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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Aug 15. 2016

별과 소망과 작은 욕심

2016.08.12. 페르세우스 유성우 내리던 날

2016년 8월 12일, 우리나라가 페르세우스 유성우를 관측하기에 최적의 시기라는 뉴스가 신문과 방송을 장식했다. 마침 별 사진을 찍겠다고 별러왔던 나는 무작정 휴가를 내고 강릉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별'이라는 단어는 내게는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게 만드는 힘이 있다. 분명 그 이유가 단순히 이제는 보기 힘들어졌다는 희소성 때문만은 아니다. 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만, 어린 시절의 나는 유난히 별을 좋아했다. 숫자와 알파벳이 어지러이 섞여있는 소행성들의 명칭이나 시리우스, 알파 센타우리 등등 정체모를 외래어로 이루어진 별들의 이름은 어린 소년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나에게도 우주비행사와 천체물리학자를 꿈꾸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별이 빛나는 하늘'하면 어린 시절 그 꿈을 갖게 해 준(이제는 장소도 잘 기억나지 않는)어느 시골의 밤하늘이 떠오르곤 한다. 그 날의 하늘엔 분명 어지러울 정도로 별빛이 빼곡하게 박혀있었다. 그건 내가 살던 인천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하늘이었다. 그날의 나는, 지구라는 아주 작은 별에 살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은 미물이구나-하고 어렴풋하게 느꼈던 것 같다. 물론 '미물'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떠올리진 않았을 테지만.


그리고 천체물리학자를 꿈꾸던 소년은,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북두칠성을 찾기 위해 밤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여전히 별이 빛나는 밤은 나에겐 신비와 동경의 대상이었다.

확대해보면 안드로메다 은하의 모습까지 찍혀있다

데이빗보위의 'Starman'이나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음악가와 미술가들이 별을 소재로 한 음악과 그림을 만들어내는 걸 보면, 분명 별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일 테다. 그것이 어떤 영감인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까만 밤하늘에 흰색으로 반짝이는 별빛을 신비롭지 않게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가 야경에 그렇게 열광하는 것도 어쩌면 이젠 볼 수 없게 된 밤하늘의 별을 닮은 모습을 동경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곤 한다.


인터넷에서 수많은 별 사진을 보고, 별 사진을 찍는 노하우들을 뒤적거리며 세 시간 가량 버스를 탔다. 버스는 금세 강릉에 도착했다. 나는 버스에서 급하게 예약해놓은 숙소에 짐을 풀고 친구와 함께 목적지인 대관령으로 향했다.


세상에는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이건 너무나도 뻔해서 말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테지만, 우리가 경험한 그 날의 대관령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알 수 없을 풍경이었다.


대관령 휴게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우리 앞과 뒤를 달리는 차들을 보며 '설마 저 차들이 전부 별을 보러 가는 걸까?' 싶었다. 중간중간 도로변에도 차들이 정차해있었지만 우리는 그 차들이 설마 별을 보려고 온 차 들일 거라고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대관령 휴게소에 도착한 순간, 알 수 있었다. 그 차들은 전부 페르세우스 유성우 관측에 최적기라는 2016년의 8월 12일, 강원도로 온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한산하고 조용한 산속에서 고즈넉하게 유성우가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현실은 어둠 속에서 밤하늘이라는 스크린을 다 같이 보고 있는 월드컵 시즌의 아파트 단지 같았다. 발 디딜 틈 없이 붐비지는 않았지만, 하늘에서 유성우가 떨어질 때마다 '우와'하고 모든 사람들이 탄성을 내지르는 그 모습은, 분명히 내가 지금껏 보지도, 듣지도 못한 또 하나의 세계였다. 어쩐지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아, 세상엔 그저 '혜성의 잔해가 지구의 대기권과 마찰을 일으키며 생기는 현상'인 별똥별, 유성우를 보려고 밤의 대관령으로 오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하고 말이다. 어쩐지 세상이 조금은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면, 너무 오버인 걸까.

우리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깔고, 카메라를 설치했다. 부지런히 사진을 찍기도 하고, 돗자리에 누워 그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기도 했다. 유성우는 정말 빠르게 떨어졌다. 집중하고 있지 않으면 유성우가 지나간 뒤에 사람들이 내지르는 감탄사만 듣기 일쑤였다.

한참 동안 사진을 찍다가 돗자리에 누워 밤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이내 긴 꼬리를 남기며 불빛 하나가 거짓말처럼 밤하늘을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우습게도,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비는 일이 아무 의미 없는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저 짧은 찰나의 순간 지나간 별 빛은, 과연 몇 사람의 소원을 싣고서 지구를 스쳐 지나갔을까.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별들은 윤동주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저마다 어떤 사연들을 갖고 있을까. 내 소원 따위 페르세우스 유성우든 별똥별이든 스위프트-터틀 혜성의 잔해든, 뭐가 됐든 이뤄주지 않아도 괜찮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는 나라는 사람이 연애할 마음 좀 들게 해달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소원도, 가족과 친구들의 안녕이라는 뻔하디 빤한 소원도, 글을 조금 더 잘 쓰고 사진을 좀 더 잘 찍게 해달라는 절박한 애원도 굳이 들어주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밤하늘에 생채기를 남기며 지나간 유성우는, 분명 그 자체만으로 이미 내 소원이었다. 그래서 저런 소원 따위는, 들어주지 않아도 괜찮겠다 싶은 밤이었다. 그렇게 단 하나의 소원도 빌지 않았던 그날 밤, 세상의 많은 것들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욕심 하나만 내 마음속에 가만히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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