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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Jan 27. 2017

'프라하'라는 이름의 모르핀

(2016.02.08 in Czech Republic, Prague)

여행지에서의 이동은 결국 선택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버스나 지하철도 좋고, 트램을 비롯한 낯선 이동수단 역시 여행지 특유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데에 도움이 되곤 한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가장 좋은 이동수단은 결국 두 발이다. 두 발은 이동수단들을 타면서는 보기 힘든 도시의 얼굴을 보는 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이다. 걸으면서 보는 도시의 얼굴은 우리가 버스 등 여타의 다른 이동수단을 타고 다닐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프라하에서의 짧은 2박 3일 동안 나는 오직 이 두 발에 의지해서 도시를 누비고 다녔다.


도시가 작은 탓도 있었지만 이는 내 소심함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탈 때면 소매치기를 당하는 상황부터 역을 잘못 내려 한참을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까지 온갖 일들을 상상하며 항상 걱정에 사로잡혔다. 이 모든 걱정들은 나를 걷게 만들었다.

페트르진 전망대에서 프라하성으로, 그리고 구시가지 지역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금방 걸어 내려올 수 있었다. 올라가는 길도 내려가는 길도 꽤나 높아서 힘들거라 생각했지만 좀 오래 걷는 듯할 때면 목적지에 도착했다. 프라하가 작은 도시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그날은 저녁 일곱 시에 시작하는 오페라를 예약해놨고, 그 전엔 해 질 녘에 카를교에서 바라보는 야경을 본 뒤 시계탑 위에서 야경을 볼 예정이었다. 촉박한 일정이었다. 나는 부지런히 시내로 걸어갔다. 시간은 네 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전날의 경험에 비춰보면 해는 약 다섯 시를 전후로 저물기 시작했기에, 그전에 카를교의 탑에 올라가 해가 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카를교 탑에 오르기엔 아직 시간이 좀 있었던 나는 그 근처의 구시가지를 걸어 다니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유명하다는 얘기만 듣고 한 번도 사 먹어보지 않았던 뜨르들로라는 이름의 빵을 하나 사서 길을 걷는 기분은 꽤 나쁘지 않았다. 아침부터 쉴 새 없이 걸어 다녀 발바닥이 좀 아프긴 했지만 나는 시간이 아까운 여행자였으므로, 아픔조차 사치로 여겨졌다.

구시가지를 걷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누가 봐도 관광객으로 구성되어있는 듯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처럼 뜨르들로를 들고 환한 미소를 띤 채 거리를 걷거나,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리저리 굴리며 중세풍의 건물을 구경했고, 손바닥만한 핸드폰이나 비싸 보이는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나 역시 그중의 하나였다. 도시는 그들로 인해 활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그건 단순히 많은 인파가 몰린 곳의 활기가 아니었다. 그곳엔 여행자들이 내뿜어내는 특유의 감정들로 가득했다. 설렘이었다.


만약 지인 중의 누군가 프라하를 여행한다면, 잠깐쯤은 거리가 아닌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라고 말할 것이다. 이제와서야 프라하만큼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가득한 도시도 드물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없이 사람 구경을 하고 있으니, 어느덧 해 질 녘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날 화약탑에서 바라본 야경에 이어 카를교 탑에서 프라하성과 카를교의 해 질 녘 야경을 보러 갈 시간이었다. 정신없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탑에 올라갔다. 삼각대를 세우고 야경을 기다렸지만, 전날의 화약탑만큼 춥진 않았다. 상대적으로 낮은 탑의 높이 덕분이었다.

사람들은 왜 야경에 열광할까.


가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의문을 가지게 되는 때가 있다. 엉뚱하게도 야경 사진을 찍으러 올라간 곳에서 나는 갑자기 사람들은 왜 야경을 보려고 하는지 궁금해졌다.


사실 생각해보면 야경이란 인공적으로 빛나는 조명들의 반짝임에 지나지 않는 풍경이다. 게다가 카메라로 찍는 야경은 아름답지만, 가끔 사진은 현실을 왜곡시키게 마련이기에 카메라로 찍는 야경 사진은 눈으로 보는 실제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이 여행에서 돌아온 여름, 강원도에서 쏟아질듯한 별이 가득 박혀있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나서야 내릴 수 있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어쩌면,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어버린 밤하늘을 그리워하는 건 아닐까-하고 말이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닮은 가로등을 보며, 유전자 깊숙한 곳에 자리한 별에 대한 그리움을 그렇게나마 달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혼자 멋대로 간지러운 결론을 내려버렸다.


이러나저러나 해 질 녘의 신비로운 푸른빛을 배경으로 펼쳐지던 카를교와 프라하성의 야경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어 피로해진 몸이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카를교의 야경을 좀 더 느긋이 감상해도 좋았을 텐데, 그 당시엔 너무 보고 싶은 것들도, 찍고 싶은 것들도 많았다. 해 질 녘의 푸른빛이 사그라들기 전에 시계탑에 올라가서 야경을 한번 더 담아보고 싶었던 나는 탑을 내려와 뛰다시피 해서 시계탑으로 향했다.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걷는 내 등 뒤로 신비로운 푸른빛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결국 엘리베이터를 타고 시계탑의 꼭대기에 올라갔을 땐 이미 칠흑 같은 어둠이 푸른빛을 다 덮어버린 뒤였다. 빨리 오느라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고, 살짝 맺힌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어둠이 내린 프라하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참 힘든 하루였다고 생각했다.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켜고 돌아다닌 장소들을 되짚어보며 참 많이도 걸었다고 새삼스레 느꼈다.

오랜만의 유럽여행이라 그랬을까, 프라하에서 나는 부지런히도 걸어 다니며 많은 것들을 꾸역꾸역 내 눈에 집어넣으려 노력했다. 그때의 내게 프라하라는 이름은 마치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모르핀과도 같았다.


아무리 다리가 아파도 아무리 추워도, 프라하에서의 나는 마치 고통을 잊은 사람처럼 걸어 다녔다. 그건 그곳이 '프라하'였기 때문이었다. 괜히 더 많이 봐야 될 것만 같은 압박감과, 이쁜 것들을 찍어야 한다는 중압감과, 그럼에도 부족한 시간들은 내 감각을 마비시키고 도시를 누비게 만들었다. 이전의 여행들과는 사뭇 다른, 소위 '빡센'여행의 방식이었다.

그렇게 시계탑에서 내려오니 긴장이 풀린 다리가 조금씩 뻐근해져 오기 시작했다. 나는 할 수 있는 최대한 천천히 걸어 공연이 있는 오페라 극장으로 향했다. 공연을 제대로 볼 수 있을지 걱정이 슬슬 밀려왔다.


극장 실내는 마치 호텔 같이 화려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발코니로 향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넓게 펼쳐진 극장이 눈 앞에 놓여있었다. 샹들리에를 비롯한 조명과 실내 장식들은 비현실적이게 반짝이고 있었다. 처음 들어온 유럽의 오페라 극장은 마치 파리넬리 같은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 들어온 기분이 들게 했다.

앉아서 좀 쉬고 있으니 공연이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쌓인 피로 탓에 공연 중간에 살짝 잠이 들긴 했지만, 소프라노가 부르던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아리아는 여전히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극장 안에 울려 퍼지던 꾀꼬리 같은 소프라노의 소리는 CD가 아닌 라이브 음악이 주는 생생함이 이런 것이구나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야경이 유명한 밤의 도시 프라하를 하루 종일 누비고 다니다가 듣는 밤의 여왕 아리아라니, 괜히 감격스런 기분이 들어 비짓 비짓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정신없었던 프라하에서의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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