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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Sep 25. 2016

파리의 골목에 새겨진 이야기

(2015.01.05 in Paris, France) - 2

* 항상 그렇듯이 지난 글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https://brunch.co.kr/@framingtheworld/58

마레지구에서 일행들과 헤어진 나는 직선으로 길게 뻗은 거리를 따라 걸었다. 목적지는 바토무슈 선착장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해가 지고 난 뒤 가로등 불빛으로 반짝이던 센느강을, 유람선에 탄 채로 보고 싶어서였다. 유럽의 겨울 해는 여섯 시를 전후로 자취를 감췄기 때문에, 천천히 걸어서 가다 보면 해가 저무는 시간에 맞춰 배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해가 질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걷는 일뿐이었다. 점점 더 뻐근해지는 발목을 이끌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거리를 걸어내려 갔다. 바스티유 광장을 지나니 Port de l'Arsenal(아스날 운하)라는 곳이 나왔다.

아스날 운하 근처는 북적거리는 파리 중심가에 비하면 한결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였다. 마침 퇴근시간이었는지, 양복을 입은 직장인들이 하나 둘 퇴근을 서두르고 있었다. 낯익은 풍경을 낯선 장소에서 바라보는 경험은 항상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어쩐지 파리의 직장인들은 1호선 지하철에서 흔히 마주하던 서울의 직장인들보다 멋스러워 보였지만, 그건 아마도 여행자라는 신분이 불러일으킨 일종의 환상이었으리라.

아스날 운하를 지나, 다리를 건너 파리 식물원에 도착했다. 겨울의 식물원은 한산했다. 가끔씩 집 앞 공원에 산책을 나온 듯한 노인들과, 하교하는 학생들만 내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겨울잠을 자는 나무의 앙상한 나뭇가지와 파리의 흐릿한 회색 날씨는 퍽 잘 어울렸다. 해리포터에 나올법한 학교 안의 신비로운 정원이 이런 느낌일까 하고 생각했다. 날씨 때문인지, 파리의 길거리는 유난히 을씨년스러웠다. 건조하고 쨍한 느낌의 우리나라 겨울과는 달리, 유럽의 겨울은 습도가 높았다. 그 때문이었을까, 걸으면 걸을수록 몸은 마치 습기를 머금은 나무토막처럼 축축하고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식물원에서 나와 판테온으로 가기 전에 한국인이라면 파리에서 한 번씩은 들른다는 몽쥬 약국을 잠시 들렀다. 몽쥬 약국은 묘한 지점에서 한국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이었다. 들어가는 순간 한국의 올리브영에 들어온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한국인이 많았다. 막상 가보니, 하고 많은 파리의 pharmacie 중에 왜 몽쥬 약국만 유명해졌는지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다른 곳 보다 훨씬 싼 곳도 아니었는데, 단순히 정리를 잘 해놓은 어떤 블로거의 입소문 때문이었을까.

몽쥬 약국을 나와 판테온으로 향하던 길에, 갑자기 마법처럼 자그마한 광장이 하나 나타났다. Place de la Contrescarpe라는 이름의 광장이었다. 광장에는 전구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갓 퇴근한 회사원들과 하교한 학생들로 작은 북적거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조용히 혼자 걷던 내 눈앞에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듯한 모습으로 나타난 광장에 서 있으니,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문득 오전까지 같이 다닌 일행이 생각났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그리워졌다. 지금쯤이면(시차를 고려하지 않은 오후 여섯 시의 해 질 녘이다) 아마 학교를 끝내고 저들처럼 신촌 어느 단골 술집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근사한 광장의 노천카페에서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시는 삶은 어떤 느낌일지, 잠시 동안 그들을 보며 상상했다. 거리는 50m도 채 되지 않는 곳에 있는 파리지앵들이 한국과 파리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잠시 동안 외로우면서도 달콤한 상상을 한 뒤, 다시 또 걸었다. 판테온으로 향하던 길의 가로등 불빛들은 유난히 노랗게 빛났다. 북적였던 광장에서 조금만 벗어나자 금세 인적이 드문 골목이 나왔다. 그 순간, 꿈과 현실은 경계가 모호하기만 했다.


파리의 골목길은 항상 그랬다. 북적이는 튈르리 광장에서 퐁피두 센터로 친구를 만나러 가던 길에 놓여있던 골목길엔 외로움이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새해를 맞은 화려한 에펠탑을 뒤로한 채 숙소로 향하던 골목길엔 새로 시작하는 1년을 향한 설렘과, 지난 1년을 보내는 아쉬움이 떠다녔다. 떠들썩한 관광지에서 조금만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가면 그곳에 새겨진 파리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고, 나 역시 그곳에서 이야기를 새겨 넣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새겨진 수많은 이야기들은 모이고 또 흩어지면서 '파리의 골목길'이라는 하나의 고유명사를 만들어냈다. 파리에서 나는 현실과 환상이 잘 분간되지 않는 순간들을 종종 맞닥뜨리곤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현실에 살면서도 꿈과 환상 속을 어지럽게 헤메이곤 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 성당 앞 계단을 마주친 일 역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나오자마자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성당의 계단이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에 파리에 온 적은 없었으니, 절대 와 본 적 없는 장소일 텐데 이 기시감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한참을 생각하다 깨달았다. 이 곳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촬영지 중 하나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 길은 약혼녀인 이네즈, 예비 장인 부부와 함께 파리로 여행을 온 남자다. 그는 1920년대를 동경하며 그 시절을 황금시대라 여기는 사람이다. 약혼녀와의 파리 여행이 시큰둥하기만 한 그는, 어느 날 밤 춤을 추러 가자는 그녀의 제안을 거절한 채 술에 취해 호텔로 걸어간다. 그러던 중 길을 잃고 어딘지 모를 계단에 앉아 쉬고 있는데 마침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그의 앞에는 그를 초대하는 오래된 차 한 대가 멈춰 선다. 이 오래된 푸조를 타고 그가 도착한 곳은 1920년대, 그가 동경해 마지않았던 그 시절의 파리였다.

아마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모두 주인공 길을 1920년대로 이끌었던 이 차와, 그가 차를 타던 성당 앞의 계단에 대한 기억이 선명할 테다. 놀랍게도 나 역시 영화의 주인공처럼 길을 잃고 무작정 걷던 중에 이 곳을 발견했다. 그 성당 앞에선, 온통 거리를 주황빛으로 물들이는 조명이 어우러져 파리의 거리가 한층 다르게 보였다. 어쩐지 저쪽에서 오래된 1920년대의 푸조가 나타나 나를 태우고 피츠제럴드와 달리, 피카소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줄 것만 같은 장소였다. 2015년을 살면서 1920년대를 떠올려도 절대 어색하지 않은 곳, 그런 마법 같은 순간이 펼쳐지는 곳이 바로 파리였다. '미드나잇 인 파리'를 만든 우디 앨런은 그런 파리의 속성을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런 우연과 비현실성은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2011

판테온은 당연하게도 늦은 시간이라 문이 닫혀있어 겉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판테온 근처는 소위 말하는 대학가여서, 늦은 시간 학업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 학생들이 거리에 가득했다. 길가엔 그들이 내뿜는 활기가 흘러넘쳤다. 나는 그들을 뒤로한 채 지하철을 타고 바토무슈 선착장이 있는 Pont de l'Alma(알마 다리)로 향했다.

선착장에 도착하자, 강 건너로 보이는 에펠탑의 꼭대기엔 안개가 짙게 서려있었다. 에펠탑이 뿜어내는 빛은 안개에 섞여 뿌옇게 퍼지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바토무슈 선착장에는 한눈에 봐도 한국인 관광객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먼 이국 땅에서 듣는 모국어는 안개에 싸여 희뿌옇게 빛나던 에펠탑만큼이나 낯설었다.


겨울이라 그랬는지 유람선을 타는 관광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단체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국인 무리와 드물게 보이는 외국인들 사이에 섞여 배에 올랐다. 배를 탄 적이 언제였는지 생각해보니,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배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유람선의 규모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컸다. 한낮의 센느강을 유유히 떠다니는 유람선 위에서 햇살을 맞으며 음식을 먹는 경험도 인상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커다랗게 그르렁 거리는 엔진 소리와 함께 배가 출발했다. 유람선은 생각보다 빨랐다. 선수에 서 있으면 강한 강바람에 머리가 헝클어지곤 했다. 그래도 경치를 구경하기엔 그만한 장소도 없어서, 2층에 자리를 잡아뒀던 나는 이내 배의 앞부분으로 내려왔다. 겨울바람은 차가웠고, 햇빛이 사라진 도시에는 형형색색의 조명들이 햇살의 빈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었다.

유람선엔 젊은 사람이 드물었다. 어느새 내 주변으로 가득 몰린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은 연신 탄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특히 내 옆에 서 있던 세 명의 아주머니들은 '너무 좋다'는 말을 1분에도 수 십 번씩 반복하고 있었다. 마냥 소녀 같은 그녀들의 감탄사에 웃음이 절로 나오다가, 무방비 상태에서 들어버린 한 아주머니의 말은 나를 한 없는 외로움으로 몰아넣었다.


"내가 또 언제 이런 데를 와 볼까. 아이 참, 예쁘네."


여행을 떠난다는 건 때론 역설적이게도 내가 사는 곳, 내 사람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광경을 보며 자연스레 평소엔 생각지도 않았던 가족을 떠올리고, 마음 애틋해지는 일. 어쩌면 너무 뻔해서 가장 자연스러운 그 과정들. 혼자 떠나는 여행이 외로울지라도 떠나야 하는 이유는, 그 외로움과 그리움 속에서 자연스럽게 가족의 소중함이 피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상 속의 우리는 대부분을 누군가와 함께 있기 때문에, 때론 멀리 떨어진 여행지에서 철저히 혼자가 되어 본 사람만이 가족의 소중함을 더 절실하게 느끼기도 한다.


그날 밤은, 센느강 위에서 마주한 저 문장 하나로 인해 온통 외로움이었다.

유람선에서 내린 나는 오전에 함께 다닌 일행들과의 저녁을 위해 샹젤리제 거리로 향했다. 개선문까지 길게 뻗은 대로에는 가로수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나무들에선 형형색색의 빛들이 비처럼 쏟아져내렸다. 밤의 파리는 화려했다. 그 화려함 앞에서 나는 외로웠다. 파리의 화려함은 오히려 사람을 외롭게 만들었다.


유난히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각나던 밤이었다. 점점 더 아파오는 발목과, 이렇게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에서 나는 결국 철저하게 혼자라는 사실들이,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샹젤리제 거리는 활기찼고, 차들과 사람으로 가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 저녁 샹젤리제에 대한 인상은 오직 '고독'이었다. 차도 사람도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것 같은 그곳에선 오로지 자그마한 전구들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감각은 오로지 빛으로만 자각됐다.

그리움과 외로움은 나만 느끼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일행들 역시 한국에 대한 향수로 젖어있었다. 우리는 그 향수를 달래고자 근처의 한식당을 찾았다. TV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 나왔던 한식당이라고 했다. 그날 저녁, 유람선 위에서 차가운 강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서 있었던 내게 한식은 따스한 위로였다.


가눌길 없던 내 외로움과 고독은 그렇게 치유됐다. 위로는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았다. 따뜻한 국물과, 정성이 담긴 반찬들. 복잡하고 구원받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순간일수록 위로의 방법은 가장 단순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때로 가장 단순한 것에서 위로받는다는 사실을 그날 밤 깨달았다. 단순한 것들은, 단순하기 때문에 가장 사람에게 쉽게 가 닿을 수 있다. 그날 밤, 뜨끈하게 식도를 타고 내려가던 따스한 계란탕과 순두부찌개는 위로의 다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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