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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May 08. 2016

식도락의 화성학

(2015.01.04 in Paris, France) - 2

몽마르뜨에서 파리 시내로 들어온 우리는 비교적 저렴하게 프랑스식의 코스요리를 접할 수 있는 Saint-Michel거리로 향했다. 전날 숙소에서 만났던 한국인이 추천해준 식당이 이 곳에 있기도 했다. 그렇게 도착한 그곳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맛의 식사를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이틀 전에도 이 근처에서 식사를 했던 기억이 있어, 저렴하게 한 끼 먹기엔 나쁘지 않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다. 우리에게 이 식당을 추천해준 그 친구는 아마 혼자 당하기 싫은 마음에 이 곳을 추천해준 것이 분명했다.


에피타이저로 나왔던 양파수프는 특히 그 친구가 극찬했던 메뉴였다. 위에 올려진 치즈가 살짝 그을린 볼품없는 모양새이긴 했지만, 음식은 모양보다 맛이니까. 그렇게 한 숟갈 떠먹어본 수프의 맛은 위에 치즈가 올라간 조금 짠맛의 양파국이었다. 그럭저럭 먹을만했지만, 나는 이 곳을 추천해준 친구가 이 양파수프를 극찬했던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음식을 그리 깐깐하게 맛보는 편은 아니었지만(여행지에서는 특히나 더), 이 수프는 절대로 누군가에게 추천해줄 정도의 음식은 아니었다.


그렇게 조금 뒤에 나온 메인 요리는 더 가관이었다. 탄 맛이 강하게 나는 스테이크와, 물에 토마토소스를 아주 살짝 섞은 듯한 느낌의 싱거운 소스가 묻어있는(정말로 묻어있는 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파스타는 내가 지금껏 먹어봤던 요리 중에 가히 최악에 가까운 요리들이었다. 나는 스테이크와 파스타가 맛없으려면 이렇게까지 맛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이게도 미식의 나라 파리에서 깨달았다.


네이버 블로그에 맛집으로 추천되어있는 이 식당의 음식 맛과 서비스는 경악스러운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도 네이버 블로그에 적힌 추천 글들이 혼자만 당할 수 없다는 억하심정에서 나온 글들은 아닐까-하고 감히 추측해본다.


이 날의 경험이 내겐 꽤나 충격적이었는지, 이후의 여행에서부터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맛있는 음식이 여행을 얼마나 즐겁게 해줄 수 있는지, 맛없는 음식은 얼마나 여행을 망칠 수 있는지 깨달았던 것이다. 사람은 본능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라, 먹는다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맛없는 요리를 먹는 충격요법으로 늦게나마 깨달은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맛없는 음식값으로 지불한 10유로는 이런 값진 깨달음의 수업료치곤 꽤나 괜찮은 가격이었다. 그렇게 식당을 나오며 우리는 그곳에 들어온 한 무리의 한국인들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여기 맛없어요. 나가요 저희랑 같이.'


그렇게 충격적인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노트르담 성당으로 향했다. 노트르담 성당은 생미셸 거리에서 다리만 하나 건너면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노트르담 성당은 파리 시내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파리를 여행 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마주하는 곳이다. 성당은 언뜻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 정교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건축물이었다. 괜히 프랑스 고딕 양식의 건축물 중 걸작으로 꼽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성당 앞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높디높은 성당의 외벽이었다. 성당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어도 한눈에 담기 힘들 정도로 높았다. 검색해서 찾아본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는 웅장함이었다.

성당의 규모만큼이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빽빽하게 늘어선 조각상의 모습이었다. 멀리서 봤을 땐 그저 단순한 무늬들로 꾸며진 줄 알았던 장식들이 정교하게 조각된 조각상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나서, 무지한 여행자였던 나는 그제야 이 성당의 정교함에 감탄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속담은 이런데 써야 했다. 모니터 속의 사진과 실제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감이 있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인터넷에 접속하면 세계 각지의 아름다운 풍경과 멋진 조형물의 생생한 사진과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여행자들을 떠나게 만드는 이유는 바로 컴퓨터 모니터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실제의 매력 때문일 테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눈으로 보는 생생한 풍경을 똑같이 재현해낼 수는 없다. 그건 크기와 정교함의 문제가 아니라, 풍경을 바라보는 그 순간 내 주변을 흐르는 모든 것들과도 관련되어있다. 코 끝을 스치는 차가운 공기, 귓속으로 들어오는 이국적이고 부드러운 언어들, 어깨에 걸친 가방과 카메라의 무게감과 오래 걸어 뻐근한 다리의 감각까지. 여행지에서의 풍경은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다.

겉모습의 웅장함에 압도당한 뒤 노트르담 성당의 내부에 들어서면, 저절로 숙연해지게 만드는 성당 내부의 분위기가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와 커다란 홀, 천주교의 각종 성인들을 묘사한 동상들을 보고 있으면 숨 쉬는 것 조차 소란스럽게 느껴진다. 그때 문득, 성당에서 느껴지는 숭고함과 신성함은 이렇게 사람을 압도하는 건축물과 장식들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의 많은 성당들은 마치 신을 향한 인간의 경외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듯했다.

노트르담에서 말없이 한참 동안 내부를 구경하고 나오니 센느강에는 어둠이 내려앉아있었다. 그대로 숙소로 들어가기 아쉬웠던 우리는 가로등 빛으로 반짝이는 센느강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센느강에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이 켜지면, 한 낮의 센느강에서 볼 수 있었던 활기참은 사라지고 아름다우면서도 처연한 분위기의 센느강이 그 자리를 대신 지키고 있었다. 밤의 센느강엔 아름다움과 슬픔이 강을 껴안고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파리에서의 밤은 항상 이 날처럼 고요하고도 차분하게 마무리되곤 했다.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이 곳에서 알게 된 사람들 몇 명과 함께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갔다. 도저히 먹을 수 없었던 점심때문에 출출했던 나와 일행은, 적어도 먹을 수 있는 요리면 만족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숙소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는 실망했던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 대한 인상을 다시 한번 바꿀 수 있었다. 그저 동네의 작은 식당일 뿐이었는데, 웨이터의 서비스와 음식의 맛은 여느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수준이었다. 특히 웨이터의 직업적 자부심이 손님을 얼마나 즐겁게 해줄 수 있는지 처음으로 느껴본 곳이었다. 팁이 전혀 아깝지 않은 멋진 서비스였다.


중후한 중년의 웨이터와 맛있고 가격도 부담 없는 음식들, 웃고 떠들며 함께하는 좋은 사람들까지. 여행을 하며 엉켜버렸던 피로와 쓸쓸함을 이 모든 것들이 한올 한올 세심하게 풀어주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행복한 식탁의 힘을 얕보고 있었다. 그러나 행복한 식탁이야말로 하루의 기분을 넘어 여행 전체의 느낌까지도 한 번에 바꾸어버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엉망진창인 점심식사와 완벽한 저녁식사를 동시에 맛봤던 그날 밤, 나는 값싼 수업료를 지불해 여행의 가장 기본적인 즐거움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 즐거움은 비단 음식의 맛뿐 아니라 서비스와 함께 먹는 사람까지 전부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했다. 식도락의 즐거움이란,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내는 화성학과도 같았다. 미식은 어쩌면 맛(味)이 아닌 아름다움(美)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나는 오랜만에 웃고 떠들며 아름답고 평화로운 저녁식사 풍경을 마음껏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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