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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Mar 14. 2016

가까이해야 보이는 것들

(2015.01.04 in Paris, France) - 1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지금까지 보냈던 파리의 일상이 그랬듯 이 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길 잃은 발은 몽마르트로 향했다. '그래도 파리에 왔으니 몽마르트 언덕은 한번 올라줘야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때까진 알지 못했다. 예술가들이 모여 살기 시작해 예술적인 영감이 넘쳐흐르게 되었다는 몽마르트 언덕이 역설적이게도 파리에서 가장 떠올리기 싫은 곳 1순위가 될 줄은.

몽마르트에 오르기 전, 근처에 있다는 물랑루즈를 들렀다. 물랑루즈까지 가는 길은 조용했다. 파리 중심지와는 확연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몽마르트와 물랑루즈가 위치한 18구가 치안이 안 좋기로 유명한 지역이라는 얘기를 들어서였는지,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의뭉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물랑루즈까지 가는 길엔 성인용품점과 퇴폐업소(?)로 보이는 가게들이 여럿 보였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몽마르트는 낭만과 예술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그 말은 결국 이 지역이 낙후된 곳이라는 사실을 반증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낙후되어 집값이 싸고, 생활하기에 큰 돈이 들어가지 않는 곳. 낭만과 예술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살면서 가장 구차해질 수밖에 없어지는 지점인 돈, 그리고 생존과 맞닿아 있었다. 어쩌면 낭만과 예술의 진짜 얼굴은 돈과 생존이라는 극히 현실적인 지점이 밀접하게 맞닿는 그곳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건 자본주의 사회의 필연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몽마르트 언덕에 다다르자, 저 멀리 사크레쾨르 성당이 보였다. 성당은 파리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고딕 양식이 아닌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혼합된 형태라고 했다. 그러나 역시나 건축에 조예가 깊지 않고선 이런 설명은 쉽사리 와 닿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했던 건, 파리 시내와 유럽 어디서도 흔히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이국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몽마르트 언덕 아래서 성당을 보고 있으니 파리가 아닌 중동이나, 기타 다른 지역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둥근 모양의 돔은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중동 어딘가의 이슬람 사원과 닮아 있었다.


몽마르트 언덕은 파리 시내에서도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언덕이다. 이 곳은 파리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에 수많은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나 역시 파리 시내의 전경을 한눈에 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고도제한이 무척 심한 파리 시내에서는 고층건물을 찾아보기 힘들었기에, 몽마르트와 같이 조금만 고도가 높은 곳에 올라도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언덕 바로 밑에 도착했을 때, 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난관을 만났다. 몽마르트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무리를 지어 관광객들에게 금품을 갈취하는 흑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팔찌라고 하면서 관광객의 손목에 실을 묶은 뒤, 그 대가로 돈을 요구했다. 이렇게 뻔뻔할 수가! 나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필요 없다고(영어로)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들의 눈엔 핏발이 잔뜩 서있었다. 섬뜩한 눈이었다. 아마 그들 눈에 비친 나는 작고 겁에 질린 동양 남자(=좋은 먹잇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테다. 그런 내가 아무리 단호하게 말한다 한들, 이미 목소리에 서려있는 공포를 그들이 눈치 못 챘을 리가 없었다. 세 번의 시도와 두 번의 후퇴 끝에 나는 도망치듯 몽마르트 언덕을 오를 수 있었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파리에서 두 번째로 겪은 당황스러운 사건 탓에, 몽마르트에서 바라본 파리의 풍경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긴장이 풀리자 피로가 몰려왔고, 놀란 심장은 100m를 전력으로 주파한 사람처럼 날뛰고 있었다. 전망 좋은 곳에 저마다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는 수많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나는 사크레쾨르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안이라면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성당 안은 조용했다. 저절로 엄숙해지는 성당 안의 분위기 앞에서 관광객들도 조용해졌다. 어두운 성당 내부의 차분한 분위기 속에 있으니 놀랐던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는 듯했다. 독특하게 생긴 외형과는 달리 사크레쾨르 성당의 내부는 유럽의 여느 성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기도하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기도했다.


성당 안에서 마음을 가라앉힌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들어가기 전엔 미처 살펴보지 못했던 성당의 외관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봤다.

성당 입구에는 잔다르크의 동상이 있었다. 프랑스의 국민적인 영웅이자, 가톨릭의 성자인 그녀의 동상은 프랑스 곳곳에서 접할 수 있었다. 외관은 백 년을 훌쩍 넘긴 성당들에 비하면 깔끔한 편이었지만(유럽에는 몇 백 년씩 된 성당들도 즐비했으니), 역시나 수십 년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멀리서 봤을 땐 알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성당을 구경하고 몽마르트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같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한국인 고등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고3이었던 그는 여동생과 함께 여행 중이었는데, 오늘 하루 나와 함께 다닐 수 없겠냐고 물어왔다. 몽마르트 언덕을 오르기 위해 치른 처절한 사투(?)와 언덕을 올라와 마주친 개념 없는 서양의 10대들에게 당한 인종차별로 마음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나는, 오랜만에 파리에서 동행과 함께 다녀보기로 결심했다.


숙소에서 오는 그들을 기다리기로 결정한 뒤, 사크레쾨르 성당으로 다시 들어간 나는 의자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긴장이 풀리면서 몰려온 피로감이었다. 얼마쯤 눈을 감았다 떴을 때, 핸드폰 액정이 켜졌다. 동행하기로 한 둘이 몽마르트 언덕에 곧 도착한다는 연락이었다. 연락을 받은 나는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성당 밖으로 나왔다. 그때, 저 멀리서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한 남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몽마르트 언덕의 유명인사였다.

그는 기니 출신의 이야 트라오레라는 풋볼 프리스타일러였다. 격렬한 몸동작을 선보이면서도 공이 몸에 붙은 듯 떨어지지 않는 모습은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접착제로 붙였다고 해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한편으론 '그래 저렇게 돈을 벌어야지 사람들 금품을 갈취하면 쓰나, 같은 아프리카 출신이면서'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가 파리 시내를 배경으로 가로등 하나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선보이는 각종 묘기는 차라리 예술에 가까웠다. 눈 앞에 넓게 펼쳐진 파리 시내는 그의 묘기와 어우러져 훌륭한 배경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의 묘기를 구경하는 동안 일행이 도착했고, 우리는 넋 놓고 그의 묘기를 함께 지켜봤다. 박수가 절로 나오는 거리예술이었다. 그렇게 몽마르트를 내려가려던 찰나,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회색의 구름이 조금씩 걷히는 것이 보였다. 언덕은 금세 눈부신 햇살로 가득 찼다. 우중충하던 몽마르트 언덕에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자, 그 전까지는 음울하고 생기 없어 보였던 언덕이 비로소 예술과 낭만이 넘실거리는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여행이란, 사람의 온갖 행위 중에 날씨의 영향을 가장 적나라하게 받는 행동양식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하늘은 여전히 흐렸고, 하얀 회색의 구름 뒤에 숨어서 자신의 파란 속살을 보여줄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나마 몽마르트 언덕에서 조금이나마 햇살을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해야 했다. 몇 장의 사진을 찍은 뒤 우리는 언덕을 내려왔다. 올라올 때와는 달리 사크레쾨르 성당의 뒤편으로 언덕을 내려가기로 했다.


성당 뒤편으로 내려오는 길엔 네모난 모양의 창문들이 빼곡하게 늘어서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이 곳이 주거밀집지 역임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놀라운 점은 질서 정연하게 줄 서있는 예의 그 창문과 주택들이 몽마르트에서 바라본 파리 시내의 전경보다 더 아름다웠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파리는 가까이 가서 직접 보고 온 몸으로 느껴야 알 수 있는 도시라는 사실을. 어떤 도시든 높은 곳에서 도시의 전경을 내려다봤을 때 아름답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 그건 실제로 아름다워서 라기보단 우리가 흔하게 보지 못하는 시선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한 아름다움이다. 그 시선은 하늘을 나는 새, 혹은 신을 향했던 인류의 근원적인 동경과 닮아있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버드 아이 뷰(Bird eye view)라는 촬영 기법은 신 혹은 절대자의 시선을 대변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곤 한다.


그러나 파리는 높은 곳에서 바라본 도시의 모습보단 골목 구석구석에서 그 도시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봐야 아름다운 경우가 많았다. 파리는 골목길에서 마주하는 우연한 아름다움에 취하기 쉬운 도시였다. 골목길의 풍경에 발걸음을 멈춰 서고 얕은 탄성을 내지르는 곳, 그런 곳이 파리였다.


우리는 골목길을 걸으며 내내 탄성을 질렀다. 몽마르트의 풍경보다 오히려 더 멋있다는 대화를 연신 주고받으며,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노트르담 성당 근처의 생 제르맹 데 프레 거리로 향했다. 오전의 악몽 같았던 몽마르트에서의 기억은 조금 옅어졌고, 함께 하는 동행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외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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