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수의 하소연 에세이
백만원. 내가 목포에 와서 2주 동안 쓴 돈이다. 계산기를 두들기며 계속 한숨이 쉬어졌다. 방 값과 대중교통 비만 빼면 서울보다 훨씬 더 많이 소비한 셈이다. 뭐 때문에 이렇게 많이 썼지? 그 물건들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1.
자전거를 샀다. 25만원짜리 초록색 클래식 자전거. 사실, 당근 마켓에서 충분히 5만원에 자전거를 구매할 수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예쁘지 않았다. 매일 멋진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선 리틀 포레스트 첫 장면에 김태리가 타는 수수하면서 세련된(?) 자전거가 필요했다. 그래, 이건 매일 타고 다닐 거니까 패쓰.
2.
노란 꽃무늬 이불과 레이스 커튼을 10만 원에 샀다. 작년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 놀러 갔을 때, 예쁜 침구와 창문에 달린 커튼에서 영감을 받아온 것이다. 그런데, 노란 꽃무늬 이불은 패턴은 예쁜데 너무 얇아서 전혀 이불의 역할을 하지 못했고, 레이스 커튼은 안팎이 다 비쳐 옷을 갈아입을 때 가림막의 역할을 전혀 해주지 못했다. 하는 수없이 엄마가 준 침구를 다시 덮고, 샤워 후 방에 들어가면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해야만 한다.
3.
6개에 25000원하는 빈티지 유리컵을 구매했다. 소품샵에서 발견하자마자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떠올랐다. 서울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친구들에게 기분 좋은 선물과 함께 목포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컵을 사려면, 반드시 세트로 딸려오는 큰 물병도 함께 가져가야만 했다. 물병은 전혀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좀 깎아달라고 흥정을 시도해보았지만 실패하고, 값을 지불할 테니 사장님이 그냥 갖으시면 안 되냐고도 물었지만 세트는 세트라 역시 세트로 가져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처치 곤란한 물병을 옆에 두고, 뽁뽁이로 하나씩 친구들에게 줄 물컵을 포장했다. 우체국에 들려 소포의 무게를 재니 발송비 16000원이 나왔다.
4.
제주도 히피들이 즐겨 입을 만한 옷들이 걸려 있는 옷 가게를 발견했다. 빡빡한 도시인의 때를 벗기 위해선, 시원한 린넨 소재로 만들어진 넉넉한 핏의 옷 몇 벌이 필요할 것 같아 긴 블루 셔츠 하나, 린넨 소재의 베이지색 면바지 하나 또 린넨 소재의 베이지색 조끼 하나를 구매했다. 그 모든 게 15만원이라는 사실을 계산대에 가서야 알아차렸다. 소재가 좋은데, 이 정도면 비싼 것도 아니라는 사장님의 말에 더 이상 무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5.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동네를 순회하기 시작했다. 점심 뷔페와 고깃집을 하는 SC, 채식 식당을 운영하는 SH, 펍을 운영하는 YH, 영상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DY과 JS, 한옥 게스트하우스와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는 MS, 코워킹스페이스를 운영하는 DW,MH와 거기에 직원으로 근무하는 EH와 JA.
친구들이 개업한 가게에 마냥 인사만 하고 돌아올 순 없진 않은가? 나는 친구들과 인사하는 김에 SC의 가게에서 고기를 굽고, YH의 펍에서 향긋한 수입 맥주를 마시고, MS의 카페에서 녹차라테를 시켰다. 종종 채식 식당을 운영하는 SH가 아무 대가 없이 나에게 요리를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뼛속부터 기브 앤 테이크 마인드가 세팅된 나는 얻어먹는 횟수와 함께 마음의 부채도 점점 더 늘어나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의 삶은 개뿔. 전신거울에 비친 린넨 소재의 옷을 입은 내 모습은 학창 시절 개량한복을 입고 복도를 순찰하던 도덕 선생님과 비슷해 보였다. 도덕 선생님은 복도에서 뛰어다니던 나와 친구들을 불러 세워 요술봉 같은 단소로 손바닥을 내리치며 말씀하셨지.
“윤회하지 않으려면, 반복되는 습관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놈들아.”
소비로 삶의 구색 맞추기. 어쩐지 서울에서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와 다르지 않은 패턴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 다시 인생은 돌고 돈다. 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