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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May 07. 2016

제주의 해무(海霧)

2016.05.05-06, 제주 기록

며칠 쉴 생각으로 제주에 왔습니다. 어제 밤부터 계속 비가 내려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오늘은 날이 맑네요.


아무 계획 없이 온 제주라, 제주에 사는 지인을 따라 그저 걸었습니다. 제주는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걷기만 해도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하지만 해가 쨍하게 내리쬐는가 싶더니 금세 해무가 몰려오는 제주의 섬 날씨는 변화무쌍했습니다. 서울에서만 살아온 제게 제주의 섬 날씨는 익숙지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제주의 해무를 보며, 뻔하지만 김승옥의 무진기행에 나오는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너무도 유명해서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구절이지요.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비잉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 김승옥, 무진기행


무진기행만큼 안개를 잘 묘사한 글이 또 있을까요. 제주의 해무는 저도 모르는 사이 제 주변을 포위해버리곤 했습니다. 무서울 만큼 기척 없는 하나의 생물과도 같이 느껴졌습니다. 정말 실력 좋은 스파이나, 저격수 같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습니다.


그러나 해무는 평범할 수도 있는 바다 풍경을 색다르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사진으로는 차마 담아낼 수 없던 그 풍경은,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아 몇 번씩이나 뒤를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의 끝이 바다라면, 아마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 풍경이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해가 바다에 가까워오기 시작하면서, 바다는 태양을 닮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바다는 물이 아닌 어떤 금속성의 액체 같이 느껴졌습니다. 바로 이럴 때, 뻔하디 뻔하지만 황금빛 노을이라는 풍경을 쓰는구나 싶었습니다. 그야말로 Gold Coast였습니다.

가볍게 쉬면서 재충전하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습니다. 보통 혼자 여행하는 제게, 이 곳에서 지금 같이 만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여행의 묘미는 혼자만의 시간뿐 아니라 나와 다른 타인을 만나는 또 다른 방법이기도 하다는 걸 새삼스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여행기가 자꾸 차일피일 밀리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무겁지만, 곧 다시 글 연재를 부지런히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즐거운 연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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