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욱 Aug 04. 2016

쓸쓸한 요정의 노래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을 기억하며-

https://youtu.be/EW2B1dK6mmc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축배>

2010년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하루하루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한(넌 왜 사냐?) 철학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받던 입대 4개월 차의 이등병이었다. 그리고 그날도 어김없이 청소시간이 되어 걸레를 빨아온 나는 점호시간에 '털리지' 않기 위해 열심히 걸레질하고 있었다. 그 순간, 뉴스에서 익숙한 이름이 흘러나왔다.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


'그래 이제 대박 날 때도 됐지'싶어 귀를 기울였는데,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달빛요정이라 불린 사나이, 이진원이 돌연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였다.


만약이라는게 존재한다면, 아마 만약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지금쯤은 그가 신물 나게 타령했던 고기반찬쯤 실컷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벌고 있지 않았을까, 하고 가끔 생각한다. 2010년과는 달리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국내의 수많은 뮤직 페스티벌에 그가 불려 다니지 않을 리는 없었을 테니까. 혹시 아는가, 무한도전에 나와서 10cm나 혁오처럼 떴을는지도.


하지만 현실에 만약은 없고, 달빛요정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부르던 노래들처럼 쓸쓸한 반지하 단칸방에서 외로이 떠나갔다.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선임들에게 혼났고, 내 머릿속엔 인생은 스끼다시라는 달빛요정의 노래가 떠올랐다. 묘하게 위로가 되는 멜로디였다. 그날 밤 CDP에선 달빛요정의 시디가 한없이 돌아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하필이면, 하필이면 왜 벌써.


그의 노래들은 대체로 찌질하다 못해 비참하다. 인생은 스끼다시같고, 돈은 없지만 고기반찬이 먹고 싶다. 나는 어차피 이것밖에 안 되는 놈이지만, 연애는 하고 싶다. 아니 도대체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고기반찬 타령을 하지? 다 큰 어른이 무슨 고기반찬 타령이야- 싶지만 그는 그랬다. 음악을 하지만 배고팠고, 그럼에도 유쾌하게 고기반찬을 외치는 사나이였다. 9회 말의 역전 만루홈런을 기대하면서. 인생은 마치 야구와 같으니까. 그는 언제나 9회 말 2아웃 주자 만루 상황의 타석에 오른 타자 같았다.


야구와 찌질함. 그는 20대 초반의 나를 지배할 수 밖에 없는 뮤지션이었다. 나는 교내 방송국 스피커로 '스끼다시 내 인생'과 '절룩거리네', '어차피 난 이것밖에 안돼' 같은 노래들을 틀어대곤 했다. 그건 세상을 향한 내 외침이기도 했다. 가사는 씁쓸했지만 경쾌한 멜로디 때문이었는지 그의 노래는 한결같이 '한심하다고? 나도 알아 인마'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어른이 현실을 대하는 태도는 저런 걸까, 하고 생각한 때가 있었고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여전히 나의 20대를 관통하는 뮤지션들 중의 하나다.


참 아재스럽고 찌질하고 어떻게 보면 또 허세스럽다고 누군가는 타박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걸 달빛요정의 감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타박하던 사람들도 살다 보면 한 번쯤, 그의 노래에 위로받는 순간은 분명히 온다. 왜냐면 그의 노래들은 대책 없이 뜬구름 잡는 희망찬 메시지가 아니라, 어휴 어쩌겠어 그냥 살아야지, 건배! 와 함께 털어내는 소주 같은 느낌이니까. 어쨌든 그는 이러저러 구질구질한 인생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곤 했다. 그건 결국 음악의 본질이기도 하다. 음악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일테다.


이제 와서 달빛요정이 말하고자 했던 건 '빚 맞은 텍사스 안타 같은 게 우리 인생이야. 재수는 있다가도 없는 거지 뭐, 그러니까 짜샤- 힘내'이런 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비록 그가 역전 만루홈런을 때려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의 노래는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항상 적시타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 번째, 제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