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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May 26. 2016

낯선 마음

(2015.01.05 in Paris, France) - 1

여행자의 마음은 뜨거운 물에 너무 삶아서 풀어져버린 채소처럼 쉽게 흐물거리고 연약해진다. 여행을 시작하며 가졌던 단단한 마음을 여행의 마지막까지 가져가기란 쉽지 않다. 그건 우리의 의지나 마음의 문제라기보단, 여행이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마주하는 새로운 장소와 낯선 환경은, 우리를 끊임없이 당황하게 만들곤 한다.


그래서 낯선 환경과 장소가 주는 긴장감과 설렘을 여행의 매력이라고 말하는 건, 어쩌면 다 끝난 여행을 뒤늦게 돌아볼 때라야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행지에서 속수무책으로 다가오는 낯선 상황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갖기란 쉽지 않다.


파리에서의 다섯째 날은 특히 별스러운 일들이 많은 날이었다.


그날 아침 역시 여행지에서의 긴장감 탓이었는지 알람 없이도 일찍 잠에서 깼다. 침대에서 내려온 나는 씻을 준비를 하기 위해 캐리어를 묶어둔 자물쇠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그때, 손 끝으로 평소와는 다른 촉감이 전해졌다. 열쇠는 자물쇠 안에서 허망하게 헛돌고 있었다. 자물쇠가 고장 난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던 나는 일단 같은 방 사람들이 모두 깨서 저마다의 하루를 시작할 때까지 기다렸다. 기다리는 중간중간 자물쇠에 힘을 주어 구부려도 보았지만 자물쇠는 부서지지 않았다. 호스텔에 절단기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내 머릿속은 오로지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하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이미 파리에서의 하루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결국, 나는 숙련된 요리사가 닭을 부위별로 능숙하게 해체하듯 캐리어를 해체해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선 캐리어의 나사를 풀어야 했다. 하지만 '혹시 사용할지도 모르니 드라이버를 챙겨야지'하는 여행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나 역시 그중의 하나였다. 결국 나는 궁여지책으로 가져온 손톱깎이를 드라이버처럼 사용해 캐리어 내부의 나사를 하나하나 돌려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사를 다 풀어 해체했음에도 캐리어는 자물쇠와 분리되지 않았고, 나는 눈물을 머금고 캐리어의 중간 부분을 절단하기 시작했다. 라이터로 손톱깎이의 칼 부분을 뜨겁게 달군 뒤, 플라스틱을 조금씩 녹이며 잘라나가기 시작했다. 방안에는 플라스틱이 타며 내는 냄새로 진동했다. 가끔 지나가던 외국인들이 저 동양인 남자애가 도대체 뭔 짓을 하는 거지?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고, 한겨울이었음에도 내 얼굴에선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캐리어와의 사투를 벌이고 나니, 시계는 벌써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엉망이 되어버린 캐리어의 상태를 보며 나는 그저 허탈하게 웃을 뿐이었다. 심상치 않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문을 열어 방 안에 진동하는 탄내를 빼낸 뒤, 그제야 나갈 채비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파리는 여전히 회색이었다. 나는 예의 그 회색빛 거리 속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파리 시내를 오며 가며 무수히 지나친 루브르 박물관을 둘러볼 계획이었다.

루브르 하면 으레 생각나는 작품들이 있다. 사모트라케의 니케라든지, 다 빈치의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같은 시대를 초월한 예술품들. 그러나 이 작품들을 둘러보고 난 뒤 내게 남은 건 모나리자의 실제 크기가 얼마나 작았는지, 밀로의 비너스가 어떻게 아름다웠는지 등의 희미한 인상들 뿐이었다. 이 수많은 대가들의 작품보다 오히려 내 마음을 잡아끈 건, 왜 파리가 예술의 도시로 불리는지에 대한 궁금증의 해답이 될 법한 장면들이었다.


우리는 흔히 예술을 어렵고 고상한 것으로 여기는 실수를 범한다. 그건 우리가 학창 시절부터 배워왔던 예술이 미켈란젤로나 다 빈치 같은 사람이나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적어도 내겐 그랬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면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내게 예술은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지도 않았고, 가깝지도 않았다. 예술은 저 너머의 이상 세계에 존재하는 무엇이었다.


그러나 루브르에서 본 예술은, 방문객들의 옆에 친근하게 서 있었다. 대가의 작품 앞에서 그림을 모사하고 있는 화가 지망생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선생님께 설명을 듣는 아이들. 그리고 그 사이로 그림들을 감상하는 관람객들. 루브르는 내가 지금까지 알고 지냈던 미술관이나 박물관처럼 고고하게 고개를 들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지 않았다. 그곳에서 예술은 생활이었고 일상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 마음을 잡아끈 장면은 헤드폰을 낀 채 세심한 손놀림으로 그림을 그리던 노년의 여성이었다. 순백의 흰머리를 가진 그녀에게 마음이 빼앗긴 채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한참을 쳐다보는 동안, 그녀는 입술을 살짝 다문 채 오로지 캔버스와 붓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브론치노의 그림과 자신의 붓 끝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부드럽고 강렬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눈빛이었다. 그 순간 그곳엔 오직 그녀와 그림만이 존재하고 있는 듯했다. 내 부족한 표현력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인 장면이었다. 한 편의 이야기 같은 장면이었고, 예술의 얼굴이었다.

이렇게 루브르는 거대한 규모의 건물 곳곳에 예술의 얼굴을 숨겨놓고 있었다. 루브르에서 가장 큰 회화라는 베로네제의 <가나의 혼인 잔치> 앞에는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큐레이터에게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아이들의 눈빛은 맑고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다. 아이들은 훗날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바로 뒤에서 미소를 띤 채 박제되어있는 모나리자보다 나는 이 광경에 더 마음을 빼앗겼다. 생은 예술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었다. 나는 이 아이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수많은 예술품들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 불량한 관람객이었음에도 루브르를 둘러보는 데에는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이 소비되었다. 아쉽지는 않았지만 왠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불성실한 관람객이 된 느낌이 들었다. 분명 루브르는 이렇게 성의 없게 관람할 곳은 아니었다. 모든 작품들을 꼼꼼하게 살펴보려면 몇 시간이 아니라 며칠이 걸린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언젠가 다시 온다면, 그땐 좀 더 여유를 갖고 천천히 봐도 좋을 것 같았다. 루브르는 인류 역사의 모든 것들이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었다.

그렇게 저마다의 관람을 끝내고 루브르의 피라미드 앞에서 만난 같은 숙소의 동행들과(이들은 내 캐리어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먼저 루브르를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다음 행선지인 마레지구로 향했다.


파리 3구와 4구 사이의 메트로 1호선 Saint Paul역 근처에 위치한 마레지구는, 파리의 소호(soho)라 불리며 (파리의)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지역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물을 사기 위해 많이 찾는 MERCI(메르시)라는 이름의 가게도 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메르시는 우리나라의 편집샵과 같은 느낌이었는데, 독특한 디자인과 감성의 상품들이 많이 있었다. 마레 지구의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가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침부터 캐리어를 다 뜯어내는 난리법석을 피워서였는지, 메르시를 구경한 뒤 내 체력은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동행들과 나는 마레 지구의 적당한 식당을 찾기 위해 가게를 나왔다. 그때, 갑자기 발목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무리해서 걸어 다녔던 탓에 발목에 무리가 온 듯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조금 쉬면 괜찮아지겠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밥을 먹으면서도 통증은 전혀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언제 삐었는지도 알 수 없는 발목의 상태가 조금씩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직 여행은 10일가량이 더 남아있었고, 당장 최소한 몇 시간은 더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진 크게 아프진 않았기에 우선은 좀 더 걸으면서 돌아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나와 일행은 서로 각자의 일정을 위해 마레지구에서 헤어진 뒤 숙소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저녁에 타려고 결심한 바토무슈의 출발 시간이 될 때까지, 나는 파리의 이곳저곳을 발길 닿는 대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아픈 발목이 여전히 신경 쓰였지만, 그렇다고 쉬기에는 여유를 핑계로 야금야금 까먹어버린 파리에서의 시간이 조금씩 아쉬워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때의 욕심이 파리에서의 남은 시간 내내 힘들게 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망가져버린 캐리어와 통증이 계속되는 발목. 파리에서의 다섯 번째 날이 녹록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여행이 예상이나 계획대로 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더군다나 이 곳은 부산 정도의 도시가 아니라 비행기로 열두 시간을 타고 건너온 프랑스의 파리라는 사실을, 나는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이곳은 내가 도착한지 겨우 5일밖에 되지 않은 낯선 도시였다. 아침부터 겪은 일련의 사건들로, 내 마음은 풀어져버린 채소처럼 힘 없이 흐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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