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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Feb 03. 2021

코끼리를 냉장고에 잘 넣는 법

이제 내가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잘 쓰는 방법을 고민해 보자

코끼리를 어떻게 하면 냉장고에 집어넣을 수 있을까? 경찰의 입장에서 토끼를 심문해 코끼리로 세뇌시켜 넣을 수도 있다. 대학 교수의 입장에 빙의한다면, 석사나 박사과정 대학원생에게 시키면 간단할 일. 1조 번 정도 코끼리를 냉장고로 던지면 그중에 한 번 정도는 성공한다는 양자역학적 해법도 가능하다. 

사실 이 영상의 포인트는 0:20초부터 0:45초까지. 뒤에는 보던가 말던가

전자공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코끼리’라는 세 글자를 Low Pass Filter에 통과시켜 된소리와 거센소리를 예사소리로 전환해 ‘고기리’로 만들고 이를 Circular Right Shift 연산을 거쳐 ‘리고기’로 바꾼 후 증폭률 5인 Op-Amp에 통과시키면 오리고기가 되어 손쉽게 냉장고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은 우리가 남은 반찬을 보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1. 냉장고 문을 연다. 
2. 코끼리를 집어넣는다. 
3. 냉장고 문을 닫는다

이것이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의 전부다. 우리는 이렇게 간단한 방법을 ‘에이, 안 될 거야’ 생각하고 가능성에서 배제해 버리기 일쑤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1번, 냉장고 문을 여는 것이다. 일단 문을 열어야 코끼리를 넣던 돼지고기를 넣던 할 것 아닌가. 

내가 글을 쓸 때 가장 문제가 되는 점도 바로 이것이다. 문만 열면 코끼리를 넣을 수 있는데, 이러저러한 괜한 고민에 냉장고 문을 열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주제를 보고 첫방에 탁 뭘 쓸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면 워드 프로세서 프로그램을 실행도 안 하고 멍때리거나 마감이 닥칠 때까지 노닥거리며 글을 시작하지도 못하는 일이 많다. 자신감이 부족한 걸까? 


그건 내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답시고 전공 공부는 제대로 안 한 데다 제대로 된 문장 교육도 받지 않고 곧바로 현업에 뛰어들어 휘뚜루마뚜루 아무 글이나 써댄 관성 때문일거다. 아무래도 글밥 먹었다고 하기엔 문장력이 한참 모자라고 클리셰 덩어리다. 업력이 몇 년인데… 게다가 시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 문체를 바꿔보려고 여러 가지 시도도 하고 있지만, ‘마감’이라는 타이틀만 걸리면 원래 써오던 스타일로 돌아가 버리니 원…


그러나 나도 장점이 있다. 매일 글을 한 편 이상 써야 하는 회사에서 일했던 만큼 마감시간이 다가오면, 좋던 나쁘던 어떻게든 정해진 주제와 분량의 글을 써낸다. 분량이 많고 적고를 떠나 클라이언트와 약속한 일정 내에 어떻게든 원고를 쫑치는 버릇이 든 탓이기도 하다. 잘 모르는 게 있으면 미친 듯이 자료를 찾아서라도 어떻게든 이해해 그것을 글로 풀어낸다. 그렇다. 난 이미 냉장고 문을 열어젖힌 후 코끼리를 집어넣고 훌륭하게 문을 닫아낸 경험이 제법 있다.

그렇습니다. 마감 시간이 다가오고 머리를 쥐어뜯다 보면 어떻게든 해결은 됩니다. 

학부 시절에는 ‘활자 중독’이라 주변에서 생각했을 만큼 수많은 책을 읽었다. 현업에 있을 때나 현재도 여기저기서 다양한 글들을 읽다 보니 얇고 넓은 잡지식을 많이 쌓았다. 그것을 원고에 잘 엮어 어려운 기술 개념 등을 이해하기 쉽도록 써내 클라이언트의 칭찬을 받은 경험도 많다. ‘공대 출신’이라는, 내가 약점으로 생각했던 전공 역시 기술 관련 글을 쓰는데 생각보다 도움이 되는 일도 있고.  


이제 내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걸 알았으니 앞으로 내 글쓰기를 위해 고쳐나갈 일의 윤곽이 어느 정도 보인다. 이제는 그냥 넣지 말고, 코끼리를 냉장고에 '잘' 넣을 차례다. 일단, 내가 가지고 있는 8색 문체 팔레트를 32색의 다양한 문체 팔레트로 확장하는 일을 해봐야겠다. 그 방법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다양한 글들을 더 읽으며 얻은 문장들을 내가 쓰는 글에 녹여 시험해 봐서 내 팔레트로 넣으면 된다. (표절하겠다는 것 아님 주의)


그리고 내 필력이 모자란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보려 한다. 더 다양한 주제의 콘텐츠를 읽고 반짝이는 부분들을 메모해 더 다양한 저변의 인사이트 들을 담아 시야를 넓힐 수 있도록 해야겠다. 넷플릭스 보는 시간은 좀 줄이고…. 한 달 동안 이런 고민을 계속할 테니, 최소한 작심 33일 정도는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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