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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Sep 29. 2016

오코노미야키 학번

신촌 오코노미야키 전문점, 하나(はな)

2008년은 내가 부푼 마음을 안고 대학교에 입학한 해였다. 내게 대학은, 그리고 서울이란 도시는 앞자리가 2로 바뀌어버린 나이만큼이나 생경하고도 낯설었다. 무슨 일이 앞에 펼쳐질지 나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던 시절. 그즈음의 나는 설렘과 두려움, 자그마한 흥분 같은 감정들이 온통 뒤죽박죽 제멋대로 섞여있는 어설픈 반죽덩어리 같았다.


실제로 2008년과 그 언저리의 몇 년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일들이 벌어졌던 나날들이었다. 내가 스무 살의, 20대의 대부분을 보낸 신촌 거리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던 내 모습과도 비슷했다. 학교 앞 횡단보도에 있던 퀴퀴한 굴다리가 오랜 공사 끝에 깨끗하게 단장하는가 하면, 자주 가던 술집들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했고, 정체모를 외래어로 된 액세서리 가게가 사라지면, 그 자리에 다시 다른 액세서리 가게가 들어서기도 했다. 어제의 거리와 오늘의 거리는 결코 같지 않았다.


2008년엔 식생활에서도 많은 부분들이 바뀌던 시기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저녁식사와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 술을 마시게 됨에 따라 내 저녁 메뉴들은 대부분 술안주로 먹을 수 있는 것들로 바뀌었다.


서울로 대학을 다닌다는 건 새로운 문화를 빠르게 접할 수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학교에서 몇 분 거리에 있고, 동네엔 없는 스타벅스도 두 군데나 있었으며 연인들이 갈 법한 그럴싸한 파스타 집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앞으로 말하게 될 가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저녁을 먹으러 가려는데 한 선배가 오코노미야키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오코노미야키?


얼핏 들어도 일본음식인 것 같은 이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어떤 음식인지 도저히 감도 잡지 못했다. 무슨 음식이지? 회 같은 건가? 지금이야 일본음식이 좀 더 대중화됐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일본 음식점이 지금처럼 많지 않은 때였다. 게다가 나는 일본음식은 초밥밖에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일본음식에 무지했다. 선배는 내가 오코노미야키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부침개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며 나를 얼마 전 생긴 오코노미야키 맛집에 데려가 주겠다고 했다. 부침개라면 죽고 못살았던 나는 군말 없이 그 선배를 따라갔다.

작고 아담한 가게였다. 가게 앞에는 일본어로 꽃이라는 뜻의 '하나(はな)'라는 이름의 간판이 붙어있었다. 눈의 꽃의 원곡인 나카시마 미카의 유키노 하나를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던 일본어라 왠지 반가웠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살짝 느끼한 기름 냄새가 섞인 고소한 음식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해왔다. 정면에는 주인으로 보이는 듯한 남자가 불판에서 쉴 새 없이 문제의 '오코노미야키'로 보이는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선배와 자리를 잡고 앉아서 오코노미야키와 야끼소바를 시켰다. 야끼소바는 또 뭔가? 선배는 메뉴를 쓱 보더니 알아서 척척 주문했다. 그 시절의 선배들은 항상 그랬다. 나보다 항상 많이 알고, 무엇이든 척척 할 줄 알았다.


가만히 앉아 테이블 가운데에 놓인 철판을 쳐다봤다.


'저기서 음식을 만들어서 가져오면 이 위에 올려서 먹는 건가 보구나...'

가게는 생경함 그 자체였다. 테이블에서 손님이 일어나면 불판을 닦고 테이블을 정갈하게 정리하는 모습도 신기하기만 했다. 주방에서 들려오는 일본어를 봤을 때, 사장님은 일본인인듯했다. 일본인이 만드는 일본 음식이라... 당연하게도 믿음이 갔다. 맛집은 맛집 인가 보구나 싶었다. 선배는 이런 곳은 또 어떻게 알았을까, 역시 선배들은 대학물을 먹어서 그런지 세련됐구나.


선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드디어 문제의 '오코노미야키'가 '야끼소바'와 함께 나왔다. 오코노미야키는 안에 양배추, 돼지고기, 치즈 등이 들어간 계란 부침개 같았다. 오코노미야키 위에는 이상하게 나풀거리는 정체모를 것들이 올려져 있었다. 나는 선배에게 위에서 나풀거리며 움직이는 건 뭐냐고 물었다. 선배는 '가쓰오부시(가다랑어포)'라고 했다. '가쓰오부시는 또 뭐지? 살아있는 건가...'

선배와 적당히 서로의 몫을 나누어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한입 베어 물었는데, 맛있었다. 소스의 맛 때문이었는지 부침개보단 느끼했지만 맥주 안주로는 제격이었다. 달착지근하면서도 고소한 맛.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저녁식사로는 충분했다. 짭조롬한 맛과 재밌는 식감의 가다랑어포는 또 다른 재미였다. 함께 주문했던 야끼소바 역시 무난했다. 볶음우동 같은 비주얼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그대로의 맛이었다. 그날 나는 나에게 처음 오코노미야키를 소개해준 선배와 자리를 옮겨가며 밤새 술을 마셨던 것 같다.


2008년 처음 오픈했던 오코노미야키 전문점 '하나(はな)'는 올해로 8년째를 맞이했다. 나와 신촌에 입성한 시기가 같은 셈이다. 그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곳은 신촌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저렴하면서도 수준 있는 오코노미야키와 야끼소바를 선물했다. 가게 사장님의 친절한 미소와 서비스는 덤이었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대학생들에겐 최고의 맛집이었다.


그랬던 하나가 2016년 10월 4일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한다고 한다. 신촌을 제 집처럼 드나든지 벌써 8년 차, 그동안 무수히 많은 음식점과 가게들이 사라지고 다시 생겨나기를 반복했지만 여전히 단골집이 없어지는 일은 낯설고 아쉽기만 하다. 영업을 종료한다는 소식에, 어제 신촌으로 달려가 친구와 함께 대표 메뉴인 돼지 타마와 야키소바를 주문해 먹었다. 이 곳의 오코노미야키는 언제 먹어도 아무것도 몰랐던 스무 살에 처음 먹었던 그 맛이었다.


여전히 주방에서 열심히 오코노미야키를 만들고 계시는 사장님을 보고 조금 서글퍼졌다. 사정이야 있으시겠지만, 대학을 입학했던 그 해에 생긴 음식점이라 마음속으로는 더 애착이 많이 가던 곳이었다. 그래서 없어진다는 사실이 더 아쉬웠다. 골목의 무수히 많은 가게들이 변해갈때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만큼 더 오래 남아있으리라 생각했건만. 마침 오랜만에 들른 가게에선, 애니메이션 초속 5cm의 ost인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가 울려퍼졌다. 가게 이름인 꽃과 참 닮은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영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에 적혀있었듯이, 언젠가 어느 날에 불쑥 '하나(はな)'라는 간판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사장님께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고 나올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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