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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Nov 27. 2022

내 얼굴에 꼭 맞는 안경

내돈내산 안경 맞추며 느낀 마케팅적 방법론 세 가지

안경 쓴 사람들의 3대 악재, 첫째는 큰 얼굴입니다. 아무리 예쁜걸 발견해도 얼굴에 맞지 않으니 마음에 드는 테를 찾는게 쉽지 않거든요. 두 번째는 낮은 콧등. 세 번째는 튀어나온 광대. 네. 그 세 가지에 저는 모두 해당됩니다. 젠장.


뭐 제가 패션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건 아니지만, 보통 스니커와 안경에 조금 힘을 주고는 합니다. 그런데 안경 악재 세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보니, 맘에 드는 안경 찾기가 쉽지 않아요. 보통 제일 큰 사이즈 좌우를 억지로 벌려 쓰고 코받침이 낮으면 실리콘을 붙이거나 억지로 코받침을 만드는데 영 태가 좋지 않습니다. 살이 찐 탓도 있지만 볼이 나와 있으니 안경알 아랫쪽은 자꾸 지저분해지고요. 그러던 요즘 지인의 스몰 토크를 들었습니다.


저 내일 3D 스캔으로 안경 맞추러 가요


어라? 그럼 내 머리통에도 맞는 안경테가 있겠네? 업체 명은 ‘브리즘’. 얼른 검색해 보니 잠실에도 매장이 있구나. 예약 하려니 이틀 후 비는 상담시간이 있어 찾아가 봅니다. 잠실 매장은 롯데월드 아이스링크 부근에 있는데요. 잠실역에서 보통 걸음으로 10분 이상 걷고 헤멜 생각 하셔서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합니다.

상담은 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Face Ruler’라는 정밀 기계를 이용해  내 얼굴을 정확히 스캔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한 1~2분 이리저리 얼굴을 스캔하며 결과값을 보여주는 안경사. 참, 브리즘 상담은 모두 숙련된 안경사가 해주는 것 같아요. 조근조근 친절하게 제 얼굴 구조를 설명하고 테 샘플을 보여주십니다.

테는 흔히 이야기하는 뿔테와 티타늄 금속 테 두 가지가 있는데요. 뿔테는 앞면만 3D로 사출한 폴리아미드 재질이고 다리 부분은 금속입니다.


이제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뿔테는 한 20가지, 금속 테는 3가지 정도가 있는데 디자인은 계속 늘어날 예정이라고 해요. 저는 올리브그린 뿔테를 골랐는데 낮은 코를 보강하기 위해 코받침 높이를 높이고 간격을 좁혀 제 얼굴에 딱 맞도록 커스텀했다고 하더라고요. 튀어나온 볼이 닿지 않도록 안경알 옆면의 각도를 약간 세워주고요.

상담을 하는 중 요즘 노안이 온 이야기를 하니 그 현상에 대해서도 굉장히 자세히 검사해주고 상담을 해줍니다. 병원에서 몇 만원 내고 하는 시력검사보다 두 세배는 정밀한 느낌? 제품을 팔기 위해 영업을 한다기보다는 정말 전문가에게 컨설팅을 받는 기분이었어요. 마침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노안 렌즈 ‘누진다초점렌즈’가 아닌, 스마트폰을 보는 각도인 아랫 부분에만 도수 조정이 들어간 이중 초점렌즈가 있다고 해서 한 번 써보기로 했어요.


이렇게 상담을 하는데 1시간 넘게 걸린 것 같네요. 일단 차분한 말투에 엄청 친절하고, 장사라기 보다는 정말 컨설턴트 느낌으로 상담해 주십니다. 상담은 무료지만 저처럼 이미 반쯤 마음을 먹고 간 사람은 바로 결제를 할 수 밖에 없겠더라고요.


결제하면 보통 2주 후에 나온다고 이야기하는데 이건 마지노선. 보통 조금 더 일찍 나온다고 하는데요. 홈페이지에서 내 안경의 제작 과정을 단계별로 확인해 볼 수 있으니 갑갑하진 않아요. 전 일주일 만에 제작이 끝났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제품을 찾으러 가서도 썼을 때 이상이 없는지, 안경이 잘 맞는지 확인해 주고요. 두 달 내에 뭔가 불편한 점이 생기면 어떻게든 피팅과 시력을 맞춰준다고 해요. 첫 구매라면,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아예 전액 환불도 해준다네요.

저에게 100% 갖다 맞춘 안경을 써보니,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편합니다. 진짜 만족스러워요. 3D 프린팅한 테의 마감도 좋고 염색도 잘 돼있고… 아마 내년쯤 다른 안경이나 선글라스 같은걸 하나 더 맞추지 싶습니다.

손오공 머리에 금고아처럼 조여대던 안경 다리는 그냥 옆에 슬쩍 얹어놓은 듯 편하게 감겨요. 코받침 위치도 딱 좋고 흘러내리거나 하지도 않네요. 저는 따로 피팅 조정을 하거나 할 필요도 없더라고요. 이중초점렌즈라 이제 스마트폰 볼 때 안경 벗을 필요도 없고….


브리즘의 상담사와 이야기를 하면서 홍보 마케팅적 말하기에 대한 세 가지 인사이트를 발견했어요. 첫 번째, 내게 시간을 내주는 사람을 상대할 때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보통은 예약을 하고 브리즘에 방문하는데요. 그 사람들은 이미 그곳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낼 것을 각오하고 찾아오는 사람입니다. 다른 안경점에선 많은걸 보여주고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주려고 하는데 브리즘 상담사들은 굳이 서두르지 않더라고요.


예약 방문한 고객들은 이미 20~30분 이상 시간을 빼서 오는 셈. 저와 이야기를 나눈 브리즘 잠실 롯데월드점 ‘Chloe’ 역시 그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제 얼굴의 골격을 바탕으로 안경테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Chloe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아직 초기라 제품 라인업이 그리 많지 않은 탓도 있지만, 뭔가를 권하거나 하지 않고 제 결정에 약간의 보조와 조연을 해주는 역할에만 충실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저도 오히려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보고 결정할 수 있었어요.


둘째, 브리즘 상담사들은 부정적인 용어를 애초에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어요. 내 얼굴에 딱 맞추는 안경 상담을 하는데 굳이 내 단점을 감추면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아 ‘얼굴이 커서 맞는 안경테를 찾을 수 없다’고 정확히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Chloe는 ‘고객님에게 맞는 안경테 사이즈를 제작할 수 있고요’ 등으로 부정적 언어 없이 충분히 소통할 수 있도록 말을 바꾸더라고요. ‘제가 좀 뚱뚱해서 볼이 많이 나와서 렌즈에 닿는다’는 말도 ‘옆으로 볼 때 눈 초점면과 광대의 거리가 좀 있으신 분’ 정도로 잘 돌려 이야기하고요.


제가 노안 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근거리 시력 피로’ 정도로 잘 돌려서 표현하니, 왠지 노화의 상징같아서 찜찜하던 다초점 렌즈에 대한 거부감도 줄어들어 기꺼이 지갑이 열리더라고요. 아무래도 이정도면 본사 서비스 메뉴얼에 부정적인 단어에 대한 대응 가이드가 있지 않나 합리적 추론을 해봅니다.   


세 번째, 별거 아닌걸 별거로 잘 포장해내는 재주가 있더라고요. 안경을 살 때 안경 닦는 극세사 천과 케이스 정도는 기본으로 주고, 안경점에 따라 몇 가지 안경 정비를 위한 용품을 끼워주기도 하잖아요. 브리즘에서는 "안경 전용 ‘smart care kit’를 드립니다~"라며 박스를 하나 더 주더라고요. 왠지 좀 특별해 보이는군요!

이걸 열어보면 여벌의 극세사 천과 유분을 제어하는 렌즈 클리너 티슈, 안경용 드라이버가 들어있어요. 근데 사실, 이거 안경점에서 달라면 전부 아무렇지도 않게 공짜로 주는 것들이거든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말 처럼, 안경쓴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는 안경닦이 천과 알코홀 티슈, 작은 1자 드라이버를 ‘smart care kit’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니 그 자체로 그럴싸한 굿즈가 되어버리네요? 브리즘이 한국 최초의 안경 SPA 브랜드 ‘알로’ 창립자가 차린 브랜드라더니, 홍보 마케팅 쪽에서 여러 가지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자기 얼굴이 엄청 크지는 않더라도, 자기 얼굴에 꼭 맞는 나만의 안경을 가져보시고 싶은 분은 브리즘 방문을 추천합니다. 혹시나 광고 글로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는데, 1도 협찬 없는 내돈내산 후기라는 말로 마무리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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