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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Apr 16. 2016

똑바로 마주할 용기

2016.04.16의 기록

2년이 지났습니다.


2014년 4월 16일의 아침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인턴으로 일하고 있던 그때, 컴퓨터 바탕화면의 오른쪽 아래에 작은 알림창이 떠올랐습니다.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이 전남 진도군 인근 바다에서 침몰"


이윽고 모두 구조됐다는 소식이 들렸고, 큰일날뻔 했다는 생각을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소식은 오보였습니다. 아직도 구조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배 안에 있다는 기사가 속속들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저는 컴퓨터에 앉아서 그 믿을 수 없는 사건의 기사들을 계속 새로고침을 하며 지켜봤습니다. 그래도 곧 구조되겠지-하는 희망을 갖고서.


그러나 이후의 일은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탑승자 476명 중 295명이 사망했고, 9명은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헸습니다. 사람들은 절망했고, 분노했고, 슬퍼했습니다. 더 절망스러운 사실은, 그 배 안에는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들이 325명이나 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에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저는 세월호 사건을 똑바로 마주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비참하고, 참담한 심정으로 바라만 보아야 하는 그 일이 제게는 큰 버거움이었습니다. 제가 저정도였으니, 가족을 잃은 이들은 오죽했을까요. 참 비겁했습니다.


1년째 되던 날엔 그렇지 않았는데, 2년이 지나버린 오늘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2년이 지나서야 이렇게 마주하는 것이, 이미 너무 늦은건 아닌지 죄스럽기만 합니다.


회사가 광화문에 있습니다. 그래서 출퇴근을 하는 날이면 광화문 광장에 놓인 세월호 추모 공간을 지나치곤 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의식하지 않으며 지나쳐왔던 여러 날들이 새삼 부끄럽기만 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 목소리도 내지 않았던 제 자신의 부끄럽고 비겁한 모습을 마주하는 것만 같아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사건이 있은지 한 달이 지난 어느날, 여느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하던 길에 노란색 리본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옆을 바쁘게 지나가던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그날따라 참 복잡한 감정들이 마음속을 헤집어놓았습니다. 그렇게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세월호와 관련된 유일한 사진이었죠.


리본 옆을 바쁘게 지나치던 사람들의 모습이 어쩐지 슬프기도,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이 노란 리본들을 매일아침 보면서 저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왜 우리는 무관심하게 지나쳐가기만 할까, 그렇다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데, 이렇게 사는게 사는건가.


여전히 죄스럽기만 합니다. 똑바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조금은 생겨난 듯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늦어버린 것 같아 다시 죄스럽습니다. 비겁한 내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목소리를 낼 수는 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그저 조용히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 만으로도 인생에 큰 짐을 안고 살아가는 일이겠지요. 하지만 가방에 리본을 달지 않았다고, 프로필 사진을 노란 리본으로 하지 않았다고, 잊은건 아닙니다. 그저 묵묵히 희생자들을 떠올리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조금이나마 노력하며 살 뿐입니다. 어쩌면 저처럼 그 사건을 마주하는 일이 고통스러워 똑바로 쳐다봐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일겁니다. 세상엔 고통스러워도 잊지 말아야 하는 무언가도 분명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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