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밀대 아니고 우미관 아니고 우래옥

서울 평양계 양대 흐름 중 한 축 담당하는 소고기 간장 육수

by Francis

꼭 그러라는 법이야 없지만, 대체로 남한의 평양냉면은 네 가지로 정리된다. 앞서 ‘문파의 일대종사, 논현 평양면옥’에서 밝힌 평양면옥이 속해있는 의정부 파북한과 가깝고 까나리액젓으로 간을 해 먹는 백령도 파, 해물 육수에 육전을 올리는 진주냉면 파, 그리고 의정부 파와 함께 서울 평양냉면계를 양분하는 우래옥 파가 그 4대 문파. 그러나 독립 후 서울의 냉면 문화를 주도한 건 우래옥 파로 1946년 문을 열어 무려 지금까지 70년 넘게 서울 종로구 주교동 그 자리에서 영업하고 있다.

IMG_2398.JPG 거대한 연회장 같은 우래옥의 2층 계단

우래옥은 지금도 창업주와 같이 일한 전무 김지억 씨가 가끔 나와 일을 할 정도로 창업자들이 열심히 운영한 노포로 처음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우미관’처럼 거대한 계단이 보이는데, 실제로 이곳은 연회장으로 이용되던 곳을 인수해 고쳐 사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래옥의 메뉴는 한국식 고급 소고기집 구성. 불고기가 유명한데 1인분 35,000원으로 그나마 2인분부터 주문할 수 있다. 생갈비는 5만 원이 넘으니 이곳에서 고기를 먹으려면 비트코인 터진 친구를 대동하도록 하자. 냉면이 유명한 만큼 냉면만 먹으러 오는 손님도 많은데, 냉면마저도 14,000원으로 그러지 않아도 비싼 평양냉면의 평균가보다 2,000~3,000원 더 비싼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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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우래옥인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그릇이다. 어딘지 잘 모르겠는데 사기그릇에 냉면이 나온다면 우래옥 아니면 잠실새내 평가옥이다. 이때 고명에 울긋불긋한 고추가 보이면 평가옥이다. 이즈음 해서 우래옥 파 육수의 특징을 살펴보자. 우래옥 육수는 맑디 맑은 의정부 파와는 달리 간장의 갈색이 국물에 돈다. 육수를 한 모금 마셔보면 짙은 쇠고기 육수 향과 함께 뭇국의 냄새도 살짝 난다. 약간 새콤한 과일맛이 도는 것은 배의 단맛과 김치 신맛. 특히 우래옥은 100% 소고기로 육수를 내기 때문에 가격이 더 비싼 것 같다.

IMG_2412.JPG 달걀 따위는 없음. 무와 김치 약간, 소 사태와 양지 고명이 우래옥의 특징. 저 국물 마시고 싶다

그냥 국물 맛을 봤다면 면을 잘 푼 다음 국물을 다시 한 모금 마셔보길. 다른 평양냉면 집보다 함량이 높은 메밀면 덕분에 구수한 맛도 추가된다. 아, 일반 우래옥 파와 우래옥의 고명이 또 다른 점이 있는데, 바로 달걀. 우래옥 냉면에는 원래 달걀이 나오지 않으니 너무 야속하게 생각하지 말고 우기지도 말자. 계란 뭐 그까이꺼. 살포시 썬 배와 고기, 무채가 보이고 계란 지단이 없으면 우래옥이다.

이제 국물을 맛봤으면 고명의 김치와 배, 고기를 면과 함께 집어 국물에 푹 담갔다가 한입 가득 넣고 우걱우걱 씹는다. 첫 입은 꼭 이렇게 먹어줘야 우래옥 냉면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걸 한 입에 욱여넣어도 함량 높은 우래옥 메밀면의 구수한 맛은 그걸 뚫고 나온다. 이렇게 먹다 보면 육수가 금세 떨어지는데 경험상 육수는 추가할 수 있으니 걱정 말고 팍팍 먹자.

혹시 이곳에서 불고기 등을 먹었는데 냉면을 맛보고 싶다면 둘이 한 그릇을 시켜 반으로 갈라달라고 하자. 이 ‘맛보기 냉면’ 스킬은 평양면옥도 통하는데 역시 평양면옥과 마찬가지로 고기 등 비싼 메인 요리를 먹을 때만 해준다.

IMG_6843_Original.jpg 김치말이 냉면도 은근 맛있음. 아 침 고여

늘상 이야기하지만 평양냉면은 입맛에 따라 호불호가 달라서 친구를 데려오기 영 껄끄럽다. 혹시 평양냉면 초심자를 우래옥에 데려왔다면 ‘김치말이 냉면’을 시켜주자. 이건 우래옥 냉면에 새콤한 배추나 얼갈이 물김치와 김치 국물을 말아주는 것. 이거는 평양냉면 초심자도 맛있게 먹을 수 있고, 그것대로 엄청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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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고기 맛은 어떨까? 뭐 어때. 맛있겠지… 하지만 궁금해 시켜보려 했지만, 혼자라는 한계가 분명했다. 당연히 불고기는 1인분 주문이 안되고, 5만 원짜리 갈비나 생등심 역시 (어차피 1인분 주문도 안되지만) 도저히 못 먹겠고, 물어보니 제일 싼 염통구이와 혀밑 소금구이는 1인 주문이 된다고… 그러나 그래도 31,000원. 염통은 떨어졌대서 시켜본 혀밑 소금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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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먹지 말자. 냉동에 질기기까지. 아 이거 시키니까 찬 쫙 깔리는거 하난 좋더라

이런, 냉동이네… 게다가 질기기까지 하고, 꼭 고기를 먹고 싶다면 그냥 일행 꼬셔서 불고기를 먹거나 과감하게 갈배/생등심을 먹자. 혀밑 소금구이 돈아깝구로… 내년 생일날은 꼭 혼자 가서 갈비 2인분에 냉면과 소주로 코가 삐뚤어지갔어.


어쨌든 우래옥의 냉면만은 정말 맛있다. 나는 우래옥처럼 간장 향이 나는 비슷한 피양옥이나 배꼽집의 냉면 국물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우래옥 육수만큼은 완냉을 때릴 정도로 아주 좋아한다. 좀 비싸기는 하지만 평양냉면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 번쯤은 드셔 보시길. 아 침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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