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즐거웠다. 시각의 승리다. 머리가 기뻤다. 이건 생각의 승리다. 입장료가 공짜였다. 이건 손가락의 승리다. 내가 예약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예약한 그 빈틈을 노리고 들어갔다. 마치, 나쁜 짓 한 것 같은데 그건 아니다. 아는 사람들이 예약을 많이 했고 그 숫자에 맞게 사발통문을 돌렸다. 그래서 갔다. 가보고 싶어서 갔다. 그래서 뭐?
시스티나 성당 내부 모형 - 그냥 보기만 해도 은총을 받을게 확실하다.
애초 목적은 리움 미술관에 가는 거였다. 이태원에 있는, 뭔가 멋질 것 같은 미술관. 가보지 않았다. 그래서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미술관 외관만 보러 가는 건 이상하다. 당연히, 전시도 봐야지 했는데 그게 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이었다. 그곳에서 '전시회 WE'가 열리고 있었다. 누군지 모르고 갔는데, 이게 기대 이상이다. 알고 보니,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아주 유명한 작가였다.
눈과 머리와 다리가 즐거웠다. 다리는 기꺼이 희생을 했다. 주인을 위해서. 평생 수고하다 앞으로도 수고할 텐데. 이곳 리움은 그 유명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기업에서 소유하는 미술관이 나쁘게도 쓰이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오늘을 즐기자. 오늘만 즐기자는 게 아니다. 그 누군가 예약에 성공하고 그래서 즐거웠던 그 많은 사람들 만족도는 엄청 높았을 것 같다. 이게 낙수효과다. 내가 미술관을 운영할 수는 없잖은가. 누군가 만들어놓은 시설 아주 흡족하게 즐겼다. 아쉬웠던 건 시간. 그날 그곳에서 〈조선의 백자:군자 지향〉도 열렸는데, 시간에 쫓겨 그냥 봤다. 아쉽다. 다음에 다시 가야지.
리움미술관 전경
전시회 규모가 엄청 컸다. 3층에 걸쳐 한 명의 작가에 대한 작품만 전시되었다. 한 명의 작가만을 위한 전시회. 총 38점이라는데, 개수를 세보진 않았다. 맞겠지? 미술계의 악동이 아니라 악당 같다. 스스로를 '미술계의 침입자'로 규정했다니, 그럴만했다. 작품들이 다 그냥 만든 게 없다. 뭔가를 비틀고 유머스럽게 만들었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아서 그랬던 것일까? 전통과 권위를 비꼰다. 그래서 그를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다. 누군, 제2의 마르셀 뒤샹이라고도 하고. 듣는 그는 이 표현을 싫어했을 것 같다. 그래서 뒤샹과 비교된다고 해야겠다.
2011년 미국에서 열린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라는데 이건 몰라도 된다. 그런데, 왜 말했지? 모든 38개의 작품들이 다 대표적일 것 같은 분위기다. 남의 작품에 슬쩍 숟가락을 올려놨다. 모방을 했다는 말인데, 그냥 베꼈겠는가? 그 모방이 상당히 대중적이어서 그 대중들이 정말 좋아할 수밖에 없다. 뻔뻔하면서 웃기고, 예의란 찾아보기 힘들고, 자기 자신을 비꼬기도 하고. 우리 이야기인 것 같으면서 내 이야기도 되고. 그 우리나 나나 그리 마음은 편할 리 없지만, 보는 나를 빼면 상당히 즐겁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작품이건 이게 뭐라고 말을 하지 않는다. 고단수다. 그냥 던져 놓는다. 알아서 보고, 해석하고, 즐기라고.
누가 동훈이고 누가 준호 더라? 동준과 준호 2023
이런 작품을 예약만 하면 공짜로 볼 수 있다니. 리움미술관이 야심 차게 예술의 문호를 대중에게 활짝 열었나 보다. 어디 기사에선가 이미 관람객 10만 명을 넘어섰다는데, 미술계 침체가 아니라 부활인가? 대부분 관람객들의 연령대가 섞여있다. 젊은 사람들도 많다는 의미이다. 간 날 날씨가 정말 좋았다. 미세먼지도 없었고. 대략 이 작가가 누군지 인터넷으로 훑어보고 갔다. 그래서 대략은 알겠는데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처음에는 미술관 입구에 있던 노숙자는 알아봤지만 건물 안 로비 기둥 옆 노숙자는 알아보지 못했다. 사람이 많아서였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그날 관람. 그 노숙자 이름은 '동훈과 준호'였다. 이런 식으로 어딜 가든 카텔란은 미술관에서 반기지 않는 두 명의 노숙자를 현지에 맞게 제작해서 전시한다고.
유령 2021
로비엔 노숙자뿐만 아니라 많은 비둘기들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전시실 바닥에도 비둘기들이 있는데,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비둘기를 '유령'으로 본다. 왜 그랬을까? 이건 잘 모르겠다. 그의 작품 모두가 상징과 암시, 비꼼으로 일관되지만 그나마 관객을 배려한 작품도 하나 있다. 3층에 위치해 있고 대기가 가장 길었던 작품.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을 축소해서 만들어 놓은 작품. 그 성당 안엔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천장화를 복사해 놨다. 로마까지 날아가서 보지 않아도 되는 수고를 덜게 만든 작품. 정말, 그답다. 땡큐. 카텔란.
아홉 번째 시간 & 모두
그 건물 앞엔 '아홉 번째 시간(1999)'이란 발칙한 작품이 누워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운석을 맞고 쓰러져있다니. 교황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이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당시 미술관 디렉터가 해임되었다나? 사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런 작품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를 봤다면, 너털웃음을 날렸을 것 같다. 설마 화를 내셨을까? 그럼 마우리치오 카텔란에게 말려드는 걸 텐데. 카텔란, 그는 악동이 맞다. 천하의 장난꾸러기. 미켈란젤로 그 화려함을 표현한 모형 시스티나 성당 건물 앞에는 아홉 개의 조각 '모두(2007)'가 누워있다. 처음부터 누워있도록 한 건데, 시체 맞다. 세상에서 일어난 각종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표현한 것이라는데, 생각해 보면 작품 배치도 상당히 안 몫이 필요해 보인다.
무제 2001
마우리치오 카텔란. 그가 세계적인 미술가라는 명성 그 자체가 그가 얼마나 입지전적인 인물인지 알 수 있게 만든다. 작품 곳곳에 드러나듯 그는 미술계의 주류가 아니었다. 미술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전공자. 청소부 어머니와 트럭 기사 아버지를 둔 평범한 그가 정원사, 간호사, 영안실 직원, 가구 디자이너 등등을 전전한 경험이 오히려 그를 세계적인 스타로 오르게 한 원동력은 아닐는지. 위 작품 '무제'는 비주류가 바라보는 주류 미술계를 드러내는 작품이라는데, 이게 그 유명한 작품 '무제'다. 그냥, 관객에게 던져놓는다. 알아서 해석하라고. 그로 인해 현대미술은 쇠락의 길을 간 게 아니라 그로 인해 더 풍요로워졌으니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리움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위해 진짜 바닥을 뚤었다고.
아버지 & 그림자 2023
그렇다고 그가 모든 작품을 희화화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발을 벽화로 만들어놓고 붙인 제목은 '아버지'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 트럭 기사로 힘들게 살아온 아버지에 대한 오마주? 그 발은 물론 그의 발이지만 말이다. 가난이 누구에겐 자존심이지만, 그에겐 예술작품을 만드는 영감이다. 그저 살아가는 일상을 보여주는 게 현대미술의 시대정신이라고. 아버지는 거대하고 숭고하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발바닥만큼은 보고 있자니 그렇게 느껴진다. 오른편 그림은 냉장고 안에 청소부였던 어머니를 패러디에서 모셔둔 작품이다. '냉장고에 갇혀 사는 여자'는 역시나 세상을 향한 그의 외침이라고 해석된다. 남성을 위해 피해를 받는 여성을 상징적으로 냉장고 안에 집어넣은 것이라는데, 여성은 주로 주체적이지 않고 소비하는 대상으로 묘사되는 현실을 나타낸 것이다. 냉장고 안에 든 여성이라니.
침대에 누운 두 명의 남자 우리 1 & 찰리는 서핑을 안 하잖나
그가 보여주는 특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만든 작품 몇몇은 그 스스로 모델이 된 작품들이다. 자신을 대상화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친근하게 한 것 같은 작품들. 동성애를 묘사한 '침대에 누운 두 명의 남자 '우리 1(2010)'도 모델은 카텔란이다. 오른쪽 벽을 바라보고 책상에 앉아있는 '찰리는 서핑을 안 하잖나'도 자기 자신이 모델이다. 책상에 앉아있는데, 두 손이 연필로 찍혀 있다. 무슨 의미일까? 어릴 적 카텔란이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는 것을 표현한 것보다, 서핑을 더 하고 싶은 찰리를 표현했다는 것이 더 현실적인 것 같다.
미국 경찰 & 사랑이 두렵지 않다 & 밤 & 무제
위 작품 중 왼쪽 거꾸로 서 있는 2명의 경찰관인 작품 '미국 경찰'은 경찰국가가 된 미국을, 오른쪽 흰 천을 둘러싼 코끼리는 미국 극우단체 KKK를 비꼰 것이다. 아래 성조기 모양 검은 보드에 실재 실탄 100발을 쏴서 만든 작품 '밤'은 총기 사고가 빈번하게 벌어지는 미국을 풍자했다. 미국에서 10대 사망률 중 총기로 인한 사망률이 1위라는 현실을 비판한 것. 오른쪽 비석은 미국 워싱턴에 있는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를 카피한 것인데, 내용은 1874년 이후 영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패배한 모든 경기를 나열한 기념비 '무제(1999~).' 그의 비판 대상으론 미국과 영국도 예외가 없지만, 마지막 작품 무제는 우리가 지나치게 과열된 경쟁 속에 살아감을 비튼 것이라고. 그런데, 누가 이태리 출신 작가 아니랄까 봐, 자세히 보면 이태리가 영국을 이긴 기록이 중심이다.
가족
비디비도비도부 & 무제
위 동물 네 마리는 '브레멘 동물 음악대'에서 받은 영감을 표현한 '가족'(1998). 마지막 동물이 닭이 아니라 까마귀인 게 뭘 상징하고 싶은 것일까? 인간에게 더 이상 쓸모 없어진 동물 네 마리가 지혜를 모아 어려움을 극복한다는. 오른쪽 뼈로만 만든 것을 뭘 상징하는 것일까? 아래 오른쪽 작품은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영어 Z 표시다. 위 작품 '무제'의 부제는 '조로'다. 어디서 들어보지 않았나? TV 드라마 쾌걸 조로. 원래 루초 폰타나라는 작가는 칼로 캔버스를 찢는 회화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그를 기리는 작품이다. 기존 미술계를 거장들을 다 칼로 난도질하겠다는 의지라고? 왼쪽 작품 '비디비도비도부'는 뭔 뜻? 무슨 마법을 이뤄지게 하는 주문 같기도 한데, 정말 이뤄지라고 주문하는 내용이란다. 그런데, 다람쥐가 자살? 다시 살아나게 해달라고 비는 것일까? 다람쥐가 권총을 쏴서 자살하다니. 생각만 해도 상상이 안 간다. 이걸 작품으로 만든 사람은 누구더라?
그 2001 & 보이드 2019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작품일 것 같지 않지만 많은 사람이 뒤에서 보다 반드시 앞에서 확인한 작품이 바로 '그'이다. 교복처럼 단정한 옷차림으로 두 손을 모으고 무릎 꿇은 아돌프 히틀러를 묘사한 작품. 후자는 언급조차 금기시되는 인물을 생생하게 되살려냄으로써 역사적 트라우마를 치열하게 고민케 했다는데, 그렇게 진중하게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른쪽 작품 '보이드' 2019는 얼핏 보면 기괴한 게 뭘까 생각하게 만드는데, 자세히 보면 자기 작품으로 만든 작품? 이게 카텔란의 복잡한 뇌를 상징한 것이다. 인간은 무질서하고 혼돈 그 자체라나? 아마 자기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겠지? 그런 것도 같다.
코미디어 2019 & 어머니 1999
왼쪽 작품 '코미디언(2019)은 새삼 설명이 필요 없다. 이건 그냥 인터넷에 검색하면 무수히 나온다.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1억 원 넘게 팔린 작품. 이를 행위예술가 데이비드 다투나가 저걸 그냥 먹어버려서 더 화제에 올랐다. 그때 그 바나나였겠는가 만은. 내가 날름 집어먹어도 화제가 될 것 같지 않다. 미술관 직원들 수고도 별로 하지 않을 것 같고. 미술관에서 쫓겨나기는 할 것 같다. 오른쪽 작품 제목은 '어머니'이다. 사진을 찍는데 작품 유리에 찍는 사람이 반사되게 만들어서 무슨 의도가 있나라고 생각까지 하다니. 나가도 너무 나갔다. 제목은 '어머니'인데, 손에 난 털을 보니 여자 손이 아닌 것 같다. 손이 남자 손 같은데, 꼭 여자 손으로 만들어야 어머니를 표현할 수 있을까? 난감했다. 뭔가 절실한 바람. 그게 어머니를 상징한 것일 텐데, 누구 말처럼 이 전시회가 성공적으로 마치길 바람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건 벌써 이뤄졌을 텐데 말이다. 어머니가 '바램'의 상징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