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ncis Sep 09. 2022

단짠단짠 제주 자전거 여행

일과 여행, 여행과 일

비행기에서 내려 자전거 샵으로 향한다. 적당한 녀석을 빌려 잡아 타고 공항 뒷길을 따라 달린다. 눈시린 햇빛, 시원한 바람. 한 여름 뜨거운 햇볕 아래 라이딩도 제주라면 해볼만 하다. 

애월과 한림을 거쳐 대정리 모슬포를 지나 중문에서 하루를 보낸다. 다음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서 서귀포 시내와 법환 마당을 지나 표선 초입에서 점심을 먹고 조금 더 힘을 내 성산 일출봉을 지나 세화 못미쳐 숙소를 잡는다. 다음날도 역시 가능하면 새벽에 출발해 함덕에서 점심을 먹은 후 조금 더 힘을 내 제주 자전거 샵까지 타이트하게 돌면 2박 3일 230km 남짓의 제주 환상 자전거길 일주가 완성된다. 좀 힘들면 좀 천천히 달려 3박 4일 코스로 늘려 잡아도 되고.


이번 8월, 원래 8월 25일 대학 친구들과의 제주 여행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지만 왠지 또 제주 환상 자전거길이 생각나 3일 먼저 비행기에 올랐다. 이전 ‘제주 환장 자전거 여행’ 포함 일주는 벌써 다섯 번째. 이제는 내비 없이도 갈 수 있는 바다와 아스팔트로 만들어진 제주 자전거길은 왜그리 늘 새로울까? 

이 길을 달리다 보면 뭐 특별한 맛집이나 제주만의 음식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바닷내음 가득한 바다 부근 편의점에서 사발면에 맥주 한 캔. 그것만으로도 느낌적인 필링은 차고 넘친다. 좀 달리다 보면 역시 엉덩이와 사타구니가 쑤셔오는건 할 수 없지. 잠깐잠깐 쉬면서 손으로 주물주물 풀어주면 또 금세 괜찮아짐. 아, 모양새는 좀 빠지니 마사지는 사람들 없는데서 하도록. 


그런데 이번 여행은 좀 특별했다. 갑자기 여행 일정을 늘이다 보니 일을 그대로 떠안은 채 제주로 넘어왔거든. 마침 마감 기간이라, 3일동안 제출해야 할 원고가 무려 여덟 개. 수정 원고는 수시로 들어오고… 이번 여행은 지난 번 일주와는 또다른 대환장 상황이 펼쳐졌다.

아침먹고 한 시간 달리다 전화받고 길거리 벤치에 앉아 한두 시간 일하고, 점심먹고 달리다 얼른 카페 찾아가서 다시 원고 추가하고 수정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부랴부랴 달려 숙소에서 씻은 다음 맥주 한잔 하려면 다시 원고 수정을 하는 여행…. 이것은 출장인가 여행인가…. 이런 여행이 사흘 내내 계속되었다. 그 이후 친구들과의 일정에서는 클라이언트의 업무 연락 한 번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게 그나마 다행.


일과 휴식은 분리하세요


어지간한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보는 문장이다.  일 할 때는 철저히 하고 쉴 때는 다른 생각없이 쉬어야 휴식의 질도 높아지고 업무의 효율도 올라간다는 말이렷다. 나도 일과 휴식은 분리하라는 말에는 공감하는 편이었는데…. 

하지만 6일간의 두 번째 제주 환장 자전거길 투어+대학 동기 여행을 마친지 2주가 지난 지금, 생각나는 건 전부 일하던 짬짬이 겪은 풍경과 경험들이다. 

제주 해변의 비릿한 아름다움과 끝없이 뻗은 자전거 도로, 일하던 해변 부근 카페의 눈부시게 빛나던  풍경, 급하게 일할 카페를 찾으려다 우연히 맛본 상어 피시앤 칩스 같은 것들만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뭐지?


며칠… 아니 몇분을 고민하니 답이 나오더라. 이거 단짠단짠이잖아? 아름다운 제주 바닷길을 열심히 달리다 갑자기 받게 된 급작스런 업무. 그래도 이런 일을 해야 내가 놀러 다닐 수 있는거니 죽어라 일하자 다다다다~ 힘든 일을 마치고 다시 맞이하는 제주 바다와 각자의 즐거움을 찾으러 온 사람들끼리 모여 풀어대는 신나는 숙소 술자리… 나 같은 프리랜서가 아니면 겪지 못했을 일과 여행의 반복 아닌가. 이런 것들이 이번 여행을 더욱 기억에 남게 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요 며칠 일좀 하려고 하면 어딘가 떠나고 싶고, 자꾸 가만있기 싫었는데… 가만, 그렇다면 생각을 바꿔보자. 집에서도 충분히 이 기분 낼 수 있잖아? 이럴때는 ‘프리랜서 텍스트 노동자’라는 내 직업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집에서 일하다 영 막히면 잠깐 워드 프로세서를 닫아두고 잠깐 자전거로 한강을 돌고 오면 된다. 거꾸로, 을지로에서 터덜터덜 걸어다니며 놀다 업무 요청이 오면, 힙한 카페에서 노트북을 펴고 잠깐 일을 하면 되지. 내가 늘 그랬잖아 일상은 여행이라고. 

사실 텍스트 노동자라는 내 직업이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지 모르겠다. 어디 정규직도 아니니 뭐 퇴직금이나 그런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슬슬 트렌드를 쫓아 가는것도 힘겹고… 음…. 에이, 생각한다고 뭐가 달라지냐. 난 그냥 계속 이렇게 여행하듯 일하고 놀고 먹고 사랑할랜다. 열심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