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트에서 사라진 록 뮤지션들을 위한 아재의 변명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이 ’Grunge is Dead’라는 말을 했을 때나, ‘Rock is Dead’라는 말이 유행했을 때 코웃음을 쳤다. 뭐 이유 여하를 떠나, 그냥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록이 죽다니 무슨 개소리야…
1990년대 중학교 교실은 크게 세 파로 나뉘었다. 한 절반 정도는 ‘별이 빛나는 밤’을 매일 들으며 이문세, 이상은, 신성우, 김원준, 015B 등 다양한 한국 음악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 (가요라는 말은 ‘방화’처럼 비하의 의미가 있으므로 난 쓰지 않는다) 나머지 절반은 본 조비, 머틀리 크루, 포이즌 등 한국에서 L.A 메탈이라 불렸던 ‘헤어 메탈’을 좋아하는 사람, 메탈리카와 메가데스, 아이언 메이든 등 폭주기관차처럼 달리는 파워 메탈과 스래쉬 메탈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양분되었다.
헤어 메탈 파와 스래쉬 메탈 파는 틈만 나면 ‘본 조비가 겁나 잘 나간다’, ‘메탈리카 제임스 헷필드가 기타로 본 조비 머리를 찍었다’, ‘오지 오스본이 무대에서 박쥐 머리통을 물어뜯었다’ 등 시답잖은 주제로 옥신각신하며 싸워댔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반항'으로 대변되는 어떤 ‘연대감’ 같은게 있었다.
우리는 어른들이 욕하고 싫어하는, 소위 ‘딴따라’라고 비하하며 손가락질할 만한 뮤지션들이 하는 음악을 좋아하고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교문 밖을 나서면 메탈 티셔츠와 가죽점퍼를 입고 워크맨을 귀에 꽂은 채 데빌 핸드를 하고 무리 지어 걸어가는 소심한 반항의 연대. 교복을 입고 운동화에 화려한 색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귀싸대기를 맞고 운동장을 돌아야 했던 암울한 시기에 그것만큼 위안이 되는 것이 없었다. 무대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고 마시던 맥주병으로 기타를 치고, 맘에 안 드는 기자를 마이크대로 거침없이 쥐어패 작살을 내는 마초적인 이미지를 동경했다.
대학에 와서 군대를 다녀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우리와 친구들은 여전히 록 음악에 열광했다. 때마침 서서히 한국에 내한하는 우리의 힘세고 강한 형들의 콘서트에 아낌없이 돈을 뿌려댈 재력도 갖췄겠다… 무대에서의 멋진 모습과 여전히 반항적인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감동했지만 뭔가 서글픈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미 그들의 음악은 차트에서 정점을 찍었고, 그들은 서서히 내려가며 차트에서 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조를 보인 것이 바로 ’Grunge is Dead’와 ‘Rock is Dead’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을 때다. 신서사이저 시퀀싱이 도입되고 EDM사운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록밴드들이 조금씩 인기를 얻을 때 ‘거봐. 록이 EDM도 다 포용하잖아!’ 생각했지만, 사실은 힘 빠진 록에 EDM이 수혈을 해주고 있던 것은 아닐까?
이제 우리가 생각하는 거친 형님들은 투어에 의존하며, 옛 추억을 살리기 위한 촉매로 새 음반을 발매하지만 그 노래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꼬장꼬장한 할아버지가 되었다. 이제 차트를 주름잡던 솔로 기타리스트들은 ‘기타 클리닉’ 등으로 한국에 올뿐, 더 이상 콘서트를 열지 않는다. 그 시절 음악을 재현하는 Greta Van Fleet이나 Alabama Shakes 등이 가끔 세간에 오르내릴 뿐, 더 이상 새로운 록음악의 신성이 나타나지 않은지는 한참 되었다. 이제 정말 록은 임종에 가까워지고 있는 걸까?
보통 이렇게 거창하게 어젠다를 내밀었으면 ‘그렇다! 록은 다시 부활한다!’고 선언을 해야겠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이제는 예전처럼 록 밴드를 보고 기타나 드럼을 연주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고… 록을 비롯한 밴드 음악이 ‘아싸’ 또는 ‘구린 것’으로 치부되는 것도 조금은 있는 것 같고…. 하지만 지금처럼 EDM기반 음악들이 독주하는 시대는 분명히 지나가고, 다른 대안이 올 것이. 세상을 뒤흔들던 록밴드들이 희미해진 것처럼.
2000년대부터 록의 인기가 서서히 내려앉은 것은, 그들이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펑크록의 시조 섹스피스톨즈가 핑크플로이드를 ‘공룡 록 밴드’라 저격했던 것처럼, 이미 1990년대 말부터 2000년까지 록밴드는 더 이상 차고에서 합주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음악 생활을 이어가는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된 뮤지션들이 아니었다. 당시 불던 록밴드 붐을 타고 음악 천재라는 사람이 록밴드 씬에 뛰어들었으며 버클리나 줄리어드 등 최고의 음악학교 졸업생도 밴드를 만들어 필드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위의 사진을 보라. 이제 더 이상 록 밴드는 거친 반항아의 상징이 아닌 가진 자의 상징이 되었다. 지금도 전 세계 공연 수입 상위권에는 대형 록밴드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뭔가 일탈하고 싶고 반항하고 싶은 사람들은 가진 자 대신 다른 대안을 찾게 된다. 2010년 부근부터 불기 시작한 EDM 열풍은 당시의 분위기와 딱 맞는 대안이었다. 소프트웨어 플러그인들이 몇십 개씩 돌아갈 정도로 개인용 컴퓨팅이 발달한 세대의 뮤지션은 사람 모으는데 시간 뺏기고 이리저리 치이는 밴드 대신, ‘나인 인치 네일스’의 ‘트렌즈 레즈너’처럼 자기 방 한구석에서 자기만의 음악을 하기 시작한다. 이런 작업방식에 가장 어울리는 장르는 EDM이다.
요즘 세대들은 치고 패고 거칠게 살아가는 록 뮤지션 대신, 트렌디한 이미지에 즐겁게 파티를 즐기는 이미지의 EDM 뮤지션들을 그들의 영웅으로 삼고 있다. 헤드뱅잉을 하고 스크럼을 짜는 공연 대신 빵빵하게 울리는 트랩비트에 샴페인과 맥주, 와인이 가득한 곳에서 온몸을 흔드는 파티를 택한다. 한국에서 1987년 이후 태어난 세대들은 록밴드 대신, ‘저것들 공부나 하지’ 욕하던 HOT나 젝스키스로 시작된 아이돌의 이미지가 오히려 일탈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아이돌 춤 등 방송 댄스를 카피하는 것이나 록음악 팬들이 카피밴드를 하는 것이나 비슷한 것이겠지.
하지만 BTS와 EXO, 블랙핑크 등 아이돌 음악이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이제 EDM 기반 댄스 뮤직 뮤지션 역시 ‘가진 자’가 되었다. 세대의 아픔을 대변하며 신랄하게 개기는 것이 아닌 성공한 기득권 층이 되어버린 이상 앞으로 뭔가 개기고 싶은 세대들은 또 다른 대안을 찾게 될 것이다.
물론, 그게 록 음악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꺼져가는 록 음악도 불씨를 살려볼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불철주야 악기연습하고 음악을 만들며 노력하는 뮤지션들이 있는 이상, 아직도 록에게는 기회가 있다고 희망을 걸어본다. 지금도 지하 연습실에서 힘들게 연습하고 노력하는 록 뮤지션들이여, 힘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