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진담

관악산 육봉, 겸손은 필수. 재미는 부수?

by 길문

누가 그랬다. 도봉산 Y 계곡이 신라면이라면, 관악산 육봉은 불닭볶음면이라고. 하하! 웃긴 했는데 좀 거시기했다. 불닭볶음면을 먹어보지 않았으니. 신라면은 언제 먹었더라? 최근에 라면을 먹어본 적이 없다라기 보다, 선택지가 많아 굳이 라면을 그것도 매운 신라면을 선택하지 않았는데, 불닭볶음면이라니. 매운 건 질색인데, 그러면서 비교를 육봉과 하다니. 결론은 불닭복음면이 맵다면 이 정도였을 것 같긴 하다. 누가 혼자 간다면 결코 추천하기 쉽지 않은 코스. 겸손은 필수지만, 재미는 부수였던 코스. 또 가련다. 그럼, 가야지.


여길 간 건 그냥 모임에서 갔기 때문이다. 죽기야 하겠어라는 객기가 아니라, 그저 그런 코스 중 하나로 쉽게 생각했는데, 역시나 생각은 쉬워도 몸은 아니었다. 머리가 쭈뼛 설 정도는 아니어도 이런,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행이었다. 다음에 올 때 릿지화를 신어야 할까 잠시 망설일 것 같다. 누가 같이 간다면 가야 할 산. 그럼에도 이상하게 다음에 다시 가보고 싶다. 혼자라도 말이다.

날씨가 황사 때문에 여전했다. 봄, 이제 황사와 미세먼지는 불편한 친구로 생각해야겠다. 떨쳐버리고 싶은데, 떨칠 수는 없는 그런데 친구. 원래 불편한 친구는 손절이 답인데, 이게 자연이다 보니 자연과 싸울 수도 없고. 그나저나, 오늘 산에 가기로 했으니 가야 한다. 어쩌겠는가. 가기로 했으니. KF 94 새부리형 마스크. 이것만 믿는다. 아니, 이걸 믿고 그 미세먼지 뚫고 전진, 또 전진한 거다. 참, 거창하게 말하는군. 전진 또 전진이라니. 이 육봉 코스는 전진 말고 답이 없다. 이곳을 가는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전진 또 전진이다. 그러고 보니 후진해서 갈 방법이 더 없어 보인다. 그저 갈 수밖에. 가야 하니까. 다행히 날씨가 덥지 않아 마스크를 써도 견딜만했다. 바람은 쌀쌀하고, 그늘에서는 서늘해서 보온도 되었다. 이게 마스크 용도라는 거다.


관악산이 규모로 보면 북한산을 넘볼 수 없지만 이 산에 있는 육봉과 팔봉에서 바라보는 경치만 생각하면 북한산 보다 크게 뒤질 것 같지 않다. 그중에서 육봉과 팔봉을 비교해 보면 팔봉은 동생뻘 될 것 같다. 경치가 아니라 위험 정도 말이다. 산이란 게 높거나 낮거나 험하거나 무난하거나 겸손은 필수인데, 겸손 겸손 또 겸손이다.

과천청사역을 지나 문원폭포를 향해 씩씩하게 걸어갔다. 정부청사 앞에서 여성 몇 명이 우리가 주저 없이 걷자 우리를 따라온다. 산이란 게 가다 보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따라가면 대게 무난하게 들머리를 갈 수 있다. 이건 거의 불문율. 그렇게 걸어 과천 종합 생태길 안내판에 도착했다. 여기서 대게가 몸무게(?)도 줄이고, 등산화와 배낭을 조절한다. 이제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올라가는데, 심한 가뭄이라도 최근 비가 온지라 개울에 물이 있다. 넘칠 정도는 아니지만, 가뭄 성수기는 아닌 것 같았다. 개천에 물이 당연히 있어야지. 그렇게 문원폭포까지 일방향이다.


그렇게 도착한 문원폭포. 거기서 왼편으로 가면 암릉인 육봉 코스이다. 표지판에 상급자 코스라고 적어놨다. 상급자라? 위험하니 빠질 사람 빠지라는 의미지만, 그래서 코스를 바꿀 사람이 몇 명 될까? 처음엔 육봉이 뭘 말하는지 몰랐다. 봉우리가 여섯 개라는 말이다. 그래서 총 다섯 개인 봉우리를 오르면 그 마지막 봉우리인 여섯 번째 봉우리에 태극기가 휘날린다. 그게 정상이고 거기서 대게 안양 쪽으로 내려가거나 팔봉을 거쳐 무너미 고개를 지나 서울대 방향으로 내려간다. 아니면, 관악산 정상 연주대 쪽으로도 갈 수 있다. 결론적으로 여섯 개인 봉우리를 오르면 오늘 정상 등산은 끝이고 내려가는 일만 남았는데, 오르다 보면 깜박한다. 몇 번째 왔더라?

오르다 보면 일봉과 이봉의 경우 지금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안내판이 보인다. 더불어 일봉 옆에 멋진 소나무도 있고. 그렇게 일봉을 지나다 보면 당연히 나오는 게 이봉인데, 그 옆에 코끼리 바위라는 표식이 있다. 그럼 이봉이 코끼리 바위인가? 다들 그걸 거쳐 삼봉으로 가는데, 자신 있으면 그렇게 하면 된다. 다리가 짧은 사람들 빼고. 코끼리 바위를 바로 넘지 않아도 되는데, 그래도 이곳을 직접 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육봉을 오르다 든 생각인데, 이곳은 신체 크기가 변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리가 길면 아무래도 바위를 넘나들기 유리하다.


여기서 바위를 타다 보면 느끼는 게 그 바위 틈새로 어떻게 나무들이 자라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게 때론 등산 지지대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암릉이라 등산 스틱을 사용할 수 없는데, 이 나무들이 아주 유용하다. 위급할 때 급히 사용할 수 있다. 이래저래 고마운 나무이다. 이쪽은 확실히 능선을 탈 때 당연히 서울 쪽을 바라보기 어렵다. 대신 여기선 과천과 안양, 그리고 광교산 조망이 펼쳐진다. 미세먼지 없는 날씨였다면 이쪽 조망이 정말 좋았을 텐데, 아쉽다.

그렇게 계속 걸으면서 드는 노고를 멋진 경치로 만회하다 보면 삼봉이 떡하니 가로막는다. 앞선 등산 대장 선배가 이쪽으로 오지 말란다. 위험하다고. 우회하라고 한다. 반가운 소식!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주저 없이 우회했다. 다행이다. 삼봉을 넘기 위해서 릿지 화가 필요했을까? 우회하니 편안하게 삼봉을 지나쳤다. 이거다. 지나간 거다. 이곳으로 가도 크게 조망이 뒤질 이유가 없다. 그 경치가 그 경치 아니던가. 육봉이 전문적으로 암벽 훈련을 받은 사람들만 탈 정도는 아니지만, 계속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 동호회 멤버를 보니 뭔가 뿌듯하다. 와, 내가 우리가 이 정도 산에 오다니 하는 느낌을 준다. 오르다 보니 그들 덕에 잠시 로프를 써서 쉽게 바위를 오르기도 했고.


사봉도 우회로로 올랐나? 하던 차에 오봉에 다다랐다 순간 이동했나? 그럴 리가? 바위에 집중하느라 내가 얼마만큼 왔는지 생각이 없었다. 육봉 옆이 바로 오봉이라 육봉 정상에는 쉽게 도달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부터 갈림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관악산 정산으로 갈 건지 말 건지. 팔봉을 경유할 건지 말 건지. 우리 일행은 안양 방면으로 향했다. 내려가는 길이 이렇게 쉽다니! 올라오는 길이 순식간에 올라온 것 같지만 쾌나 긴장을 하긴 했나 보다. 사고가 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역시, 등산 최고의 덕목은 안전산행이다. 산에 다치려고 왔겠는가!

잠시, 전망대에 둘러보고. 그렇다 육봉 정상을 올려다보니 아득하다. 와우. 순간이다. 내려오는 건 정말 순간이다. 기쁨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 같다. 살다 보니 느낀 기쁨도 그리 오래가지 않지 않았다. 그게 사는 것 아닐까 싶게 생각하다 보니 긴장이 풀렸다. 다 내려온 것이다. 걷는 중간에 안양 쪽으로 갈지 과천으로 갈지 작은 갈림길이 나오지만 오늘은 과천 야생화 단지다. 자연스럽게 원점 회귀가 된 것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절약되었다. 같이 간 동료들이 제법 열심히 걸었다. 오늘 같은 등산이 짧지만 짜릿한 등산이다.


흐릿한 날씨처럼 오늘 느낀 성취감도 흐릿한 기억으로 남겠지만, 즐거운 하루였다. 즐거웠다.


https://www.youtube.com/watch?v=1oZKECU3G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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