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진담

다시, 수원 화성.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by 길문

추웠다. 쌀쌀한 정도가 아니다. 날씨가 이러니 아직 봄꽃들이 만개하지 못했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 딱 그 기분이다. 2년 전인가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그 계절 어디쯤 난 이곳에 있었다. 선선하게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긴 무수히 많은 연들을 보며, 하늘에 날리는 연들을 보러 온 듯한 착각이 든 날. 그날은 오늘처럼 하늘이 뿌옇지 않았다. 그땐 동장대 쪽이었지, 봉돈도 봤었고.


오늘은 혼자가 아니어서 좋았다. 때론 혼자도 좋지만, 때론 혼자라서 싫었다. 결국 사는 건 혼자라는 누구나 뱉는 말들이 싫었다. 함께한다는 게 좋았다. 오늘만큼은 낯설었는데, 낯설지 않은. 이건 소속감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혼자라는 게 싫어서 우린 그렇게 소속감을 만들어왔는지 모른다. 이건 이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게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지.


화홍문 뒤편풍경

사진 때문이었다. 이곳에 온 게. 사진은 이제 누구나 찍는 것.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사진은 아무나 찍는, 그리 특별한 장기가 아니지만, 이걸 자기 느낌대로 찍고 싶다면 좀 다른 차원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좀 더 내 감성이 들어간 사진. 남들과 다르게 세상을 보는 듯 스스로 착각에 빠지는 것도 나쁘지 않아서 시작했을 것 같은 사진. 이것도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것 같다. 아직도 손에 익숙하지 않은 사진기를 들고 이리저리 걷던 날, 파란 하늘이었다면, 이런 푸념을 내뱉기는 이미 늦었다. 왔으니, 찍어야 한다. 그리고 난 초보다. 오늘 첫걸음을 딛는 날이다.


자동으로 팍팍 찍어대던 스마트폰, 이게 익숙했는데 이 습관을 바꾸는 것이다. 당연히 사진기가 달라야 한다. 익숙한 습관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그냥 찍은 사진보다 좀 더 정성이 들어간 사진이 더 좋으리란 법은 없다. 이건, 시간이 해결해 줄 텐데 더불어 노력도 필요하겠지. 그 초보가 북수문(화홍문)과 동북각루(방화수류정) 근처, 소위 야경 핫플레이스에 온 것이다. 음, 이건 나들이었다. 결론이 그렇다는 것이고. 동장대부터 성곽 따라 걷는 분위기 하곤 전혀 달랐다. 여기에 수원 행궁까지 넣으니 수원 화성의 핵심 장소가 여기였다. 사람도 가장 많았고. 민가와 상가와 세계문화유산이라니. 뒤죽박죽 같은데, 이게 절묘하다. 개천변 카페들도 입을 활짝 벌리고 봄맞이를 하는데, 정작, 봄은 실종이다. 어디로 갔나? 실종 신고할까?


시작은 북수동 성당이었다. 천주교 성지. 신자가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았을 성지라니. 그러고 보니 수원 화성의 정중앙 성당이 위치해 있다. 이곳이 천주교 신자들을 저쪽 세상으로 보낸 토포청(중영)과 신자들을 심문하던 이아(화청관)가 자리 잡던 곳. 그래서였다. 천주교 박해 시기에 수원에 끌려와서도 많은 신자들이 세상을 등졌는데, 때문에 이곳 성당의 주보성인이 '미카엘 대천사'라니, 그것도 도착해서야 알았다. 악을 물리치는 대천사. 이때 악이 누굴까? 성당 입구 오른편엔 미카엘 대천사라고 쓴 성당 본당이 있고 왼편엔 비교적 최근에 진 건물 소화 초등학교가 있었다. 성당 옆에 웬 초등학교?


구조가 여느 성당과 달랐다. 그 초등학교 옆 건물은 석조건물로 운치가 있었다. 이게 1934년 설립된 소화학술강습회 건물. 이곳 1층에는 뽈리 신부를 기념하는 화랑이 있는데, 그가 이 학교를 설립을 했다고. 이곳 성당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르메르 신부가 세웠다. 그냥 야경 찍는다고 따라왔다가 알게 된 역사. 믿는 자가 복을 많이 받는다니 더 믿고 싶었다. 뭘?


포근했던 느낌은 건물이 아니었다. 후줄근한 옷차림과 약간 벗어진듯한 머리로 열심히 일하던 일꾼. 나중에야 그가 성당 주임신부였다. 이러니 행색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되는데, 신부임을 밝혔다면 우리 태도도 달라졌겠지? 신을 믿는 성직자도 낮은 대로 임해야 하는데, 우린 콧날 바짝 세우고 남들과 다르다는 알량한 자부심으로 버텨온 것은 아닌지.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말이다. 남에게 보이는 나라니!


성당 앞 수원 행궁을 들어갈까 말까 하다 들어갔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고색창연한 경복궁을 생각했나? 당연히 조선왕조 정식 궁이 아니라 행궁 때 쓰던 궁이라서, 남한산성 행궁도 비슷하지 않던가. 그것도 최근에 복원된 행궁. 이곳에 들어간 목적 중 하나는 서장대(화성 장대)에서 화성을 조망을 하는 건데, 이건 다음에 미뤄야겠다. 행궁 안에선 올라갈 수 없었다. 밖으로 돌아서 가야 하나 보다. 그렇게 휘릭 둘러보고 나와서 뷰포인트로 향했다. 그게 어디였을까? 그게 북수문이 정면으로 보인 개천가였다.


그곳에서 북쪽으로 보면 당연히 북수문이 보인다. 북쪽 물을 관리하는 문? 화홍문이란 이름이 더 운치 있다. 기능을 강조한 것보다 훨씬 좋은데, 이게 약간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십자 누각 동북각루와 어우러져 뷰 맛집이다. 동북각루의 이름이 방화수류정이라니. 4개의 누각 중 그 하나만 이름이 따로 있다. 원래 목적은 전쟁을 대비한 주변 감시와 지휘 장소라는데, 위치가 백미다. 군사적 목적이라 차갑게 느껴질까? 그렇지 않다. 이게 절묘하다. 그래서 화성이 특별한 것이다.


북암문
북암문과 성곽길 & 동북포루
동북각루(방화수류정)
용연

하나 더. 용연.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사이 용연. 주인공이 하나 더 있었다. 까먹을 뻔. 아쉽게도 동북각루에는 올라가지 못했다. 왜냐고? 출입 금지라서. 어디서 보니 누군 올라가서 시원한 바람과 경치를 즐겼다던데. 아, 하나 더 있었다. 북암문. 벽돌로 만든 문. 독특해서 일단 사진으로 찍었는데, 이게 암문이란다. 암문? 남이 들락거리는 걸 몰랐으면 하는 문이라니. 이때 남은 적이고. 이런 문이 화성에 5개 있다고 한다. 문 하나 만드는데 이렇게 신경을 쓰다니. 문이 기골이 장대한 장군감이다.

뿌연 하늘과 석양

날씨가 점차 어두워지면서 이곳에서 본 일몰이 점점 멋있어진다. 처음엔 날씨 때문에 실망했는데, 해넘이가 제법 필이 왔다. 미세먼지 때문인데, 뿌연 먼지 속에 사그라드는 일몰이 안쓰럽다는 느낌까지 덤으로. 언제까지 봄날 뿌연 하늘을 봐야 할까. 북암문을 거쳐 잠시 문 안쪽 풍경을 돌아보고 다시 성곽길을 걸었다. 역시나 이곳 전경이 반대쪽에서도 보니 확연히 다르다. 경치야 날씨 따라 마음 따라 달리 보이지만, 확실한 건 이곳이 핫플레이스라는 것. 오늘은 아닌가 보다. 주변에 젊은이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추위 때문이다. 날씨가 따듯했다면 바글바글 거렸을 텐데, 아쉽게도 날씨가 추워 쌍쌍이 앉아있는 젊은 청춘도 춥게 보인다. 추웠겠지? 담요로 서로 몸을 감싸도 추울 터.


동북포루 아래가 핫플레이스?

수원천의 개천 남쪽에서 볼 때 화홍문 주변과 방화수류정 너머 그 주변 경치가 달라 보이는 이곳이 야경 포인트다. 이유인즉, 성곽을 비추는 조명 때문인데 이게 없다면 그저 그런 성곽이었겠다. 걷다 보니 배가 고파 굶주린 배를 채우고 다시 돌아온 곳. 해 질 무렵 보이던 사람들이 다 사라졌다. 집에 돌아갔을까? 아무튼, 성곽을 비추는 조명 덕에 낮에 본 풍경이 다르다. 이게 조명의 마술인데, 인공조명에 인공으로 만든 성곽이라니. 오늘 대상은 자연이 아니다. 춥지만 않았다면 아쉬움에 발길을 돌렸겠지만, 그건 시간이 얼추 밤 8시를 훌쩍 넘겼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내디딘 발걸음 흡족하다. 그래도 집은 가야지. 그래서 집이 있는 거다. 돌아갈 곳.


추위만 빼면, 그냥 내디딘 발걸음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좋은 하루. 찍은 사진 확인하니 역시나였다. 잠시, 멋진 포토그래퍼를 꿈꾸다니. 착각도 유분수다. 이런! 그런데, 꿈은 좋은 것이다. 다행히도 모든 사진이 꽝은 아니다. 낮에 찍은 사진은 그런대로. 전체 사진은 개천가 버드나무처럼 새순이 다 돋지 않은 상태. 일부 사진은 초점도 맞지 않고, 찍은 야경은 삼각대 없이 그냥 찍었더니 멋진 추상화. 접사로 찍은 개천에 핀 유일한 벚꽃은 내가 싫었나 보다. 전혀 눈을 맞추지 않았다. 부끄러워서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춘래불사춘. 마음만 그런 게 아니라 날씨도 그랬다. 이런 이런!


https://www.youtube.com/watch?v=hLQl3WQQoQ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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