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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Nov 18. 2016

잿더미 속 절망과 작은 희망

어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이제 내 주변엔 더 이상 수능과 관련된 사람이라곤 학교 선생님이나 과외선생님을 하는 지인들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 날이면 괜스레 떨리면서 얼굴도 모르는 수험생들을 응원하게 되곤 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수능은 학생들이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는 가장 공정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입시는 대다수가 이 수능 혹은 내신성적이라는 평가기준을 갖고 공정한 경쟁 하에서 성적의 높낮이에 따라 대학에 입학하는 시스템'이었다'(교육 시스템의 문제나, 성적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따지는 글은 아니니 그 이야기는 패스하도록 하자).


노력하면 그만큼의 결과를 보상받는 일. 그건 내가 이 나라에서 굳게 믿고 있던 몇 안 되는 가치이기도 했다. 그건 소위 '개천에서 용 난다'는 우리나라의 아주 오래된 격언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신화이기도 했다. 각종 고시, 대학을 가서도 벗어날 수 없었던 시험, 심지어는 토익조차도 시험이라는 공정한 시스템 하에서는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는 것들이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그러나 요 며칠 사이, 이런 내 믿음은 완전히 산산조각 나버렸다.

모두가 알다시피 지금 우리나라는 심각한 혼란에 빠져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이제는 도저히 가늠도 할 수 없는 총체적 난국, 그것들은 어쩌면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 우리사회의 진짜 민낯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로부터 비롯되는 깊은 무력감과 끝을 모르는 절망감, 반복되는 좌절감. 우리가 믿었던 가치들이 눈 앞에서 송두리째 부서지고 박살나고 깨어지는 모습이 끊임없이 목격되고 정의와 원칙들은 철저히 유린되고 있는 사회. 겨우 몇 가지의 단어만 나열했는데 벌써부터 느껴지는 우울과 절망.


지난 4년, 어쩌면 그 보다도 더 긴 세월을 매일같이 부정당하는 요즘, 우리 모두는 깊은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어제 수능 에피소드 중 가장 내 눈을 사로잡았던 건 한 수험생의 도시락통에서 울린 어머니의 핸드폰이었다. 그 학생은 핸드폰에서 울린 벨소리로 인해 1교시 언어영역이 끝날 때 쯤 수험장에서 쫓겨나야 했다고 한다. 이 기사를 접했을 때, 나는 울컥하고 저 밑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자신의 실수로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되어버린 자식을 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지 나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아침부터 어머니의 염원과 기도가 담겼을 뜨끈한 밥과 반찬들이 들어있는 그 도시락통이 자신의 1년을 발목 잡던 그 순간, 그 학생의 심정 역시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골백번도 더 본인을 자책하며 무너져내렸을 부모를 보며,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원망하지도 못하는 그 현실은 나 같은 사람에겐 차라리 지옥에 가까웠을지 모른다.


이 기사를 접하고 얼마 뒤 해당 수험생이 한 수능 관련 유명 카페에 글을 올렸다는 소식을 접했다(본인이 올린 글이 아니라는 의문이 있지만, 정황을 보니 당사자가 직접 올린 듯하다). 그 학생은 본인의 1년이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날아갔음에도 같은 반에서 시험을 치른 학생들을 걱정했고, 어머니를 질책하지 않았다. 퇴실 조치를 당한 후 학교에서 한참을 울다 나왔다는 그 학생은 카페에 올린 글에서 짐짓 덤덤한 듯 툭툭 털고 일어나 본인 때문에 불편했을 타인을 배려하고 있었다. 그건 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태도이자, 숭고하기까지 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원칙이 올바로 지켜지는 성숙한 사회는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원리와 원칙이 싸그리 무시되는 지금의 우리나라에서 요 근래 내가 본 광경 중에 가장 따뜻하고 가치있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성숙하고 사려 깊은 학생들에게, 그들보다 몇 년을 더 산 어른으로써 이런 세상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어딘가에는 권력을 등에 업은 채 앞날을 편하게 보장받고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한낱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리는 인간들이 존재하는 반면, 어딘가에선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도시락통에 실수로 들어간 부모의 핸드폰으로 인해 대학을 1년 유예당하면서도 본인보다 타인을 위로하는 사람이 존재했다. 과연 이런 사람들이 한 사회에 공존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자꾸만 들었다.


그래도 나는 어제의 그 학생 덕분에 이 잿더미 같은 현실 속에서도 작은 불씨 같은 하나의 희망을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평화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위와, 본인들이 있던 장소의 쓰레기를 줍는 시민들, 그리고 모든 가치들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은 이 사회에도 아직 그 가치를 수호하려고 노력하는 개인들이 있는 한, 나는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이렇게 글로만 쓰고 무엇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무기력하고, 검은색의 활자가 이렇게나 힘없어 보인 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력감의 패배자가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좌절감만으론 이 사회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자리를 빌어 어제의 그 학생과 모든 수험생들에게 자그마한 위로와, 끝없는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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