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리스트 에릭 존슨 등, 퍼즈 사운드에 한해서...
‘홍대는 왜 록이고, 강남은 EDM이지’에서 발전소의 종류에 따른 사운드의 차이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 이야기는 고리짝 인터넷 썰인 ‘발전소별 음질’을 비아냥거리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발전소별 음질’은 2004년에 커뮤니티를 달궜던 ‘건전지별 음색 차이’를 비아냥거리기 위해 쓴 것이라 한다. 그런데, 특정 분야에서 이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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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과 기타리스트에 대한 인기가 매니악한 영역의 음악 팬들 위주로 옮겨가기는 했지만,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메탈리카나 메가데스 같은 헤비메탈 밴드나, 소위 ‘3대 기타리스트’라 불리던 테크니컬 기타리스트들은 앨범만 내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에릭 존슨(Eric Johnson)은 유독 다른 결을 가진 기타리스트였다.
다들 무시무시하게 빠른 드라이브 톤 속주를 무기로 하는 다른 기타리스트들과 그는 확실히 달랐다. 에릭 존슨은 ‘쟁반에 옥구슬’에 비유되는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의 찐 특성을 증폭시키는 유려한 사운드와, 맑고 고운 코드 보이싱을 통해 깔끔하기 그지없는 사운드를 주무기로 했다. 거기에 얹은 펜타토닉 기반 퍼즈 솔로는 또 어떻고….
그는 자신만의 기타 사운드를 위한 명확한 기준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소리 세팅에 누구보다도 민감하다고 한다. 투톤 타바코 선버스트에 메이플 넥을 채택한 에릭 존슨의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시그니처 모델은 픽업 역시 코일 감는 수를 컨트롤해 톤을 세팅했을 정도다. 레코딩이나 라이브에서 독립 전원을 사용하는 등 잡음 유입을 최소화한다는 말도 많다. 거 참…. 이펙터 중 잡음이 제일 많기로 유명한 퍼즈를 쓰는 사람이 말이야. 그래서 그렇게 잡음이 적나?
하여간 그는 이펙팅 페달보드에서 자신이 세팅한 소리를 더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퍼즈 이펙터에는 파워 서플라이가 아닌 9V 배터리만 사용한단다. 그것도 ‘듀라셀’만. 기타 테크니션이 다른 배터리를 세팅하면 바로 알아채고 배터리를 바꿔 달라는 요구를 할 정도.
이걸 그냥 단순한 ‘괴벽’ 정도로 생각하고, ‘역시 음악 하는 사람들은 다 똘아인가 봐’ 하고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에릭 존슨이 진짜 ‘배터리 괴담’ 신봉자인 걸까?
최소한, ‘퍼즈’에서 배터리의 종류는,
사운드에 분명히 영향이 있다.
먼저 퍼즈는 기타 픽업으로 받아낸 톤을 반도체 회로를 통해 증폭시킨다는 점에서는 오버드라이브와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파형의 원음 느낌이 비교적 살아 있는 오버드라이브와는 달리 퍼즈는 신호를 과하게 증폭한 뒤 소리의 상단부를 클리핑(Clipping)해 사각형에 가까운 파형을 앰프로 내보낸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리의 날카롭고 거친 느낌을 더하는 홀수 배음이 더해지며 퍼즈 특유의 소리가 완성된다.
퍼즈는 생산되는 브랜드에 따라 사운드가 다르다. 심지어 같은 퍼즈끼리도 사운드가 조금씩 다른 편이다. 보통 스톰프 페달, 소위 ‘꾹꾹이’를 쓰는 사람들은 교류 전류를 다양한 전압으로 바꿔 보내주는 ‘파워 서플라이’를 사용한다. 그러나 스타일에 따라서는 드라이브나 퍼즈만큼은 특유의 사운드를 내주는 배터리를 쓰기도 한다. 배터리에 따라 전압 특성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퍼즈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데다 소리 ‘예민아씨’인 에릭 존슨은 충분히 배터리를 소리로도 구분할 가능성이 높다.
이 동영상은 악기 커뮤니티 ‘뮬’의 회원인 ‘오리진파츠’ 님이 ‘Gibson Maestro’ 퍼즈 이펙터를 가지고 공급 전압을 변경해 가며 직접 연주한 걸 녹음한 결과다. 직접 들어 보면 내부 회로 전압이 1.87V일 때는 조금 일그러진 톤이던 것이, 차츰 전압을 올릴수록 강하게 찌그러지며 드라이브가 걸리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다만, 에릭 존슨의 ‘듀라셀’ 이야기는 좀 뻥이 더해진 게 아닌가 싶다.
에릭 존슨은 자신의 시그니처 퍼즈 페이스를 사용한다. 이 모델은 초기 퍼즈 페이스를 기준으로 하다 보니 외부 전원 연결 포트나 전압 조정 회로 같은 것은 없다. (지금 확인해 보니 전압 조정 회로는 요즘 모델에도 없다….) 그러다 보니 일부러 개조를 하거나 하지 않는다면, 전원은 전적으로 9V 배터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해외 포럼을 검색해 보면 에너자이저가 초기 전압이 좀 더 높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듀라셀이나 에너자이저나 일정한 전압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게 과연 퍼즈에 유리한 걸까?
퍼즈 페이스가 개발되던 1960년대 말은 ‘망간 건전지’의 시대였다. 알카라인 전지는 1950년대 말에 개발됐지만, 본격적으로 상용화된 것은 1980년대다. 대부분의 퍼즈는 망간 건전지를 기준으로 개발된 만큼, 퍼즈의 고유한 사운드는 망간 건전지를 연결했을 때 가장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낮아진 전압이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이 망간 건전지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알카라인 전지는 망간 건전지에 비해 전압이 세기 때문에 사운드가 확실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현재도 망간 건전지를 생산하는 기타 전문 제조사 ‘댄일렉트로’(Danelectro)에서는 9V 건전지 여러 개를 스택해 페달 파워처럼 사용하는 ‘Danelectro Battery Billionaire’라는 제품을 판매하고, 아예 기타 이펙터용 망간 9V 건전지 제품을 생산하기도 한다. 그 포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Alkaline Battery Sucks Your Tone
아마 에릭 존슨이 투덜댄 것은 ‘왜 망간 건전지가 아니지?’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망간 건전지는 새 전지를 연결하고도 몇 분이 지나야 전압이 안정된다고 하니, ‘왜 새 건전지를 바로 끼웠지?’라는 타박이었을 수도 있다.
일반 리스너 입장에서 소리에 대한 지나치게 크리티컬한 집착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집착은 에릭 존슨 같은 음악가들에게는 큰 영감이 되어, 세상을 빛나게 하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오늘 이 글은 에릭 존슨의 아름다운 음악으로 마치려 한다.
*타이틀 사진 출처 - 'John' 님의 X (https://x.com/haskallcurry/status/1976020087569109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