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진담

공룡능선 없는 설악산? 팥소 없는 찐빵!

원하던 것 성취했던 순간엔, 설악산 공룡능선도 있었다...

by 길문

앙꼬(餡子, あんこ)는 일본 말이다. 대신 우리말 '팥소'를 써서 팥소 없는 찐빵으로 쓰면 찐빵 맛이 달라질까? 말맛은 조금 달라질 것 같다. 그럼 공룡능선 없는 설악산이면 어떨까? 찐빵은 팥소가 찐빵 맛에 결정적이지만, 공룡능선 없어도 설악산은 설악산이다. 이게 찐빵과 설악산의 결정적 차이다. 그만큼 설악산은 볼게 많다. 그럼에도 뭔가 허전하다. 팥소가 곧 공룡능선은 아니지만 공룡능선 없는 설악산이 설악산일까? 설악산인 것은 맞지만 2% 부족하다. 물론, 공룡능선이 2%란 의미는 아니다.

한계령 삼거리를 지나면 머지않아 이런 광경이 펼쳐진다.

그런데, 국립공원 제1경이 공룡능선이라서 용아장성과 함께 그림에서 이를 빼면 설악산이 달리 보일 것은 100% 확실하다. 이건 서북능선을 타고 대청봉으로 향해도, 천불동 계곡에서 희운각을 거쳐 대청을 올라도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을 안 볼 수가 없다. 백담사에서 봉정암을 거쳐 대청봉에 올라도 중언부언. 오색약수 쪽에서 오르면 좀 다르긴 하다. 그냥 대청봉에 오르니. 대청봉에 오르면 공룡능선의 맞수가 당당히 보인다. 그건 바다다. 그렇다. 바다. 대청봉에서 보는 바다, 이 맛이 난형난제다. 공룡능선과 말이다.



중청을 향해 걷다 보면 보이는 내설악

그럼에도 국립공원 1경이 공룡능선인 것은 그건 아마도 이런 풍경이 여기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다가 보이는 산이 많지만 공룡능선을 품을 수 있는 산은 많지 않다. 아니, 설악산밖에 없지 않던가. 그럼 용아장성은? 이건 능선이 아니다. 능선길이 있을 수 없다. 보기엔 좋지만 걷기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막았을 것이다. 하나뿐인 게 목숨이라 이걸 굳이 걸고 걸을 필요가 있을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건 법정 등산로도 아니다. 커다란 바위처럼 보이는 산봉우리. 이게 용아장성이다.


전체 공룡능선 조망

그런 공룡능선을 걸었다. 남들도 가봤고 가볼 그 능선이 뭐가 대수일까? 내가 갔기 때문인 거야 당연하고. 여기에 카메라를 메고 갔다. 두 손이 자유롭지 않았는데, 무거웠다. 배낭도 무거웠고 몸도 무거웠고, 처음부터 달라지지 않을 카메라 무게만큼만 달라진 게 없다. 몸은 무거웠으나 마음만은 좋았다. 가볍다고 표현하기는 그렇고. 공룡능선을 걸었다는 것도 그렇고,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것도 그렇고.

지나 보면 이런 곳을 지나갔다.

공룡능선을 지나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목표가 공룡능선이 될 수 없다. 그 능선에 들어서면 어떻게든 나와야 한다. 그곳이 목적지가 될 수 없기에 하는 말이다. 백담사에서 시작해서 오세암을 거쳐 마등령 쪽으로 오는 방법, 백담사에서 봉정암으로 거쳐 다시 백담사로 돌아오거나 설악동으로 내려가는 방법. 설악동에서 마등령을 거쳐 소청 쪽으로 가는 방법 등. 조합은 가지가지다. 한계령을 거쳐 가는 방법도 있고. 여기에 무박으로 가건 1박으로 가건 그건 체력과 시간을 안배해서 결정하면 된다.

울산바위가 여기선 작게 보인다. 저 멀리.

이게, 가을 단풍철이면 인산인해가 된다. 그래서 누군가 말처럼 안내 산악회 따라갔다니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왔다는 우스개도 자연스럽다. 여기에 공룡능선길에 만난 누군가 한 말. 자긴 1년에 이곳에 다섯 번이나 오다니? 중요한 건 회수가 아니라 올 때마다 이곳이 주는 맛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멋도 다르다 와 상통하니 보이는 경치가 다르다는 말 일터. 그만큼 걸을만하고 도전할만하다. 튼튼한 등산화와 등산 스틱과 간식과 마음만 있다면. 하나 더 물. 필수다. 여름엔 더 그렇겠지?

돌아보니 저런 길 걸어왔다.

단지 좀 다르다면 처음 갔다는 것과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었다는 것. 처음이야 다음에 두 번째, 세 번째 이어질 테지만 카메라가 주는 무게야 그렇다고 해도, 카메라로 인해 묶이는 손이 아주 성가셨다. 그래서 다음에 또 카메라? 그때 할 수 있는 말, 콤팩트 카메라면 가능할 터. 그래서 든 생각. 설악산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오지로 출사 가는 포토그래퍼들이나 영상 담당 사진가들이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다. 그만큼 힘들었다. 체력이 저질이라 다리가 풀렸다 치더라도 카메라는 들고 간만큼 좋은 그림이 얻어졌는지 이건 좀 다른 얘기이다. 사진에 대한 숙련과 애정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었는데, 보고 판단하시라.

중청과 대청이 보이는 곳. 꽃의 색깔이 조화롭다.

공룡능선 통행은 두 가지밖에 없다. 무너미 고개로 들머리를 삼던가 나한봉 인근을 들머리로 삼던가. 신선대 - 천화대 - 1275봉 - 큰 새봉 - 나한봉. 가다가다 들르게 되는 주요 봉우리들. 여기에 고릴라 바위와 촛대바위, 더불어 쓰러진 고목 정도. 이게 다 기억나면 공룡능선 제대로 걸은 것이다. 처음에 갈 때 잠시 생각했었다. 자차로 백담사로 향할 것인가, 설악동으로 갈 것인가. 이 난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한계령이었다. 높이가 1,004m가 되니 이렇게 좋을 수가. 해발이지만 쉽게 시작할 높이다. 그만큼 체력이 안배가 될 터. 그 안배가 되었는지는 하루 지나 의문으로 바뀌었지만, 시작은 좋았다. 뭔가 뿌듯함. 먹고 들어가는 듯한 이 기분!

촛대바위 늠름함이 대청에 뒤지지 않는다?

여기서 시작이 나중에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었지만, 공룡능선 체력은 따로 비축이 되어야 했다. 이건 나중에 나한봉 근처에서 풀린 다리로 인해 크게 업어질 뻔한 사고를 겪고 나서야 알게 되었었다. 체력이 바닥이 났다는 것을. 그런 체력으로 마등령을 거쳐 무탈하게 속초 시내로 들어와 고속버스를 타고 귀가를 했으니 다 된 거긴 했다. 약간의 상처가 쓰라리긴 했지만 칭찬해 주고 싶었다. 잘했다고. 다음에 또 가자고. 또 갈 거라고.

마등령이 지척이면 많이 걸어온 것이다.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을 생각하며 버스를 타고 갈 때, 장수대에서 내려 걷자는 친구를 뿌리친 건 정말 잘한 일이다. 장수대에서 시작해서 귀때기 청봉을 거쳐 걷는 능선길이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난이도 상급 코스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친구 뀀(?)에 빠지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한계령에서 시작한 게 저질 체력으론 최상이었다. 그나마 버틴 것이다. 암튼, 그런 한계령!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느낌은 처음 왔던 그 한계령 느낌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지 않던가. 어른이 돼버렸으니 말이다.

큰 새봉

산에 그것도 높은 산에 가면 좋은 게 사람들이 다 좋아지는 것 같다. 좋은 산 좋은 정기 탓이리라. 여유롭고 관대해지는 마음이란. 한 가지만 빼고. 중청 대피소에서 소등시간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 넘게 코를 곤 남성만큼은 자다가 한대 줘 박고 싶었다. 속이 좁은 것이다. 진작에 알았지만 몸이 피곤해서 짜증까지는 아니지만 얄밉게 생각되었다. 누구든 피곤하면 코를 고는 거야 당연할 터, 그런데 그게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이런. 다음엔 만나는 일 없기를 빌 뿐. 아, 진짜 하고픈 얘기는 따로 있었다. 같은 루트 한계령에서 시작한 젊은 청년 두 명과 만남은 공룡능선을 거쳐 천불동을 거쳐 내려오는 동안 좋은 인연으로 맺은 것 같았다. 그중 한 명은 신부의 길을 걷는 중이고. 신부라? 신께서 부르셨다면 따랐을 것 같기도 한데, 지금 생각하니 말이다. 그런 기회라도 주지 않은 신이 나 원망할까? 이런 건 산 밑에 버리고 왔어야 하는 것이다. 진작부터 말이다.

바다가 보이는데 흐릿하다.

산과 책이라. 그러고 보니 산장에서 책을 읽던 어떤 이가 떠오른다. 무게 때문에 고민했었는데, 체력이 되고 시간이 되면 배낭에 그냥 넣고 와야겠다. 그래서 생각난 책이 있다. 파울로 코엘류가 쓴 책. 《다섯 번째 산》. 거창한 의미 같지? 거창한지 모르나 의미가 깊었던 책. 소박한 듯한데, 선지자 엘리야. 성경 속 엘리야를 세상에 살게 한 파울로 코엘류라니. 그에 대해 뭐가 더 필요할까?

속초가 한걸음이다.
만족스럽지 않은 과거가 있다면 지금 당장 잊어버려요. 당신 인생의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해 보고 그대로 믿어봐요. 원하던 것을 성취한 그 순간에만 집중하는 거예요. 그럼 그 힘이 당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어 내도록 도와줄 겁니다. p.251
설악산 주인공들


이 문장이다. 사실 이것 때문에 산에 망설임 없이 평일날 예약이 쉬웠기도 했지만, 중청대피소를 결정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먹먹한 상태. 누구든 거친 그 길을 나 또한 걸어야 하지만 이젠 믿을게 실력도 운도 시간도 인간관계도 아니었다. 남은 건 작가가 살아오면서 신념으로 체득한 그것. 믿음. 신으로 향한, 여기에 지난날이 만족스럽지 않았기에, 앞날 새롭게 펼쳐질 그날을 상상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손에 잡힐 리 당연히 없지만, 그래도 잠시 행복했던 그 순간, 뭔가 성취했던 그 언젠가 집중해서 그 힘이 당신이 바라는 것을 이뤄지도록 말이다. 누군 이걸 신의 은총이라 할 텐데, 그렇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다. 신께 말이다.


이렇게 설악산, 그것도 몇 년 만이던가. 여기에 공룡능선까지. 남들도 갔고 나도 갔다 온 등산기. 그러고 보니 내게도 원하던 것을 성취한 순간들이 왜 없지 않았겠는가? 잊었던 거다. 잊고 싶었겠는가? 가는 날과 오는 날 몰입했듯이 이제 그렇게 순간을 살아도 될 것 같다. 애썼다. 많이 애썼다. 앞날 꽃길만을 장담할 수 없지만 만족하기만 하지 않았던 과거는 이미 설악산 대청봉과 공룡능선에 버리고 왔다. 이건 확실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4eVr0ieTx6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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