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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Jul 29. 2024

피렌체는 역시나 젊다!

23.

볼 것 많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볼 것 많은 도시는? 이런 가당찮은 질문은 애초 할 필요가 없지만, 누군가에게 피렌체를 보고 시에나를 보니 시에나가 좋았다가, 시에나를 보고 산지미냐노를 보니 산지미냐노가 좋았다는 변심을 용서해 줄까? 다 둘러보고 돌아와 생각해 보니 피렌체가 역시나 최고였어라고 말하면 이해가 될까? 토스카나 지방에 한해서 한 말이지만, 이탈리아 전체로 확대하면 베니스와 로마가 가만있을까? 다른 도시들은?

피렌체 두오모 위에 올려져 있는 쿠폴라. 브루넬레스키가 만든 돔이 아니었다면?

15세기 무렵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성장해서 서로 잘났다고 뽐내던 와중에도 피렌체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당시 유럽의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인 이 도시의 자본이 유럽 전역의 마중물로 쓰였는데, 여기에 운 좋게도 이곳엔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중요한 가문인 메디치 가문이 터를 잡고 있었다. 로렌초 메디치로 시작되는 이 가문은 16세기 초 교황 레오 10세와 교황 클레멘스 7세를 배출하고, 카레리나 메디치는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와 혼인할 정도로 막강한 가문이라는 칭송은 실상 그 가문이 후원한 예술 분야의 뛰어난 특히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로 등과 같은 작가들 때문에 더 빛났지만.

바사리와 추카리에 의해 프레스코화로 그려진 천장. 최후의 만찬과 창세기를 나타낸 것. 이런 사실을 몰라도 좋다. 그냥 보기만 해도 엄청나다.

1265년에 태어나 활동한 단테의 고향이라 칭송하지 않아도, 피렌체는 르네상스가 탄생한 도시답게 도나텔로, 라파엘로, 치마부에, 조토, 피사노, 브루넬레스키, 기베르티, 안젤리코, 우첼로 등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이들도 많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예술가들이 활동한 도시이다. 르네상스라는 하나의 예술 사조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도시가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도시는 매력적이다. 이렇기에, 그나마 최근(?) '열정과 냉정 사이'라는 영화의 배경지이기도 했던 곳.

피렌체 두오모 주변 풍경

다행인 건 카메라 기술 덕에, 평범한 우리들이 그들이 만든 걸작들을 손쉽게 폰에 담아 즐길 수 있게 된 걸 그들이 환생해서 보았다면 배가 아파 죽겠지만, 누군 죽을힘을 다해 만든 작품들을 손쉽게 디지털로 변환해서 두고두고 볼 수 있기에, 그걸 도시 피렌체가 제공하기에 예술을 좋아하는 여행객이라면, 피렌체는 역시나 하고 그들을 만족시켜 줄 것이다. 역시, 피렌체! 카메라에 담지 않을 수 없어, 담으면서도 주마간산 쓱~~ 보는 내 눈엔 피렌체가 어떻게 비쳤을까? 순서는 랜덤이지만 한 번 들여다보면.

두오모와 세례당. 돌 색깔이 이렇게 조화롭고 아름답던가?

우선, 피렌체 중앙시장. 배고프면 뭔들 맛이 없을까? 금강산도 식후경. 피렌체는 걸어 다니기에 충분한 크기라서 걷기에 부담이 없지만, 이곳 시장에 오면 가장 좋은 건 4차례로 이어지는 정식 이태리 식당 예절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 이태리 식당에서 절차대로 식사를 하다 보면 배가 고파 다음 차례 음식을 기다려도 주지 않는다고 오해하기 쉬운데, 그건 그 차례가 다 끝났다고 신호를 줘야 다음 차례 음식을 서빙하는 이들 문화 때문이다. 이런 번거로움을 거스를 수 있다. 패스트푸드 식당처럼 그저 먹고 싶은 음식을 그걸 파는 식당 정해진 자리에서 먹기만 하면 된다. 이곳에 가면 반드시 둘러보는 가죽 시장이 떡 하니 시장 앞에 버티고 있어서 눈요기 장소로도 좋다. 가죽 시장이 더 유명한 것도 같다.

가죽시장 옆이 중앙시장이다.

다음은 역시나 최고의 하이라이트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다.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이 성당은 브루넬레스키가 완성한 돔 때문에 당시 세계 최대의 성당이란 타이틀이 가려져도, 이 성당이 주는 미적 아름다움은 돔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브루넬레스키 패스를 끊으면, 돔에 올라갈 때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정말 아름다운 돔 천장화를 볼 수 있다. 성당 밑에서도 볼 수 있지만 돔에 올라가면서 가까이 보는 천장화는 감동을 넘어선다. 여기에 조토의 종탑에 오르는 수고를 더하면, 두오모를 반대에서 볼 수 있기에 성당이 주변 풍경에 이 성당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성당의 돔에서 내려다보는 피렌체. 피렌체 하늘은 왜 그렇게 맑고 푸른지!

굳이 세 번 째는 산 죠바니 세례당. 단테가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보다, 피렌체 가톨릭 신자라면 자식들을 모두 세례를 받게 하는 곳이라서 더 인상적인 세례당은, 바로 문들 때문에 더 주목을 받는 곳이다. 위작이라도 그 감동이 어디로 갈까? 피사노와 기베르티에 의해 제작된 문인인데, 기베르티가 만든 문은 당시 브루넬레스키를 공모전에서 이긴 후 만들었다는 사실을 넘어서 미켈란젤로가 '천국에 이르는 문'이라고 극찬할 정도라니. 아담과 이브의 창조에서 솔로몬의 이야기까지 담긴 문으로 청동 부조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번에 알았다. 진본은 다른 패스를 끊어도 볼 수 있는 오페라 델 두오모 박물관에 있다. 누군가에겐 이곳 화장실은 무료라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세례당 문에 쓰였던 진짜 부조문은 황홀하다. 이것이 문인가? 문의 용도가 뭐란 말인가?

기베르티의 문.

네 번 째는 골목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피렌체는 시에나와 산지미냐뇨 처럼 도시 골목 곳곳도 아름답다. 이건 어쩌면 이탈리아 모든 도시들의 특징이겠지만, 그래서 흉내 내고 싶었다. 영화에 나왔다는 그 장면을 포함해서 피렌체 두오모 성당이 가장 아름답게 보일 것 같은 골목에서 사진을 찍어봤다. 성당과 골목이라. 마치 성과 속의 대비 같은. 그곳에서 본 경치는 어땠을까? 여기에 더해서 이 사진을 찍으러 걷다 보면 단테 생가가 나오는데, 단테 하면  신곡 중 지옥 편에 나오는 '여기 들어오는 자 희망을 버리라'는 정도만 아는 문외한이지만, 거의 천년 전의 뛰어난 문인이 아직도 오늘 피렌체를 빛내다니.  

두오모가 피렌체 골목에 미치는 영향?

다섯 째는 야경이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좋지만 이를 밤에 보면 더 좋다. 이건 베키오 다리도 마찬가지다. 이것뿐일까? 어떻게든 조명을 설치해 도시를 돋보이려는 노력이 바탕에 깔렸지만 피렌체 두오모를 포함해서 도시 여기 저기 다 좋다. 특별히 화려하지도 않다.

피렌체 야경.

그래서 하고픈 말은. 아마 피렌체는 단테와 산타 마리아 피오레 성당, 우피치 미술관, 베키오 궁과 베키오 다리, 미켈란젤로 광장 등을 포함해서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건 피렌체가 영어로 플로렌스, 꽃의 도시였기 때문일까? 어디서 피렌체는 이탈리아의 꽃이며, 역사의 꽃이란 의미로 시저(카이사르)가 지었다는 말도 들은 것 같은데, 원 뜻은 "두 강 사이에 있는 마을"이 어떻게 이렇게 좋은 뜻을 가지게 된 거지? 후대의 사람들이 멋지게 피렌체를 포장했더라도 어울린다. 그래서 계속 젊을 것 같다는. 아니, 피렌체는 젊다.

베키오 궁전과 다리. 궁전은 우피치 미술관과 연결되어 있다. 두오모 앞에서 클래식이라니! 단테 생가와 교회.

끝내기 아쉬워 좀 더 피렌체에 대한 설을 풀면. 메디치 가문의 성당인 산 로렌조 성당은 피렌체 시장이나 가죽 시장을 찾다 보면 만나게 된다. 최초의 르네상스 성당으로 알려진 그곳은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했으며, 성당 안에 메디치가 사람들이 묻혀있는 예배당이 있다. 이곳이 유명한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산 로렌조 성당 2층에 있는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이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고 해서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곳은 우피치 미술관이다. 짧은 피렌체 방문이라 우피치 미술관과 토스카나 지방을 저울에 올렸었다. 당연히 토스카나가 승리했지만, 토스카나가 좋아서 후회는 없다. 여기엔 정말 잘 정리된 유튜브 프로그램도 한몫했다. 금방 까먹는 머리 탓에 자꾸 반복해서 볼 수 있는 영상이 있으니까. 암튼, 도시는 피렌체가 제일이라고?

 산 로렌초 성당과 광장. 도서관은 성당 건물 왼편 입구로 들어간다. 우피치 미술관 앞 조각상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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