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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Oct 12. 2016

제주의 영혼은 바람으로 이루어졌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다고 하여 '삼다도'라 불리는 곳. 바다와 산은 도화지로, 나무와 꽃은 색연필이 되어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이 그려지는 곳.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요즘 들어 부쩍 제주를 꿈꾼다. 제주는 어쩌면, 도시에 사는 인간들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그 모든 질문들에 대한 해답일지도 모른다. 제주는 도시에서 상실된 모든 것들이 모여드는 섬이다.


요즘 같은 '제주 붐'이 일기 일찍 전부터 이 섬의 매력에 빠진 한 사내가 있다. 1982년 처음 제주의 매력에 사로잡힌 그는 서울과 제주를 뻔질나게 오갔다. 그렇게 그 사내는 이 섬이 갖고 있는 영혼의 결을 찍기 시작했고, 시도 때도 없는 육지와 섬 사이의 오르내림 끝에 제주에 정착했다. 그리고 온몸이 굳어져 제주의 바람이 되는 그 순간까지 카메라에 제주를 담았다.


그는 바로 사진가 김영갑이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사진가 김영갑이 폐교된 삼달국민학교를 얻어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던 와중에도 손수 가꾸며 만들어낸 곳이다. 작은 문을 지나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면, 그가 손수 가꾸었을 작은 정원이 펼쳐진다. 이 작은 정원의 존재만으로도 갤러리의 주인인 김영갑이 얼마나 이 공간에 애정을 품고 있었을지 느껴진다. 

작은 정원을 지나 학교의 중앙 현관이었을 갤러리의 입구에 들어서면, 조용한 실내 공기가 방문객을 덮쳐온다. 숨 막히는 적막이 아니라,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고요함이다. 실내에선 차분하면서도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 두모악은 입구에서부터 김영갑의 사진을 닮아있다.


흔히 제주하면 푸른바다를 생각한다. 가슴속까지 시원 해지는 듯한 뻥 뚫린 수평선과 짙푸른 쪽빛의 바다는 육지 사람들의 마음에 쉽게 자국을 남긴다. 그러나 김영갑의 사진엔 바다가 거의 없다. 그는 바다로 가는 대신 산과 오름을 올랐고, 넓게 펼쳐진 제주의 들판을 누볐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들에선 땅의 기운이 느껴지고, 심지어 바다마저 육지의 형상을 띈다. 그의 사진에서 암초는 산이 되고 파도는 갈대가 된다. 그는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섬으로서의 제주가 아닌,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을 품고 있는 제주를 담았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서 보이는 오름과 제주의 땅은 사람들의 마음에 묵직한 흔적을 남긴다.

눈, 비, 안개, 그리고 바람환상곡(출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김영갑.
눈, 비, 안개, 그리고 바람환상곡(출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김영갑.

그리고 그의 사진들에선 하나같이 바람의 결이 느껴진다. 씨줄과 날줄로 엮여 제주를 이루고 있는 무수한 결의 바람. 사진을 찍고 있었을 김영갑의 온몸을 애무하듯 훑고 지나갔을 그 바람.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는 듯하다. 김영갑은 바람과 같이 보이지않는 제주의 모든 것까지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전까지 나는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나만의 비밀화원에서 나만의 꿈을 키워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들이 행복이었음을 뒤늦게야 알아차린 나는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이제야 깨닫고는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을 못내 안타까워합니다. 이제 나만의 비밀화원은 옛 탐라인들과 함께 호흡하며 울고 웃었던 예전의 그 화원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져 더 이상 태곳적 신비와 고요를 느낄 수 없게 된 그곳을 나는 이제 나의 기억 속에서 지우려 합니다.

- 김영갑, 잃어버린 이어도


제주는 우리가 잃어버린 그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 해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본인들이 찾아야 하는 것이 자연의 영혼을 닮은 인간의 본성인지, 자유를 향한 갈망인지, 그도 아니면 아름다운 것에 대한 열망인지도 모른 채 뻥 뚫린 가슴을 안고 제주로 향한다그래서 우리는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것을 찾으려 제주로 향했다가는 텅 빈 마음을 안고 다시 되돌아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제주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일까. 나, 그리고 우리가 제주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김영갑의 사진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게다가 제주 역시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 바다엔 쓰레기가 떠다니고 새들은 갈 곳을 잃는다. 사람의 손길이 닿는 자연은 쉽사리 빛을 잃는다. 우리는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희생되는 자연 본연의 것들을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김영갑이 이어도를 말하며 이야기했듯이, 어쩌면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가 되면 인간의 욕심 많은 영혼은 기억 속에서 제주를 지우고 또 다른 먹잇감을 찾으려 할테다.


김영갑 작가는 제주를 기록으로 남기고, 보존하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그는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제주의 바람이 되었다. 제주를 찾는 이들에게,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그 근원적인 목적에 질문을 던지는 곳이다. 우리는 왜 제주를 찾는가? '육지 것'으로 제주에 들어와 그가 원하던대로 자유로운 제주의 바람이 된 그의 질문을, 이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하며 한 번쯤 고민해봄직하다. 특히 사진을 찍는 이들에겐 제주에 와서 무엇을 기록하고 어떻게 찍어야 할지에 대한 많은 해답을 내려주는 곳이다.


한가지 확실한 점은, 제주에서 우리가 봐야할 것은 바다가 아니라 바람이다.

김영갑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촬영한 아끈다랑쉬오름의 갈대밭

*김영갑 작가의 작품은 홈페이지에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갤러리 실내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있습니다.

*본 글은 데일리 제주(Daily Jeju - http://www.dailyjeju.co.kr/)와 콜라보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참고문헌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공식 사이트: http://www.dumoa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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