 질투가 묻어난다. 그래서일까? 파리에 오면 우리는 자연스레 파리지앵을 꿈꾼다. 조금은 게으름을 부려보고도 싶고, 날씨가 좋으면 그대로 벤치에 앉아서 한가로이 햇볕이나 쐬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싶어지는, 파리는 그런 도시다. 오전에 파리지앵들을 따라 비 오는 날씨에도 우산을 접고 돌아다녔다면, 비 그친 오후엔 그들을 따라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앉아 흘러가는 시간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러나 추운 겨울 날씨 때문에 얼마 앉아있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옆에 어느 외국인 커플이 보였다. 그들은 프랑스인일 수도 있었고 아닐 수도 있었다(서양사람들을 보고선 어느 나라 사람인지 구분하는 일은 아직까지 참 어려운 일이다). 서로를 응시한 채 앉아있는 그들의 모습에 호기심이 생긴 나는 옆으로 다가가 무얼 하고 있는지 쳐다보았다. 연인들은 의자에 앉아 서로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한 채 하얀 스케치북에 선을 그려 넣고 있었다. 이따금 눈을 마주칠 때면 서로를 향해 수줍으면서도 싱그런 미소를 띠기도 했다.

사람들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이들처럼 삶에 예술의 무게를 더하는 순간 그 삶은 한층 풍요로워진다. 그리고 그 예술이 사랑과 만났을 때 그 의미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그들을 보고 판단한 일은 어쩌면 오만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건, 그때 이 연인들 사이에서는 크진 않지만 분명하고 또렷하게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빛은 명민한 감각을 가진 주위 몇 사람들에 의해 포착되고 있었고, 그렇게 파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조금씩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파리의 첫날 무너뜨렸던 낭만이라는 이름의 탑이 그렇게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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