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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끝내는 날 비 왔으면 좋겠다...

경기도 물향기 수목원

by 길문

소풍으로 간 건 아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갔는데, 이곳저곳 싸 온 음식 먹는 사람들이 그렇게 보였다. 소풍 온 것처럼.

소풍!

얼마 만에 듣는 단어던가. 잊었던 추억처럼 아스라한 단어였다. 그 단어가 생각났다.

세월 따라 그저 산 것은 아닌데, 그렇게 산 것처럼 생각날 때

소풍 가면 어떨까?

여기 오산대역에서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곳에 수목원이 있었다.

알고 간 게 아니라서 만족감이 더 좋았던 하루. 그래서 소풍 온 것 같았던 날...

일기예보가 틀리더라도 기분 나쁘지 않은 날이 오늘 같은 날이다.

꽃들은 이미 져 시간이 한물간 것처럼 보인 봄날, 아니었다.

봄비가 이를 넘어서게 만들었다.

잎마다 맺은 물방울이 꽃향기를 넘어선 것 같았다.

잎사귀 끝마디, 연녹색이 채 가시기 전,

빗방울이 말하고 있었다.

아직 소풍 끝나지 않았다고,

소풍 즐기라고......

살아온 날들이 아름다웠을까?

아직 생각이 이르지만,

세상 끝내는 날이 소풍 끝내는 날이라고 말한 시인이 생각났다.

아름답다고 했는데, 그는 말이다. 소풍처럼 산 날 말이다.

난 아름다웠을까? 우린?

누구든 가는 그곳에도 친구가 있겠지?

그 먼 곳 혼자가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

비 오는 오늘,

같이 걷는 친구처럼

소풍은 혼자 오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어쩜 우리가 맞았던 그 많은 비바람도

지나니 오늘 소풍 온 날처럼

아름다웠다고 말했으면 좋겠다.

언젠가 나도 끝낼 날 마지막으로 뱉을 말 말이다.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천상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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