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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Feb 23. 2021

보건교사 안은영, 한국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다

대한민국 다 족구하라그래





***이 부분은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에는 응모하지 않았지만, 그냥 넷플릭스 스토리텔러인 것처럼 보이고 싶어서 써본 프롤로그입니다

***이 글은 스토리에 대한 요약은 들어있지 않습니다. 제 뇌피셜이나 혹시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실 때 새로운 시각을 가지실 수도 있으리라는 취지로 작성했습니다. 거꾸로, 괜스레 몰입이 안될 수도 있고요. 


<보건교사 안은영>은 기본적으로 슈퍼맨 같은 히어로물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귀신이나 혼령이 눈에 보이는 운명을 타고 난 안은영. <보건교사 안은영>은 목련고등학교에서 보건교사로 일하며 자꾸 발생하는 젤리를 무찌르는 비밀 퇴마사 안은영의 활약을 담은 6부작 드라마이다. <친절한 금자씨>의 스크립터로 출발해 <미쓰 홍당무>와 <비밀은 없다>를 통해 뒤틀리고 희한한 세계를 보여준 이경미 감독은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도 그 특기를 발휘한다. 이번 작품에서 보여준 이경미의세계는 바로, 민주주의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이다. 

드라마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멋진 고래 젤리. 저건 대체 어떤 욕망들이 뭉쳐서 거대해진걸까

드라마의 주 무대인 목련고등학교는 ‘젤리’로 대변되는 개인의 욕망과 뒤틀어진 본능들이 모이는 곳. 학생들의 건강을 위한다는 겨드랑이 림프절 치기와 하하하 웃기 등의 단체 활동은 모두 젤리들의 힘을 증폭하기 위한 주술과도 같은 것이다. 

내 몸이 좋아진다, 좋아진다, 좋아진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욕망을 젤리로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그 젤리가 영향을 주어 친구들과 뭉쳐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도발을 부추긴다. 이러한 교육을 받으며 학생들은 점점 자기도 모르게 미쳐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들 보기에는 어른이 요술봉 들고 파닥거릴 뿐인 젤리 퇴마를 계속해야 하는 그녀는, 그냥 피곤하다. 씨발.

이런 난리통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젤리를 보는 보건교사 안은영뿐. 그러나 그녀도 이걸 원해서 하는 게 아니다. 별 수 있나. 젤리를 보고 무찌를 수 있는 게 자기뿐인데. 자기가 구원해 준 몇몇 학생들만 알아줄까 말까 하는 이 귀찮고 짜증나는 일을 하는 그녀의 일상은 그저 피곤할 뿐이다. 드라마 인트로에서 안은영이 던진 말이 어찌 보면 그녀의 진심이다. 


내가 보는 세상은 비밀이다. 
그리고 나는 아무도 모르게 남을 돕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씨발.


드라마의 목련고등학교는 대한민국을 상징한다. 어쨌든 해방은 왔고 전쟁을 겪기는 했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현대를 맞이할 준비를 차근차근해 나가고 있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터져 나가는 그들의 열망을 컨트롤하고 적당히 눌러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집단적인 통제. 바로 학교로 대변되는 집단 우민화 교육이다. 때마침 시작된 한국의 군부정권은 국민들의 통제할 수 있을지 모를지 모를 욕망을 국민 전체를 억압하면서 세뇌하고 훈육하는 방법으로 눌러 놓아야 했다. 

정세랑 작가와 감독은 이러한 정권의 억압은 두 가지로 비유해 놓았다. 나이든 기성세대는 '안정'과 '유지'로 컨트롤한다. 화수의 한의원에서 침맞고 찜질받으며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 노인네들이 그 상징. 젊은 기성세대는 교육을 통해 그들처럼 되도록 우민화 시켜야 한다. 압지석으로 괴기를 누른 땅에 터를 잡아 올린 목련 고등학교다. 압지석이 흔들리자 1화 말에서 2화에 나오는 그 괴물이 바로 이 드라마의 상징을 알리는 신호탄. 

억눌린 욕망은 언젠가는 저런 환공포증스런 괴물로 변화할지 모른다. 근데 가만보면 귀여운거 같기도 하고...

젊은이들의 피를 먹고 자란 그 괴물과, 계속 나타나는 젤리들과 옴은 박정희 시절의 군사교육, 전두환 시절의 우민화 정책을 통해 억눌렸던 민중들의 뒤틀어진 욕망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안은영은 학생들이 다치지 않도록 자기 눈에만 보이는 이 젤리와 옴들을 잡느라 바쁘지만, 사실 자기도 딱히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다. 남들이 잘 보지도 못하는 기운을 보는게, 아무리 귀여운 젤리 모습이어도 좋겠나. 


하지만 이미 알아버린걸 어떡해. 이런 젤리와 괴물에 맞서 싸우는 안은영의 모습은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당시 학습을 통해 시대정신을 깨닫고 김영삼 정부 이후 정치 사회 운동에 뛰어든 운동권 열사들과 비슷하다. 모르면 몰랐지, 한 번 알아버렸으면 한평생 마음이 쓰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부당함을 보는 영안이 틔어있지 않은 친구들은 박정희가 아무리 반대파를 숙청하고 전두환이 자기 뜻에 맞지 않는 국민들을 죽여대는데도 장기하 노래에 미친 것처럼 ‘별 일 없이’ 살아갈 뿐이다. 이런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안은영… 안은영이라고 이런 상황이 안무섭고 귀찮지 않겠나. 그러니 절로 씨발이 나오지. 

학생들이야 젤리때문에 미쳐가건 말건, 난 돈이나 벌어야지...

이런 아사리판에서 안은영과 비슷한 힘을 가진 사람들은 아무도 힘을 보태지 않고 되려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 한다. 박종철 열사가 자기를 보호하려다 죽었는데도 당시 그를 방조 혹은 지시한 정부와 혈통을 같이 하는 민정당에 붙어먹은 박종운처럼, 젤리를 보는 일광소독이나 HSP 같은 드라마 내 조직들은 안은영이 땀 흘리는 싸움판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그들의 이익만을 위해 산다. 젤리를 보는데도 학생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는 HSP 소속인 오리 선생 한아름은 오직 자신과 다른 길을 가는 안은영의 일거수일투족에만 관심이다. 젤리와 옴을 캡처해 팔아 돈을 챙기려는 HSP에 소속된 영어 선생 매켄지는 2021년 극우 유튜버와 ㄱㅅㅇ 같은 정치 장사꾼들을 떠오르게 한다. 

학교 창립자의 조카이자 유일한 응원군 홍인표 선생은 그나마 그녀의 힘을 충전시켜 주면서 안은영을 힘나게 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다. 그러나 홍인표 선생이 힘을 주고 보호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건 안은영 뿐만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알게 된 안은영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어딘가 한쪽이 죽어야 끝나는 싸움에,
한문이랑 내가 껴 있는 거야


이렇게 고생하는 안은영을 알아주는 학생은 극소수. 안은영이 목숨 걸고 도와준 해파리와 오승권, 허완수와 강민우 등 몇몇 학생들을 제외하면, 그녀가 싸우는 모습은 젤리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겐 그저, 친일파와 독립투사를 비교하며 ‘친일파들이 이렇게 큰 집에 살 때 독립투사는 어떻게 살았길래 현실이 이러냐’며 비아냥거렸던 한 웹툰 작가의 말처럼 다 큰 어른이 요술봉 들고 팔딱거리는 우스운 몸짓을 하는 보건교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래저래 안은영은 힘들고 지친다. 

속이 쓰릴 때까지 옴을 다 잡아먹으면, 전 사라지는거에요

옴이 창궐하면 나타나 옴을 모두 잡아먹고 사라진다는 옴잡이 백혜민을 보며 장렬히 목숨을 내던진 독립투사와 순국선열을 떠올렸다면 오버일까.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 장렬히 산화한 전태일 열사와 박종철 열사, 이한열 열사처럼 옴이 창궐할 때마다 옴을 먹어치우는 옴잡이 백혜련은 슬프지만 체념한 표정으로 옴을 먹고 사라지는 자신의 운명을 덤덤히 받아들인다. 씨발노무 운명 때문에 피곤하게 일해야 하는 안은영은 이마저도 구해주려고 애를 쓰지만 옘병할 세상 그게 어디 쉽나. 


게다가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노래처럼 막상 안은영이 믿고 따르던 화수 언니는  ‘태극기 부대’와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케어하는 척하며 세뇌시키고 있는 것도 모자라 이 사태의 원흉 중 하나인 일광소독의 대표이다. 결국 목련 고등학교의 젤리 사단의 원인은 원조 나쁜놈과 그를 이용하려는 신흥 나쁜놈 둘의 충돌이다. 창립자 홍진범이 억지로 학생들을 통치하고 힘을 기르기 위해 기운을 누르는 압지석을 놓고 를 목련 고등학교를 지어 젤리를 통해 힘을 키우려는 욕망을 알아채 그것을 이용하려는 일광소독과 HSP의 욕망이 부딪치면서 일어난 것이다. 아무리 안은영과 옴잡이가 100명씩 있어도,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압지석이 없어지고 학교가 박살난 후 새로 세워지면서 평화를 찾게 된다는 <보건교사 안은영> 1 시즌의 결말은 지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극단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욕망을 매개로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목련고등학교’라는 공간은 그만큼 답이 없는 공간. 이들이 대립하는 가운데 계속 젤리와 옴이 늘어나고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안은영과 백혜련, 학생들 뿐이다.  


이경미 감독은 <보건교사 안은영>을 통해, 안은영과 옴잡이 백혜련으로 대비되는 소수가 피를 흘리고 희생해야만 정상회될 세상이라면, 이노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아예 한 번 싹 다 폭발하고 갈아엎어지는게 낫다는 극단적인 염세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드라마에서는, 갈아엎으니 모든게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나. 

목표를 이룬 안은영은 허탈해 하긴 하지만 결코 멈춰서지는 않는다. 마지막 씬에서 장래디가 '엄마가 귀신을 본다'는 말에 체념과 희망의 뒤섞인 표정을 짓는 안은영. 시즌2에서도 그녀는 또 젤리들에게 시달리겠지...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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