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단어도 '청춘'이란 단어를 대체할 수 없다. 그 단어가 주는 울림이란. 이번 전시회 주인공은 안도 타다오가 아닌 것 같다. 뭔 소리일까? 청춘 때문이다.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한다는 청춘. 사무엘 울만이 78세에 쓴 시 제목도 '청춘'이다. 그러고 보니, 안도 타다오만큼 청춘을 즐기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 80대 나이. 그럼에도 열정은 청춘이다. 그는 항상 그런 마음가짐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을 것이다. 설렘! 그걸 지속할 수 있다면. 청춘의 실체는 '설렘'일 수도 있겠다. 뭔가에 대한 기대. 열정. 그래서 설렘.
청춘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진 못하지.
근심과 두려움, 자신감을 잃는 것이
우리 기백을 죽이고 마음을 시들게 하네.
그대가 젊어 있는 한
예순이건 열여섯이건 가슴속에는
경이로움을 향한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과
인생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
그대와 나의 가슴속에는 이심전심의 안테나가 있어
사람들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과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언제까지나 청춘일 수 있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雪)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氷)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마크 디 수베로 1995 - 제라드 먼리 홉킨스를 위하여
원주에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뮤지엄 산이 있다. 그곳에서 '청춘'이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청춘의 상징이 사과일까? 안도 타다오가 사과 하나를 이곳에 기증했다던데. 나머지 2개는 일본에 있고. 빨간 사과는 알겠는데, 파란 사과는 없을 테니 녹색 사과가 맞겠다. 녹색. 청춘은 녹색인가 보다. 이곳에 간 건 모임에서 누가 6인승 차를 자원해서 냉큼 지원했다. 그래서 편하게 갔다 왔다.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던 산불을 끝장내려 봄비가 왔지만, 전혀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빛과 물을 주제로 작업하는 안도 타다오의 뮤지엄과 찰떡같은 궁합을 이뤄냈다.
물, 노출 콘크리트, 반사된 자연
뮤지엄 산은 주차장 옆에 웰컴센터가 있다. 그곳에서 시작해서 플라워 가든을 거처 워터 가든으로 연결되어 뮤지엄 본관으로 갈 수 있다. 본관을 통해서는 스톤가든과 명상관, 그리고 제임스 터렐과 연결된다. 일반권이라서 명상관과 제임스 터렐 전시관은 다음을 기약했다. 미련이 남았을까? 전혀 아니다. 그냥 안도 타다오가 빗어 놓은 공간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자연과 조응하게 만든 이곳에 왔다는 만족감만으로도 흡족했다. 다음에 다시 와야지 하는 미련은 조금 남았지만 말이다. 가을에 말이다. 겨울엔 워터 가든에 물이 없다. 있을 수 없지!
루이스 니벨슨 1976 - 밤의 장막
웰컴센터에서 표를 받아 나서면 플라워 가든이다. 붉은 패랭이꽃과 자작나무로 이뤄진 산책길을 걷게 만들어놨다. 5월에 패랭이꽃이 환상이라는데, 너무 일찍 왔다. 그곳에 들어서기 전에 오른편에 멋진 작품이 하나 눈에 띄었다. 사람들이 이곳을 그냥 지나친다. 섭섭해할까 봐 가보니 루이스 니벨슨(1976)이 만든 '밤의 장막'이란 작품이다. 웰컴센터에서 플라워 가든 오른편에 있는데, 관성이란 게 특이하다. 왼편으로 남들이 모두 가니 그저 따라간 것이다.
알렉산더 리버만(1997) - 붉은색 '아치웨이'(Archway)
다시 경계를 넘어 플라워 가든에 들어서니, 느낌이 산뜻했다. 패랭이꽃은 아직 아니고, 자작나무가 주는 시각적 신선함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걷는 길 오른쪽에 계속 사람 시선을 끄는 강철 로봇. 이곳 하이라이트 중 하나. 넓은 공터에 서 있는 15m 높이 작품이다. 알아보니 새를 형상화한 마크 디 수베로의 작품(1995)이다. 작품 제목은 '제라드 먼리 홉킨스를 위하여.' 앞의 작가도 모르는데 뒤 작가를 알까. 제라드 먼리 홉킨스는 시인인데, 그가 쓴 시 중에 하나가 '황조롱이.' 그를 기리는 작품. 저, 철골 로봇이 바람이 불면 움직인단다. 바람이 얼마나 새게 불어야 할까?
본관 정면
그렇게 걷다 보면 왼편에 안도 타다오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 그렇다 물이다. 물에 비친 자연과 꽃. 그것도 담으로 가려 살짝 보게 만든. 감칠맛이다. 그 맛은 시야를 일부러 가린 돌담을 돌아서면 사라지는데, 대신 시야가 확 펼쳐진다. 여기부터 워터 가든이다. 멀리서도 언뜻 보였던, 그곳 가운데 우뚝 서있는 작품. 세계적인 잡지 보그지의 편집장이었던 알렉산더 리버만(1997)의 작품 붉은색 '아치웨이'(Archway)다. 직선으로 본관과 연결된 그곳에 홀로 우뚝 솟아있다.
물에 비친 자연
물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그 느낌을 단번에 날리는 조형물이다. 사람들이 여기선 순한 양이 된다. 사진을 찍는 관람객들을 기다려주는 아량이라니. 뮤지엄 산의 상징 같은 조형물? 안도 타다오가 노린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양옆으로 펼쳐진 물 위로 봄꽃과 빛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데, 여기엔 파주석으로 외관을 드러낸 본관 건물이 중심을 굳건하게 잡는다. 여기에 물속에 있는 검은 돌이 해미에서 가져온 돌이라고 하는데, 검은 돌의 목적이 물에 비친 사물이 더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물이 반사하는 형상을 더욱 나타내준다니.
앞 건물 밑 부분에 작은 창을 내서 답답함을 줄였다.
그렇게 도착한 본관 앞에는 '청춘'이 서있다. 뭔가 어색했다. 본관 입구에 덜렁 놓여있는 사과 작품이라니. 이걸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다. 작품 설명도 뒤에 작게 만들어놓았다. 아는 사람만 보라고 한 것처럼. 그렇지. 청춘도 소중한 사람에게만 소중할 터. 본관은 페이퍼 갤러리와 청조 갤러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페이퍼 갤러리는 애초 이 건물 출발이 한솔제지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종이박물관이 있고, 종이 관련 전시물이 상시 전시되고 있다. 여긴 ‘지’라는 음을 가진 네 가지 한자 ‘紙(종이)’, ‘持(가지다)’, ‘志(뜻)’, ‘至(이르다)’를 주제로 전시 공간을 구성했다.
종이박물관(페이퍼 갤러리) - 성경
바로 옆 청조 갤러리에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 작품 모형들과 작업과정을 알 수 있게 했다. 전 세계에 걸쳐 제작된 그의 작품들과 공모에 응시했지만 채택되지 않은 작품들까지. 어떻게 안도 타다오가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는지 알 수 있는 증거물. 천재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은 공간.
안도 타다오의 작품 모형
파주에서 가져온 돌로 만든 벽면과 노출
콘크리트가 조화로운 본관 건물. 내부를 들여다보면 한쪽에선 노출 콘크리트만 다른 한편엔 파주석만 사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건물에 빛이 들어오도록 했다. 어떤 면에선 건물 내부에서 노출 콘크리트가 더 눈에 띈다. 그 복도는 아주 좁게 설계했고, 천장은 상당히 높게 만들었다. 천장에도 역시나 자연스럽게 빛이 들어오도록 했다. 물론, 건물 옆면으로부터도 빛이 조명이면서 장식이 되게 만들었다. 일부 벽면 아래에 유리 벽을 만들어 관람객으로 하여금 답답하지 않게 만들었으며, 그 밖에는 물을 배치함으로써 빛이 물에 반사되어 건물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내부 벽과 복도가 예술이다.
건물 안도 그냥 만들지 않았다. 복도와 복도가 만나는 그 모서리를 상당히 신경 쓴 흔적이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분명 빈 것 같은 중정을 끼고 돌아서면 날카롭게 예각을 이루게 만들었다. 이쪽 복도와 저쪽 복도가 마주치는 그 모서리 공간도 예술 공간으로 설계했다. 이런 건물 안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종이 박물관답게 '파리루스 온실'도 볼 수 있고, 중간에 건물이 삼각으로 만나는 지점에 노출 콘크리트 만으로 삼각 코드를 만들었다. 여기 청조갤러리에는 백남준 홀을 만들어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약간 이질적으로 느낀 건 나만의 생각일까? 백남준?
복도와 복도가 만나는 공간. 예술이 되다.
그렇게 청조갤러리를 둘러보다 보면 한쪽으로 밖에 나갈 수 있다. 이곳을 통해 스톤 가든에 갈 수 있다. 입구에는 조지 시걸의 '두 벤치 위의 커플'이란 작품이 있는데, 이건 어떤 의도였을까? 총 9개의 스톤 마운드 사이로 베르나르 브네의 ‘부정형의 선,’ 헨리 무어의 ‘누워 있는 인체,’ 안소니 카로의 '사원' 등. 곳곳 포인트에 작품들을 배치했는데, 이는 단조로움을 극복하려는 목적이라고 한다. 그 너머 왼편 끝 쪽에 제임스 터렐 전시관이 있고, 스톤 가든 입구 오른편 앞쪽에 명상센터가 있다.
스톤 가든에 있는 작품들
본관 안에는 안도 타다오의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볼 수 있게 해 놨다. 이 프로젝트는 30년 동안 걸쳐 완성한 것으로, 뮤지엄 산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이들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안도가 자연을 단순히 조경이나 디자인과 같은 근시안적인 의미를 넘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주변 경치와도 조화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그의 철학. 당연히 뮤지엄 산도 마찬가지다. 사계절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는 자연 그 품에서 건축과 예술이 하모니를 이루게 하다니. 그곳에서 가져온 작은 카탈로그를 보니 뮤지엄 산 옆에 Space Art Nature라고 적어놨다. 그러고 보니 더 선명히 이해가 되었다. 그의 작품세계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