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도 이제부터 크리스마스는 굉음과 스크리밍이 함께하기를
가톨릭이라 성당에서 울리는 캐럴 빼고는 캐럴에 대한 특별한 로망은 없었다. 굳이찾자면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성탄 때마다 듣던 Wham! 의 <Last Christmas> 정도랄까? 하지만 누구나 캐럴에 대한 추억 정도는 하나쯤 있지 않을까 싶은데, 내 경우는 올해도 또 차트 안에 진입한 머라이어 캐리 언니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처럼 뻔하지 않은, 좀 별난 노래들이다.
때는 바야흐로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95년 크리스마스이브. 친구 부모님이 성탄을 맞아 여행을 떠나셨다는 말에 동네 친구들이 모두 그 집으로 모였다. 부모님도 안 계시겠다, 여기저기서 술과 안주를 사 가지고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신나게 판을 벌이려는 찰나 친구 어머님이 상태가 안 좋아 다시 돌아오신다는 연락이 오고, 친구들은 모두 술을 포기하고 안주만 먹으며 노가리를 풀다 친구네 좁은 방에서 잠이 들었다. 잠에서 일찍 깬 나는 하도 심심해서 늘 가방에 넣고 다니던 ‘마이마이’를 꺼내 라디오를 듣기 시작. 프로그램은 ‘오성식의 팝스 잉글리시’였다. 그런데 갑자기 오성식이 ‘오늘은 좀 특별한 노래입니다. 최근 <More Than Words>로 인기를 끌고 있는 Extreme이 유럽에서 다른 뮤지션들과 함께 발매한 캐럴 컴필레이션에서 한 곡 보내드립니다. 제목은 <Christmas Time Again>’
어마 깜짝이야! 당시 나는 Extreme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누노 베텐코트에 미쳐있던지라 얼른 노래를 녹음하려고 공테이프를 찾았지만 마땅한 것이 없었다. 때마침 굴러다니던 친구의 영어 듣기 테이프를 집어다 얼른 녹음 버튼을 눌렀지만 시간이 너무 지나 노래는 반밖에 건지지 못했다. 여기저기 그 컴필레이션 음반을 찾으려 수소문했지만 유럽 지역에서만 한정으로 발매한 음반을 한국에서 찾는 것은 어려웠다.
몇 년을 찾아 헤매던 중, 어느 친구의 말로 PC통신 서비스 나우누리의 ‘익스트림 팬클럽’ 자료실에 그 노래 파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른 나우누리에 가입해 자료실에 들어갔다. 당시는 인터넷도 없던 때라 전화 모뎀으로 접속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필 내 컴퓨터의 모뎀이 사양이 낮아 5MB 정도 되는 한곡을 내려받는데 여섯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새벽녘 좁아터진 친구 방 창문으로 보이던 어스름한 새벽빛과 조금씩 내리던 눈의 사뿍사뿍한 느낌이 생각난다.
예전 한국 가요를 철저히 무시했던 적이 있다. 유재하로 시작해 이문세, 조규찬 등 별밤에서 소개하는 괜찮은 노래들은 들어줄만했지만, 룰라니 박남정이니 하는 저질 댄스음악 들은 들어줄 일고의 가치도 없었고, 인기 있는 몇몇 배우들의 음반 발매는 뻔하기만 했다. 그러던 중 ‘하나뮤직 그룹’을 알아냈다. 하나뮤직 그룹은 킹레코드 등 우리나라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실력파’ 뮤지션들이 조동진을 중심으로 뭉쳐 만든 크루 성격의 음악 집단이다.
조동진의 동생인 조동익을 비롯해 고찬용, 한동준, 장필순, 윤영배, 더 클래식 등 많은 뮤지션들이 하나뮤직 그룹을 거쳐갔고, <서방님>과 <세 가지 소원>, <팥빙수>의 작곡가 이규호도 하나뮤직 그룹이다. 이들은 뮤지션 각각 음반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 음악에도 정말 들을만한 명반을 만들어내는 뮤지션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음악 팬과 뮤지션들에게 입증했다. 또한 그들은 ‘바다’, ‘강’, ‘무비’, ‘New Face’ 등 컴필레이션을 통해 그들만의 음악적 색을 공고히 하면서도 주제에 맞는 음악들을 만들어냈다. 하나뮤직 그룹은 나의 편견을 깨버리는 동시에 나의 음악 지평을 크게 넓혀놓았다.
그러한 하나뮤직 그룹 아티스트 중 제일 처음 들은 것은 이소라가 처음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냈으며 음악 천재 고찬용이 이끄는 ‘낯선 사람들’이다. 셀프 타이틀 1집 음반을 발매한 그들은 ‘한국의 맨해튼 트랜스퍼’라는 칭송을 받으며 수많은 라디오 리퀘스트를 받아냈다. 하지만 2집 작업을 하면서 예민해진 고찬용과 멤버들의 트러블로 2집을 끝으로 해체하고, 지금은 이소라와 고찬용 각각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의 1,2집은 모두 절판되어 희귀 음반 리스트에 올라있는 데다 음원도 공개되지 않았는데, 2집을 구하기 위해 알아보던 중 하나뮤직 그룹의 ‘겨울 노래’ 컴필레이션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낯선 사람들이 만들고 부른 ‘첫눈’이라는 노래를 듣고는 완전히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변변한 로컬 캐럴이 없던 한국에, 이 노래만큼 완벽한 캐럴은 없었던 것 같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한 여름에도 스산한 크리스마스 겨울 풍경이 생각난다.
안타깝게도 2018년부터는, 전혀 생경한 두 노래를 매시업 하는 게 전문인 어떤 유튜버를 통해 내 겨울 추억에는 약간의 변동이 생겼다. 이제 당분간 내 크리스마스는 <Last Christmas>로 대표되는 눈과 아름다운 종소리 멜로디가 아닌, <Angel of Death>의 절규와 굉음, 고함이 함께 할 예정이다. 모두 헤비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