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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Nov 01. 2016

퇴사를 말하다

나는,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회사에 퇴사를 통보했다.


기나긴 고민 끝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막상 실천으로 옮기려니 엄두가 나지 않아 몇 달을 끌었다. 회사와 내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지는 벌써 오래 전의 일이었다. 회사는 내가 하는 일을 그리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고, 그런 곳에서의 내 시간은 그저 무기력하게 흘러가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시간을 버티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고.


남 부럽지 않은 직장이었다. 힘들었다면 솔직히 거짓말이다. 실제로도 힘듦과는 거리가 먼 직장이었다. 꽤나 넉넉한 연봉에, 소위 말하는 나인 투 식스가 지켜지는 직장. 광화문으로 출퇴근을 했기에 집이 있는 인천과는 거리가 있었어도 뭔가 그럴듯한-소위 폼나는 직장생활도 영위했다. 친구들은 나더러 신의 직장에 다닌다고 말했다. 퇴근길에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고르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신촌으로 향해 대학 친구들과 돈 걱정 없이 술 한잔 하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며 살기엔 나는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 모양이었다.


회사를 들어가며 생각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이제 직업으로 자아실현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라고. 나는 인턴 6개월을 하면서 이 회사의 직원들이 얼마나 칼같이 퇴근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취직 제의가 왔을 때 좀 더 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나는 일주일의 고민 끝에, 그 당시 가고자 했던 언론인의 길을 접었다. 그러니까, 나는 저 문장 하나로 자기합리화를 해버린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다른 이유로 언론 쪽에의 뜻을 접었지만.


하지만 현실은 역시 내가 상상하는 것과는 영 딴판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홍보실 소속으로 좋아하는 사진도 찍으며 퇴근하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은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순진해서 코웃음이 쳐질 정도다. 인천에서 서울로 향하는 출퇴근길은 언제나 녹록지 않았다. 매일 아침 지옥철에서 '나는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싶다가,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는 '너는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니'하고 묻고 싶어 졌다. 팽이버섯 같은 사람들의 검은 대가리 속에서 나는 늘 미간을 찌푸린 채 아침을 보내야만 했다.


상사는 대체로 좋았지만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트집을 잡곤 했다. 알고 보니 나쁜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이고 착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일적으로 만났을 때도 좋은 사람일지는 별개의 문제다. 상사는 팀원들에 대한 배려가 아주 미묘한 부분에서 어긋나 있었다. 그러니까, 챙겨주지 않아도 되는 부분에서 챙겨주고, 정작 챙겨야 할 부분에선 팀원들을 다그쳐 사기를 저하시키곤 했다. 마치 미숙한 연인관계와 같았달까.

여기에 주저리주저리 내가 회사를 왜 나왔는지 적어봤자, 아마 나는 내가 한 잘못은 절대로 적지 않을 것이다. 그건 모든 인간의 공통된 어리석음이니까. 그리고 난 정말로 딱히 내가 무얼 잘못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연인관계가 헤어지는 것도 이와 비슷한 것 아닐까. 누구의 잘못이랄 것도 없이, 그냥 서로가 맞지 않아 제 갈길을 가는 것일 뿐.


어쨌든 이 회사를 다니며 나는 틈날 때마다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이유 하나만을 본 채로 온 회사라서 그랬는지, 오히려 더 매달렸던 것 같다. 지독히 피곤한 날에도 집에 가서 글을 썼고, 지하철에서 치여가면서 굳이 매일같이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2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돈도 한 푼 모으지 못했지만 대신 내겐 아주 좋은 카메라가 생겼고, 맥북을 구입했으며, 체코와 오스트리아를 내 돈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브런치에서 개최한 공모전에서 금상을 받았고, 외부에서 가끔씩 원고를 기고받아 글을 쓰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내가 꿈꾸던 '작가'라는 타이틀에 조금씩 근접해 나가는 과정들이었다.


작가라는 타이틀 외에도 2년 남짓의 회사생활이 내게 남긴 것은 만성적인 안구 건조증과, 터널 증후군, 수면부족과  퀭한 눈, 쳐진 뱃살 등이지만 회사를 다녔던 지난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퇴사를 후회할 것 같지도 않다. 내겐 새로운 시작이 남아있고, 나는 아직 인생의 절반도 채 살지 않은 풋내기일 뿐이다.


입버릇이 되어버린 문장을 읊조려본다. '나는,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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